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일기

현판을 달다

이청산 2011. 3. 6. 13:51

현판을 달다
   
-청우헌 일기·1



아이들과 하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퇴임식을 치렀다. 식장을 메운 사람들은 박수로서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다. 퇴임사를 말하는 도중에 눈물이 나려했다. 한 생애를 마감해야 하는 적지 않은 감회 때문일 것이다. 훈장을 받았다. 나라에서 공직생활을 오래 한 사람에게 의례적으로 주는 것이지만, 온갖 희로애락 속에서 지내왔던 외길 세월의 한 징표가 될 수 있는 것이겠다. 퇴직수당을 받았다. 이 또한 공직을 살아온 세월의 한 모습이면서 한 생애를 오롯이 다 바쳐온 삶에 대한 한 보상이라 할까.

이리하여 한 생애를 마감 짓는 절차가 끝났다. 생애의 한 막이 내린 것이다. 돌아보면 아쉬웠던 일이며 보람스러웠던 일, 부끄러웠던 일이며 따뜻하게 맞았던 일 들이 온갖 크고 작은 희비의 회포들과 함께 머리와 가슴속에서 얼크러진다. 한 생애의 마감 절차와 함께 모든 것을 매듭지을 수밖에 없다. 그 매듭을 발판 삼고 삶이라는 무대 위에 새로운 막을 올린다.

 

집을 지었다. 새로운 무대에서 펼쳐나갈 삶을 새로운 집에서 갈무리해 나가고 싶었다. 때묻지 않은 바람이 있는 곳에, 얼룩지지 않은 산과 물이 있는 곳에 살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땅을 찾았다. 그 땅에 조그맣지만 소담한 집을 지었다. 동쪽으로도 창을 내고 남쪽으로도 창을 내어 하루 종일 햇살과 함께 살 수 있는 방을 마련했다. 동쪽으로는 들판과 마을이며 내와 산이 그림을 이루고, 남쪽으로는 아담한 동산 하나가 정원처럼 앉아있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는 풍경이다.

현판을 달기로 했다. 쉽지 않게 지은 집을 기리고 싶기도 했지만, 새집에 담아나갈 새로운 삶의 의의를 새겨보고 싶기도 했다. 현판이란 예로부터 편액(扁額)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글씨를 새기거나 그림을 그려 달아 집에 멋을 내거나,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사유 세계를 나타내던 게 아니던가.

현판에 무엇이라 적을까. 고전에서 뜻을 빌어 적는 것도 아취가 있을 수 있으나 온전히 나의 생각을 담아 이름 삼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청산(靑山)'의 '청(靑)'을 넣어 청산을 사랑하는 마음과 늘 푸르고 싱그러운 삶을 지향하고 싶었다. 어려운 궁리 끝에 '우(遇)' 자를 찾고, 집을 뜻하는 '헌(軒)' 자를 붙였다. '청산과 만나 늘 푸름과 더불어 사는 집', '푸른 자연과 더불어 늘 청춘으로 사는 집'이라는 뜻을 담아 '靑遇軒'으로 결정했다. 늘 싱싱하게 제2막의 인생을 살고 싶은 원을 담았다.

정 깊은 화가 친구가 오랜 동안의 고심 끝에 멋스러운 글자를 디자인해 주었다. 고풍의 서체만이 어찌 현판의 글씨가 될 수 있다 하랴. 글씨 새기는 재주가 좋은 지인이 원목 널조각에 정성 들여 각자를 해주었다. 현판이 완성되었다. 멋을 담고 뜻을 담아 그럼직한 현판을 이루 낸 기쁨이 작지 않았다.

현판을 달았다. 대문과 마주하고 있는 서재의 외벽 동창 위에 높다랗게 달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웃 몇이라도 불러 현판식을 열고 싶었지만, 공연한 번거로움을 끼칠 것 같아  글씨를 써준 분에 대한 고마움만은 깊게 새기면서 조용히 달았다.

그러나 감회는 예사롭지 않았다. 나의 새로운 삶을 담아낼 새집에 이름을 붙여준 것도 새길 만한 일이거니와, 제2막 인생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제 '청우헌'의 주인이 되어 청산과 더불어 청산처럼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니, 앞날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새 삶에 대한 꿈도 마냥 부풀어 가는 것 같았다.

내가 굳이 현판을 달려 한 중요한 이유 한 가지가 또 따로 있다.

공직의 생활을 끝내고 퇴임을 했지만, 퇴임 직전의 직함이 줄곧 나를 따라 다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나를 부를 적당한 호칭을 찾지 못해서라도 곧장 직함 위에 나를 얹어 부르려 할지도 모른다. 직함으로 나를 부르는 것이 싫어서라기보다는 민망하고 거북할지도 모를 일이 염려가 되는 것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촌을 생판으로 찾아 풍광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삶의 터를 잡았다. '입향순속(入鄕循俗)'이란 말이 있듯이 다른 고장에 들어서는 그 지방의 풍속을 따르고 고장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할 것이거늘, 전직의 직함이 혹여 공연한 괴리를 생기게라도 한다면 마음 편한 일일 수 없다.

집 이름이라도 하나 지어 놓으면, 굳이 직함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부르기가 쉽지 않겠는가. 이를테면, 청우헌 어디 갔나, 청우헌 있는가, 청우헌 보시게, 청우헌에 갔다네……. 옥호요, 별호가 되어 누구라도 허물없이 부를 수 있지 않으랴. 원래 호라고 하는 것은 허물없이 부르기 위해 짓는 이름이 아닌가.

이런저런 의의를 담아 감회 깊게 현판을 달았다. 새로 난 아이에게 이름 붙여준 것처럼 흐뭇한 마음으로 현판을 바라본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집 안으로 드니 전화벨이 울린다.

"청우헌, 이리 오소. 어제 통발 놓은 걸로 어탕 끓여 놨어요."

이웃의 정겨운 목소리다.♣(20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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