청우헌수필

오르고 달린다

이청산 2013. 8. 10. 14:55

오르고 달린다

 

오후 4, 오늘도 자전거를 달려 나간다.

자전거를 달리기 전까지는 그 시각에 매일 산에 올랐다. 한 시간 남짓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집 근처의 조그만 봉우리다. 산을 오르는 걸음이 좋고, 푸른 숲이 좋고, 새소리,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가 좋았다.

건강을 다스리기 위해 오르기 시작한 산이었지만, 날이면 날마다 수년간을 오르다보니, 오르는 그 자체가 목표요, 목적이 되어갔다. 하루도 산을 오르지 않으면 하루를 산 의의를 잃어버린 것 같아 편히 견딜 수가 없다.

어느 시인이 내 일상의 종교는 걷는 일’(이재무, ‘일상의 종교’)이라 한 것처럼, 나에게도 산을 오르고 걷는 일이 일상의 종교가 되어 갔다. 그 시인은 한강을 걷는다지만 나는 산을 걷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산을 오르는 걸음을 재촉한다. 산을 올라 그 정상에 서면 기다리고 있던 그리운 사람이 가슴을 벌려 덥석 안아주기라도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늘 오르는 산 아래로 자전거 길이 났다. 산 아래 강이 흐르고, 그 강둑으로 자전거 길이 뚫린 것이다. 그 때 마침 누가 자전거 타기를 권해왔다. 자전거를 타면 심폐기능이며 순환기계를 강화시켜 고혈압이며 혈당을 다스리는 데도, 관절을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했다.

그 말에 귀가 솔깃하기도 했지만, 맑게 흐르는 강물을 옆구리에 끼고 잘 닦여진 길을 달려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계절마다 소리도 다르게 흐르는 강물이며 청량한 풍경들을 안고 달리는 것도 유쾌한 일이 될 것 같았다.

레저용, 운동용도 아니고 평범한 생활용이지만, 자전거는 있었다. 한촌 살이를 시작하면서 농협에도 가고 우체국에도 가기 위해 마련해 둔 것이었다. 그런 것이면 어떤가? 바퀴 구르는 것은 마찬가질 텐데. 자전거를 한 번 타 봐?

주저와 망설임 끝에 하루는 산을 오르고, 하루는 자전거를 타기로 용단(?)을 내렸다. 그 결단 끝의 어느 날 오후 4, 자전거를 몰고 나섰다. 달리는 시간은 산을 다녀오는 데 걸리는 시간과 비슷하게 잡기로 했다. 늘 지켜오던 생활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달렸다. 강둑을 달리고, 다리 밑을 달리고, 들판 길을 달렸다. 경쾌하고 상쾌했다. 풍경들이 바퀴에 감겨 시원스레 지나갔다. 40분 정도를 달렸다. 이쯤해서 돌아가면 산을 오르내리는 시간과 비슷하리라.

자전거를 돌리어 오던 길을 되짚어 달린다. 집에 이르렀다. 그런데 산을 올랐다가 내려왔을 때보다는 몸에 그리 많은 땀이 젖지 않았다. 다리도 그리 힘들지 않은 것 같다. 이래도 산을 오르내리는 것만큼 운동이 되는 걸까.

하루를, 며칠을 달려 보고 어찌 운동 효과를 말할 수 있으랴. 다음 날엔 산을 오르고 그 다음 날엔 자전거 달리기를 줄곧 이어나가는 사이에 가을, 겨울이 가고 봄도 지나면서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어 갔다.

더울 때는 더워서, 추울 때는 추워서 힘들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산을 오를 때 추위, 더위며 비바람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전거도 그렇게 달려 나갔다. ,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하루도 산을 오르지 않으면 무력감에 젖듯, 하루걸러 자전거를 달리지 않으면 온몸에 좀이 스는 듯했다. 사람의 몸이란, 마음이란 이토록 간사한 것인가, 변화를 잘 따라주는 것일까?

자전거를 달려 나간다.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풍경 속으로 자전거가 달려간다. 어디에 감추어져 있다가 이렇게 바퀴에 감겨 나오는지, 언제나 새로운 풍경들이다. 반환점, 그 정자에 이르면 정다운 이가 함박 미소를 지으며 안겨 올 것만 같다.

봄에 한바탕 꽃 잔치를 벌였던 강둑의 벚나무는 푸른 그늘을 무성하게 드리우고 있고, 그 아래 샐비어는 한창 붉은 꽃을 피우고 있다. 봄에 심은 어린 것들이 어느새 저렇게 꽃을 피우다니-.

어느 농부가 한 치 땅이 아까워 길 가장자리를 쪼아 심은 고추가 벌써 붉고 커다란 것을 달고 서있다. 지난 가을 머리 위에까지 잎과 열매를 툭툭 떨구던 은행나무는 다시 노랗게 물들 철을 기다리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무성해지면서 빛깔과 몸피를 바꾸어가는 그들이 보고 싶다. 하루를 걸러 그들을 만나면, 만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그들이다.

산인들 어찌 그렇지 않으랴. 계절마다 달리지는 푸르고 붉은 산색이며, 피고 지는 산꽃들의 모습이 보는 마음을 늘 새롭게 해주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이 내가 산을 사랑하는 큰 까닭이 아니던가.

산과 길섶을 대어놓고 보면 그 끌림은 다른 것 같다. 산 풍경이 남성적이라 한다면 길섶은 여성적이라 할까. 산은 우람한 중량감이 느껴진다고 하면, 길섶은 아기자기한 경쾌함이 느껴진다 할까. 산이 대형 걸개그림이라면 길섶은 여러 개의 작은 액자그림 같다고나 할까.

그 교차하는 끌림 속에서 어제는 산을 오르고, 오늘은 자전거를 달린다. 내일은 또 산을 오르고 글피는 또 자전거를 달릴 것이다. 시간이 발목에 잠기고 바퀴에 감겨 흘러간다.

오르고 달릴수록 그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어 간다. 서로 조화를 이루며 엉겨가는 것 같다. 밤과 낮의 조화라 할까, 음과 양의 조화라 할까, 사랑과 그리움의 조화라 할까.

어라, 혈압이 좀 낮아졌단다. 만성 요통이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다. 무릎에도 전에 없던 경쾌감이 든다. 산을 오른 탓인가. 자전거를 달린 탓인가. 그 조화 탓인가.

까닭은 따로 있다! 바로 당신을 사랑한 탓이다. 행복한 탓이다.(20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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