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열정을 넘어서 -2010 인동고 워크숍 여정기

이청산 2010. 8. 5. 11:51

열정을 넘어서

-2010 인동고 워크숍 여정기



  ㅇ 열정으로 떠나기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말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더니, 1위가 Mother(어머니), 2위가 Passion(열정), 그리고 Smile(미소), Love(사랑) 같은 말들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열정'은 그만큼 아름다운 말이고, 따라서 열정을 지니고 사는 사람은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머나먼 길을 달려왔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대전을 스치고 공주를 지나 당진에서 서산을 들리고 태안으로 들어 안면도에 당도하여 방포 해변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달려 왔다. 열정으로 달린 길이었다.

한 학기를 마무리짓는 종업식을 마치고 서둘러 학교를 나선 것은 정오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엷은 구름이 파라솔이 되어 태양의 따가운 열기를 적절히 가려 주었다. 우리의 여정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대전을 지나고 긴 터널을 통과하고 그 말썽 많은 새 도시가 지어지고 있는 곳도 지나 공주휴게소에 이르러서야 늦은 점심으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돋우었다. 수덕사가 있는 예산을 지나, 널따랗게 펼쳐지는 푸른 들판도 지나 좁은 길을 달려 우리가 당도한 것은 서산시 대산읍에 있는 '대산고등학교'였다.

 

ㅇ 대산고 그리고 정호승 시인

산비탈에 높다랗게 자리잡은 학교였다. 한욱동 교장선생님과 유재풍 교감선생님이 학교 앞까지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개교한 지 3년째밖에 되지 않아 학교의 모든 것들은 깨끗하고도 새로웠다. 나는 교장실로 안내되고 선생님들은 시청각실로 안내되었다. 친절하게 설명하는 학교의 여러 가지 현황들을 들으며 교장선생님과 차를 나누었다. 지금 강당에서는 정호승 시인이 와서 아이들에게 특강을 하고 있는 중이라 했다. 고등학교 후배인 정호승 시인! 내가 문예반장을 하고 있을 때 반원이었던 정 시인은 문예 특기생으로 대학을 진학하여 나중에 유명한 시인이 되었고, 학교를 마친 이후에는 그를 만나지를 못했다.

교장선생님과 함께 시청각실로 가니 교감선생님이 우리 학교 선생님들에게 학교의 여러 가지 현황을 브리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과상도 차려 놓았다. 한 교장선생님의 환영 인사에 이어 내가 초대해 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많이 배워 가겠다고 했다.

대산고등학교의 역사는 우리 학교보다 짧지만 우리보다 한 해 앞서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을 받아 작년에 준비 단계를 거쳐 올해는 '자율형 공립고'를 운영 중인 학교다. 우리는 지금 준비를 하고 있는 처지에서 운영 상황이 궁금했다. '자율형 공립고'답게 자율적인 교육과정을 다양하게 편성하여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교과와 인성을 지도해 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도 있고 새로운 것도 있었다. 개인 맞춤형 학습진단과 처방시스템과 스승과 제자가 함께 실천하는 3행(수업 집중·인사 잘하기·깨끗이 하기, 연구·칭찬·상담), 3무(폭력·왕따·도난, 불친절·편애·불신)이며, '가족과 함께 하는 날-Family Day'운영 시책은 새겨들을 만했다. 브리핑이 끝나고, 교감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영어전용실, 도서실 등의 시설을 둘러보았다. 여러 가지 첨단의 시설들을 잘 갖추고 있었다.

기숙사로 옮겨가려 할 무렵 정호승 시인의 특강이 끝나려 한다는 연락이 왔다. 교장선생님과 함께 강당으로 갔다. 강당을 빽빽이 채운 학생들 앞에서 '시를 찾아가는 기쁨'이라는 주제로 자작시 '수선화'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노래로도 들려주고 있는 중이었다. 이윽고 강연이 끝나고 무대를 내려오는 정 시인과 반가운 해후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의 모습에도 숱한 세월의 그림자가 잠겨 있는 듯했지만, 사십여 년 전의 윤곽은 여전했다. '형님, 참 오랜만입니다!'라며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감회로 인사를 했다. '살다보니 이렇게도 만나게 되는 구만!' 고교 시절의 일들이 파노라마로 뇌리를 스쳐 갔다.

교장선생님이 나를 불러 아이들 앞에 세웠다.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는, 착하고 슬기로운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소문을 듣고, 보고 싶어 찾아 왔다 하고, 정 시인과의 인연도 말하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정 시인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 달라고 당부하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인사했다. 정 시인과 함께 선생님들이 모인 곳으로 나와서 나와의 인연을 말하고 정 시인을 소개하니 모두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같이 글을 썼지만 이제는 내가 정 시인의 독자가 되어 있다 하니, 정 시인이 웃었다. 젊은 여선생님은 그에게 사인을 청하기도 했다. 대산고 교장선생님과 정 시인 모두 함께 양쪽에 '열·정'을 크게 새긴 '자율형 공립고 개교 준비 및 명품교육 실현을 위한 2010 인동고등학교 교직원 워크숍' 플래카드를 펼치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인연이 닿으면 다시 보자 하고 손을 잡으며,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가는 차에 올랐다. 정 시인과 대산고 선생님들이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보고 싶은 곳을 찾다가 보면 뜻밖의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날 수 있게 되는 모양이다. 훌륭한 시인을 초청하여 아이들에게 특강을 들려주려는 생각을 가진 학교이기 때문에 우리가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 시인을 만난 것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ㅇ 안면도에서 안면(安眠)을

