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일기

고기를 잡다

이청산 2011. 4. 8. 16:12

고기를 잡다
   
-청우헌 일기·2



고기 잡는 법 한 가지를 이웃에게서 배웠다.

냇물에 어항을 놓아 잡는 방법이다. 물고기를 잡는 데에 쓰는 어항은 항아리 모양으로 만든 유리통을 말하지만, 비닐이나 그물로 만든 것을 쓴다고도 한다. 이웃은 비닐 어항과 그물 어항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았다. 잡는 방법은 간단했다. 고기가 좋아할 여러 가지 종류의 떡밥을 반죽하여 어항에 넣고 냇물 적당한 곳에 하루 밤쯤 담가 두었다가 꺼내면 그 안에 고기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고기가 어항 속에 있는 떡밥 냄새를 맡고 어항 속으로 들어갔다가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웃의 말을 듣고 어항 몇 개와 떡밥을 장만했다. 어느 날 해질 무렵에 어항과 떡밥을 들고 냇가로 나갔다. 몇 가지 떡밥을 섞어 물에 개어 어항 안에 한 줌씩 넣었다. 그리고 물에 넣어 눕히고, 어항에 달린 끈을 돌에 메어 놓았다. 이튿날 아침에 냇가로 나가보니 어항마다 고기가 서너 마리씩 들어 있었다. 털어 내어 헤아려 보니 모두 열댓 마리쯤 되었다.

생전에 처음 해 본 일이었다. 그토록 쉽게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어쩌면 이런 일이란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 대수롭지 않은 일을 나는 처음 겪어보고 신기하게 느끼고 있다.

한촌 생활이 보름 남짓 지났다. 모든 시간들이 낯설기만 하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운동을 하고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 사무실에 앉으면 하루 일과를 챙기고, 정해진 일과대로 업무를 진행한다. 업무를 어떻게 하면 잘 처리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해질 무렵이면 퇴근한다. 산을 향하여 걷기 시작한다. 산을 오르고 내려 한 시간쯤 걷다가 집으로 온다. 그렇지 않으면 퇴근하고 동료들과 어울려 술잔을 나누며 환담하다가 집으로 온다. 그렇게 살았다. 그런 시간들이 흐르고 흘러 물러나야 할 때를 맞이했다. 물러났다. 그리고 한촌으로 왔다.

방에서 창을 내다보면 대여섯 집을 안고 있는 들판이 보이고. 강물이 흐르고, 고속도로 위로 먼 산이 솟아있다. 익히 대해보지 못했던 풍경들이다. 그 방에서 자고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동네 한 바퀴를 걷는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동네 길을 걸으며 오늘은 무얼 할까, 어디를 갈까를 생각한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방으로 든다. 옷을 말쑥하게 차려 입고 집을 나서던 시간과는 너무 다른 시간이 나를 맞이하고 있다.

마을에 살면 마을 사람이 되어 마을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할 일이다. 이웃과 사귀기도 하고, 이웃이 하는 일을 함께 해보기도 할 일이다. 이웃 사람들이 참 좋다. 함께 어울리기를 바라기도 하고, 어울려 주기도 한다. 도회에서는 보기도 느끼기도 힘든 인정이요, 인심들이다. 무엇이라도 도와 주려하고, 한촌에서 사는 법을 일러주려 한다.

배우고 익혀야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마당을 쫏아 텃밭을 만들어 유실수를 심고 채소를 가꾸려 한다. 나무는 어떻게 손질해야 하는 것인지, 무슨 거름을 어떻게 넣어 지력을 북돋우고, 채소는 종류에 따라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 것인지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낯선 시간과 풍경들을 익숙한 것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텃밭으로 쓸 마당을 쫏고 있는데, 회관에서 점심을 먹으러 오라고 한다. 마을 회관에는 주로 노인들이 모여 놀면서 점심을 지어 들이나 집에 있는 이웃을 불러 함께 먹는 것이 마을의 일상 중에 하나라 한다. 동네 어른들과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동네 일도 의논하고 여러 가지 소식도 함께 나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했던가. 따르라 하기 전에 스스로 따라야 할 일이다. 한촌의 사람이 되리라 하고 스스로 찾아온 삶이 아니던가.

꽃샘 추위가 물러나면 새순도 돋고 꽃도 필 것이다. 강산에 새봄이 오듯이 내 삶에도 새봄이 오고 있다. 새봄이 오면 할 일도 많고 갈 곳도 많아질 것이다. 할 일도 찾고 갈 곳도 찾아야겠다.

어항을 놓아 고기를 잡는다. 한촌을 사는 즐거운 일임에야-.♣
                                                                                  (201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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