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살구꽃 핀 마을은

이청산 2012. 4. 23. 22:11

살구꽃 핀 마을은

-이호우 이영도 시인 생가를 찾아서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 반겨 아니 맞으리

 

한촌의 따뜻한 인정과 넉넉한 정취를 노래한 이호우(李鎬雨, 19121970)살구꽃 핀 마을이다. 교과서에도 실려 널리 회자 되었던 절창 시조다.

봄이 무르익어가던 4월 어느 날, 살구꽃 핀 마을그리고 이호우를 찾아 나섰다. 살구꽃 핀 마을과 더불어 흐드러져가는 봄의 정취에 취해보고 싶었다. 이호우 시인과 함께 있을 이영도(李永道 1916~1976) 시인의 모습도 그리며 내비게이션을 경북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로 맞추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호우 시인과 이영도 시인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라는 시조집을 함께 내기도 한 다정한 오누이 시인들이 아니던가.

차는 대구부산고속도를 달리다가 청도IC에서 내려 읍내를 한참 벗어나 한적한 곳으로 드는가 싶더니 유호리라는 조그만 마을에 이른다. 목적지 설정이 잘못 되었나 싶어 다시 설정해도 가리키는 곳은 마찬가지다. 한적한 고샅을 조금 지나니 유호리에 잇대어 내호리가 나타났다. 안쪽은 다 허물어지고 바깥쪽 벽채만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옛날 극장을 하던 곳이라고 하는 2층 건물 맞은편에 이호우 이영도 생가표지판이 서 있다.

분위기가 좀 스산하기는 했지만, 찾아 헤매던 살구꽃 핀 마을을 만난 듯 반가운 마음으로 차를 내렸다. 대문으로 다가갔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문 너머로 들여다보니 안채와 사랑채가 자 형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남향의 안채와 동쪽으로 난 대문 사이에 이제 막 잎이 돋으려는 감나무와 붉은 꽃을 피우고 있는 꽃나무와 꽃들이 있는 마당이 보였다. 그 꽃들 사이에 사각의 조형물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997년 한국문인협회에서 설치한 오누이 두 시인의 생가 기념비였다.

하릴없이 문틈만 기웃거리다가 어떻게 들어가 볼 길이 없을까 하여 이웃을 맴돌았다. 생가 앞쪽에 잘 가꾸어진 정원에 단아한 2층 양옥집이 있고, 그 옆 골목을 드노라니 양지바른 곳에서 담소를 하고 있는 할머니 두 분이 보였다. 오누이 시인의 생가를 둘러볼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으니, 한 할머니가 짐짓 반색을 하면서도 담을 넘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 집은 시인들이 태어나기는 했지만, 일찍이 남의 손에 넘어가버려 시인들이나 유족들에게 아무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 집의 권리자는 시인들과 남도 아닌 친척지간인데, 무슨 속내에서인지 관련 관서에서 양도하라고 해도 도무지 응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거처하지도 않고 비워두기만 하여 점점 퇴락해 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도 했다. 대문 옆에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동록문화재 제293호 청도이호우이영도생가 대한민국근대문화유산 문화재청이라는 놋쇠 안내판이 오히려 무색해 보였다.

할머니도 시인들과 남이 아니라 시외사촌 사이라고 했다. 대구에서 살다가 몇 해 전에 조용한 시골을 찾아 우거해 와 마침 생가 옆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87세의 영감님과 함께 좋은 공기 속에서 살고 있다면서, 성함을 물으니 최정숙(崔貞淑 85)’이라고 했다. 지팡이를 짚고 있었지만, 연세치고는 얼굴이 참 맑고 곱게 보였다. ‘참 정정해 보이시고 고우시다고 했더니, 영감님은 더 잘 생기고 정정해서 아직 운전도 마음대로 하며 잘 지낸다고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젊은 시절에 남편도 외가를 자주 가고 시인들도 고모 집을 가끔씩 찾아오고 해서 생전에 자주 만나기도 했다며. 오누이가 모두 다정다감하고 재주도 많은 사람들이었다고 추억했다. 다만 이영도 시인이 해방되던 해에 남편과 사별하여 일찍이 혼자가 되고, 병약했던 것이 보기에 참 안되었었다고 회상했다. 강변 시비공원으로 가보자며 앞장을 섰다.

동네를 흐르고 있는 강을 이곳 사람들은 유천이라 한다며 파출소 앞을 지나 강변 큰길가에 자리 잡고 있는 공원으로 안내했다. 길섶에 오누이공원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는 건너편 널따란 잔디밭에 오누이 시비라는 둥근 표지석을 사이에 두고 장방형 비석에 속이 빈 사각형 구조물로 세운 이호우 시비와 원주 위에 구형 조형물을 얹어 여성미를 살린 이영도 시비가 나란히 서있었다. 화강암 조형물과 함께 오석에다가 시와 비문을 새겼는데, 두 비석 모두 청도군에서 세우고 심재완 박사의 제자(題字)에 민병도 시인이 쓴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호우 시비에는 살구꽃 핀 마을’, 이영도 시비에는 달무리가 새겨져 있고, 뒤쪽 비문에는 각기 두 시인의 생몰 내력과 문단 이력,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글을 새겨 놓았다. 이호우 시비에서는 서구 문물의 파고가 높아갈수록 더욱 시 정신을 올곧게 닦아 장차 우리 문학의 토양을 기름지게하였다고 추모하고, 이영도 시비에서는 언제나 변함이 없던 단아한 모습과 고고한 품격이 사람과 글이 다르지 않았다고 기렸다.

