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일기

자전거를 사다

이청산 2011. 4. 9. 09:50

자전거를 사다
   
-청우헌 일기·4



도회를 떠나 한촌으로 삶의 터를 옮긴지 한 달이 가까워 간다. 한촌에서의 생활이란 나에게는 개벽과 같은 일이다. 지난 날 내가 살아왔던 삶의 모습이며 방식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세끼 밥을 먹는 일 말고는 모두 달라진 것 같다.

창문 너머로 보면 산이 보이고 들이 보인다. 마당에 나가면 흙이 있다. 흙을 밟는다. 신발에 묻은 흙이 현관까지 따라 온다. 마을 길을 걷는다. 시골에도 포장길이 많긴 하지만 두렁길도 있다. 흙 냄새 거름 냄새를 맡으며 논두렁 밭두렁을 걸어서 이웃으로 간다. 도회에서는 전혀 겪을 수 없는 일들이다.

 

자전거를 샀다. 자전거를 산 것도 한촌의 개벽 생활 중의 하나이다. 도회에서는 별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사려는데, 가게 주인이 운동용으로 탈 것인지, 생활용으로 탈 것인지 용도를 물었다. 운동도 하고 생활에도 이용할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생활용으로 사라고 했다. 운동용은 뼈대와 바퀴와 안장뿐인데도 많이 비쌌다. 특수한 부품이 들어 있어 그렇다고 한다. 짐받이도 있고 전등도 달려 있는 것으로 샀다. 자전거의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모양이다.

지금 나라에서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부르짖고 있다. 이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도 내놓고 실행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정책 중에 하나가 자전거 타기를 녹색 교통 수단으로 삼아 이용을 활성화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자전거 이용이 가능한 여건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한다. 4대강 주변을 따라 내쳐 자전거로 달릴 수 있게 하여 자전거 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도 하겠다고 한다. 좋은 일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지금 나라에서 부르짖고 있는 그 정책에 동참하기 위해서 내가 자전거를 산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는 그 정책에 호응하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내가 자전거를 산 것은 농협에 다니고 마을 장에 다니기 위해서다. 농협에 가끔 들러 생활비도 정리해야 하고, 장날 장에 가서 필요한 생필품을 장만하기 위해서다.

차로 가기엔 그리 멀지 않지만 걸어서 가기에는 제법 떨어진 거리에 농협이 있고, 우체국이 있고 면사무소가 있다. 이웃 마을을 다니는 것도 그렇다. 그리 멀지 않은 길을 일일이 차를 타기가 오히려 번거로울 때가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길을 간편하게 달릴 수 있기로는 자전거 만한 게 또 있을까. 자전거가 한촌 생활의 매우 긴요한 교통 수단이라는 것을 날이 갈수록 실감하겠다.

자전거를 타고 싶은 또 다른 까닭이 있다. 자동차가 우리 생활에서 그리 편리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브르통(Breton)은 ‘기차나 자동차는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 하는 길만 가르쳐주’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걷기를 예찬하여 브르통이 이런 말을 하였지만, 자전거 타기를 예찬하는 말에 써도 별반 틀리지 않을 듯하다.

자동차는 운전자의 의지대로 만은 달릴 수가 없다. 자동차가 들지 못하는 좁은 길은 물론 달릴 수도 없고, 앞에 바로 보이는 목적지를 두고서도 우회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달리다가 아름다운 경치가 보인다고 마음대로 감상할 수 있는가. 달리기를 멈추고 싶다고 멈추고 싶은 자리에 마음대로 세울 수가 있는가. 자동차는 오직 속도감만 존중될 뿐이지 않는가.

자전거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조붓한 길도 사람이 다닐 수 있으면 자전거도 다닐 수 있다. 자전거는 육체의 능동성을 도와 준다. 빠르게 달리거나, 느리게 달리거나, 달려나가거나 멈추어서거나, 언제나 타는 사람의 의지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달을 밟는 사이에 몸의 여러 부분 근육을 발달 시켜 건강을 도와주기도 하지 않는가.

자전거는 세계를 더욱 가깝게 해주기도 한다. 걸어서는 가기 어려운 곳들도 가게 해주고, 걸어서는 하기 힘든 일들도 할 수 있게 해준다. 자전거는 자동차의 속도감이 놓치게 하거나 찢어버리기까지 하는 풍경들을 다 잡아 줄 수 있다. 보고 싶은 세계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서서 바라볼 수 있게 하거나 그 풍경에 안길 수 있게 해 준다.

자전거는 나의 한촌 생활에 이래저래 많은 편리를 줄 것 같다. 자전거와 아주 친해야 할 것 같다. 당장 농협에 가서 생활비를 좀 찾고, 철물점에 들러 호미와 갈고랑이를 사와야겠다. 텃밭을 가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 자전거에 내 새 삶을 싣는다. 한촌의 사랑을 싣는다. ♣(201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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