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일기

마당을 꾸미다

이청산 2011. 4. 8. 16:13

마당을 꾸미다
 
-청우헌 일기·3



새로운 삶의 터에 발을 내리고 새 집에서 산 지도 두어 주일이 지나간다. 집을 다 지었다고 하지만 손을 보아야 할 곳이 많았다. 집 뒤의 공간에 다용도실도 지어야 하고, 옆에 창고 하나도 두어야 하고, 맨 흙이 드러나 있는 마당도 정리해야 했다.

우선 마당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별로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생육 공간과 생활 공간으로 나누어 가꾸어야겠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왔다. 생육 공간은 텃밭으로 꾸며 유실수를 심거나 채소들을 가꾸고, 생활 공간에는 작은 정원도 꾸미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삼는 것이다.

마침 아는 사람 중에 조경을 잘하는 사람이 있어 도움을 받기로 했다. 배수 시설부터 해 나갔다. 마당에 이리 저리 관을 묻어 빗물이 잘 빠지도록 했다. 관을 묻는 데만 하루가 걸렸다. 생육공간과 활동 공간을 가르는 경계석을 화강암으로 놓았다. 또 하루가 걸렸다. 활동 공간에는 모두 황토 블록을 깔았다. 집의 벽돌과도 어울릴 것 같고 미관도 괜찮을 것 같아서다.  

블록이 깔린 활동 공간은 밖으로 통하는 길이 되기도 하고, 주차 공간이 되기도 하지만, 놀이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 공간은 대문에서 들어와 현관으로 드는 계단 앞을 지나 집의 남쪽 끝자락까지 이어진다.

계단을 중심으로 남쪽 서너 평 공간을 ‘청우헌광장’이라 부르기로 했다. ‘청우헌(靑遇軒)’은 현판으로 걸린 집 이름으로, 청산과 만나는 집, 청산과 더불어 늘 청춘으로 사는 집이라는 소박한 뜻을 담고 있다. 청산(靑山) 즉 푸른 산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고, 누리집에서 즐겨 쓰는 나의 별호이기도 하다.

이 공간을 광장이라 한 것은 넓어서 광장이 아니라 넓은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다. 이웃들과 만남의 터로 삼고 싶어서다. 이 곳에 원탁을 하나 놓고 춥지 않은 계절에는 이웃들과 둘러앉아 박주 잔이라도 나누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안주 삼을 계획이다. 안주는 또 있다. 광장 앞 텃밭에서 공해 없이 자라고 있는 푸성귀들은 싱그럽고도 맛난 안주가 될 것이다.

계단 북쪽의 또 서너 평 공간은 정원으로 가꾼다. 자연석으로 둘레를 치고 가운데는 반송을 한 그루 심는다. 청산을 들여놓을 수 없지만 늘 푸른 나무 한 그루쯤은 있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꽃은 한해살이보다 여러해살이가 좋겠다. 꽃가꾸기에 부지런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철 따라 자꾸 바뀌는 것보다는 변함 없는 모습을 늘 은근히 두고 볼 수 있는 것이 좋겠기 때문이다. 주위로는 나지막한 영산홍을 빽빽이 심고 반송 좌우에 라일락과 백목련 한 그루씩을 심는다.

라일락과 백목련은 키가 큰 나무라서 정원수로는 적절치 않다고 하지만, 나는 그 꽃나무들이 좋다. 꽃말이야 어떻든, 얽힌 전설이야 어찌 되었든 그 자태가 좋다. 라일락과 목련은 참 대조적이다. 라일락꽃이 아기자기한 자태로 피어난다면, 목련은 고아한 기품을 지니고 핀다. 목련꽃이 점잖은 신사의 은은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면, 라일락꽃은 아름다운 숙녀의 매혹적인 향기를 풍긴다. 목련이 햇빛 같다면 라일락은 별빛과 같다. 목련에게서 남성을 느낄 수 있다면 라일락에서 여성을 느낄 수 있다. 그 자태들이 서로 화기롭게 어울리고, 그 향기들이 윤슬처럼 물결치는 정원이라면 ‘사랑의 정원’이라 불러도 좋지 않겠는가.

이제는 텃밭을 가꿀 차례다. 스무남은 평쯤 될까, 그리 크지는 않지만 푸성귀를 길러 찬거리로 쓰기에는 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상추는 꼭 심어야겠지. 전을 부치기 좋은 부추와 호박도 심고, 감자와 토마토도 길러야 하리라. 고추도 심어야 풋고추 따서 된장에 푹 찍어 안주할 수 있지 않으랴. 청우헌 광장의 원탁 위에 푸성귀가 넘쳐나면, 이웃과의 인정도 사랑도 넘쳐 나리라. 고작 모양만 갖추어 놓은 텃밭이건만, 벌써 온갖 푸성귀들이 출렁이고 있는 것 같다.

마당을 꾸며 놓고 나니, 이제야 삶의 터를 닦은 듯하다. 삶의 기틀이 이제야 잡힌 듯하다.

산에는 생강나무 노란 꽃이 눈을 틔우기 시작했다. 봄이 가까이 오고 있나 보다. 꽃 피고 잎 피는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마당도 꽃으로 잎으로 가득 찰 것이다.

인정으로 사랑으로 가득할 것이다.

한촌의 마당 가꾸기-.♣(201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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