최 할머니도 오누이 시인의 시를 참 좋아한다고 했다. 이영도 시인은 비문에 있는 것처럼 단정하고 깨끗한 용모를 지녔었다며. 유치환(柳致環 1908~1967) 시인이 그 모습에 반했던 것 같다고 하며 웃었다. 이영도 시인과 통영여중에서 함께 교편을 잡게 된 것을 계기로 흠모의 정에 빠지게 된 유치환 시인이 생전에 무려 5천여 통의 연서를 보냈고, 이 시인은 생애의 갖은 역경을 겪으면서도 고이 간직하고 있던 그 연서들을 간추려 유 시인의 사후에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책을 세상에 펴내기도 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었다.

최 할머니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서로의 마음이 조금씩 트이는 듯, 그제야 어떻게 오신 뭐하시는 분이냐 물으신다. 봄도 무르익고 해서 살구꽃 핀 마을이 보고 싶어 멀리서 왔는데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그냥 지나치다 들린 분 같지는 않아 보이더라며 시인의 생가를 정 보고 싶으면 자기 집 옥상으로 가자고 했다. 생가 앞의 2층집이 자기 집이라고 했다.

시인들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공원을 나서는데, “이것 좀 봐요. 글쎄 사람들이……하면서 혀를 찼다. 할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공원 한쪽에 커다란 원모양의 바닥 장식이 있고 그 곁에 붉은 기둥모양의 구조물들이 서 있는데, 밤이면 구조물을 비추던 바닥 장식의 조명등을 누가 다 떼어 가버렸다는 것이다. 어떤 이가 그런 못난 짓을 했겠느냐며 훌륭한 시인이 태어난 곳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남우세스러운 일이 아니냐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 바닥이 좀 허전하게 보였다. 마음도 허전해왔다.

할머니 집으로 왔다. 정원에는 포도나무며 석류, 감나무와 함께 온갖 꽃들이 정갈하게 가꾸어져 있었고, 현관으로 들어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안내했다. 옥상 한 쪽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니 시인들의 생가 뜰이 훤히 보였다. 지붕엔 땜질 기왓장들이 드문드문 얹혀 있고, 마당에는 잡초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마루 안은 지붕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마루 끝에는 여러 가지 기물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툇마루 끝에는 커다란 무언가를 오래 전부터 비닐로 감싸 덮어 놓은 것이 보였다. 옆 마당에 꽃은 붉게 피어 있어도 집 안은 먼지가 켜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1910년경에 지은 것이라 하니 세월의 더께도 많이 끼었을 터이지만, 세월의 무게보다 더 후락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의 훈기가 깃들여 있지 않은 탓일 것이다. 툇간 방은 큰 유리창 미닫이가 달려 있는데, 저 방 어디쯤서 아니면 사랑채 어느 방에서 시인들이 한학자였던 할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우고 읽고 있었을까. 지방 군수를 역임하느라 자주 집을 비웠던 아버지에게서보다 할아버지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다 하니, 이들의 문재(文才) 또한 조부모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시 한 구절이 낭랑히 들려오는 듯하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淨化)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趙雄傳)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니다.

                           - 이호우, 달밤

 

멀찌막이서 들여다보며 시인의 생장 시절을 상상하는 것으로 생가를 둘러보고, 이영도 시인을 형님이라 부르는 최 할머니 집 옥상을 내려올 때,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시라며 따뜻한 마음을 베푸신다. 말씀만으로도 고맙다며, 생가를 살펴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정원에는 붉고 흰 온갖 꽃들이 정감을 더해 주고 있었고, 문간에 선 할머니는 한참을 두고 손을 흔들었다.

문이 굳게 잠겨 있는 생가는 점점 퇴락해 가고, 마을엔 살구꽃 한 송이 보이지 않았지만, 오늘 보고 싶었던 살구꽃 핀 마을이 바로 최 할머니 집일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뉘 집을 들어서면 반겨 아니 맞으리라던-. 공원의 조명등을 떼어 가고 문을 굳게 잠가놓고 있는 사람들의 세상과는 달리 시인의 시절엔 이웃들이 모두 최 할머니처럼 마음 넉넉한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고 치고 싶은 살구꽃 피는 마을의 사람들-.

차를 달리는 도로 연변의 온갖 봄꽃들이 차창을 스쳐간다. 문득 한 무더기 진달래가 뜨겁게 안겨 온다.

 

너는 내 목숨의 불씨/ 여밀수록 맺히는 아픔

연련히 타는 정은/ 연등(煙燈)으로 밝혀 들고

점점이/ 봄을 흔들며/ 이 강산을 사루는가

               -이영도, 진달래 -조국에 부치는 시 (201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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