이제 노을이 질 것이지만, 따가운 여름 볕을 가려주는 구름 속에서 노을이 익고 있다. 연도에 펼쳐지는 녹색의 향연을 만끽하여 끝 모르고 달려나간다. 정주영 회장이 조성했다는 서산농장을 지나 태안반도를 달린다. 바닷물이 넘나든다는 다리를 건넌다. 안면대교란다. 안면도는 본래 곶(串)으로서 육지와 이어져 있었는데, 삼남지역의 세곡을 실어 나르는 것이 불편하다 하여 조선 인조 때 지금의 안면읍 창기리와 남면의 신온리 사이를 끊어 바닷물이 드나들게 함으로써 섬이 되었다가 현재는 다시 다리가 놓여져 육지와 연결되었단다. 어찌 인정만 변하는 것이랴. 헤어지고 만남은 땅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길가의 숲에 붉은 소나무가 잘들 뻗었다. 그 옛날 궁궐 재목으로 쓰이던 그 유명한 안면송(安眠松)이란다.

금산사의 말사인 안면암(安眠庵)에 이른다. 여기가 중국 어디쯤의 절간인가? 중국 무술 영화 속에서나 봄직한 높다란 절집이 천수만을 바라보며 우뚝 서 있다. 지어진 지 그리 오래지 않은 듯, 창연미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 3층의 절집들이 비로전, 나한전 현판을 단 채 연등을 주렁주렁 걸치고 서있다. 이 암자보다 더 눈을 뜨이게 한 것은 천수만 물 위에 떠 있는 다리와 탑이다. 2개의 무인도인 여우섬을 향해 뻗어 있는 부교(浮橋)와 그 섬 사이에 떠 있는 부상탑(浮上塔)이다. 썰물 때는 땅위에 있다가 물이 밀려오면 물 위에 뜬다. 지금은 밀물 때, 물에 빠져도 책임지지 않다는 주의문을 읽으며 다리 위를 걷는다. 출렁이는 물결 따라 다리도 일렁인다. 곧장 풍더덩 빠질 것만 같다. 다리 끝 저 앞에 탑이 보이고 배가 한 척 놓여 있다. 누구는 그 배를 타고 탑까지 저어가려 한다. 푸른 물과 물에 뜬 다리와 탑과 섬이 조화를 이룬 풍경이 마치 어느 동화 속의 한 장면일 듯, 그림처럼 아름답다. 다리 난간 기둥마다 불전의 말씀들이 새겨져 있는데, "노여워하지 않으면 자신을 평화롭게 하고, 미움과 원망이 없으면 남에게 평화를 보시하는 것이다."라는 섭대승론(攝大乘論) 중의 한 말씀도 새겨져 있다.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무엇을 노여워하고, 누구를 미워하고 원망할 수 있단 말인가. 출렁다리를 들썩이며 깔깔 웃는 모습들이 모두 천사들이다. 아름다운 풍경 속을 노니는 천사들이다. 이 천사들과 함께 안면도에서 편안하게 한 숨 푹 자고 싶다. 깊고 푸른 꿈속에 빠지고 싶다.

 

ㅇ 안면도의 밤, 열정을 넘어서

안면암을 나와 어귀에 우뚝 선 황금빛 관음상을 뒤로하고 꽃지해수욕장으로 갔다. 할미, 할아비바위 사이로 해가 지는 낙조 풍경이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곳이라지만 구름 낀 하늘이 그 아름다운 풍경을 허락하지 않는다. 전장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바위가 되었다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간직한 할미바위와 머리와 어깨에 분재처럼 수려하게 자라 있는 나무들을 이고 서 있는 할아비바위, 그리고 푸른 물결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경만을 하릴없이 바라본다. 그 바닷가 한 곳 커다란 바위에 어느 시인의 '할미, 할아비 바위 앞에서'라는 부제를 단 '사랑의 노래'를 새기고 있는데, "어느 바닷가 쓸쓸히 걷는 자여/ 그대 사랑의 슬픈 이야기 귀 기울이면/ 어느새 가슴은 벅차 서럽게 젖어온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사랑은 슬퍼도 아름답고, 기뻐도 아름다운 것. 우리는 오늘 기쁜 사랑의 노래, 열정으로 꽃 피울 사랑의 노래를 찾아 예까지 오지 않았던가.

안면도의 밤을 지샐 방포항으로 갔다. 넓은 바다에도 서서히 땅거미가 젖어들고 있었다. 방포 앞 바다를 바라보고 선 어느 객사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그 집 너른 방에 모여 앉았다. 결의를 다지듯 워크숍 플래카드를 높이 걸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일들이 참 많습니다. 올해 철저하게 준비해서 내년에 자율형 공립고가 무사히 개교되게 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명품 교육, 명품 수업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채근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그 결의를 다지고, 그러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그래서 우리는 그 열정을 찾아 먼길을 달려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열정을 넘어서……"

선생님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열정을 살라 명품 선생님이 되자 하는 뜻을 박수 속에 담아 내고 있었다. 잔을 들었다. 연수 중인 교감선생님을 대신하여 교무부장이 건배를 제의했다.

"자율형 공립고 개교를 향한 우리의 열정과 명품 교육의 실현 그리고 우리 인동고등학교의 무궁한 발전과 모든 선생님들의 행복을 위하여 건배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위하여!"

"위하여!"

잔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주고받으며 뜻을 주고받으며, 정을 새기고 열정을 태웠다.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일들을, 우리가 가르쳐야 할 모든 아이들을 위하여 뜻을 모으고 열정을 사르자고 했다. 행운권 추첨을 했다. 결의와 흥취를 돋우고자 준비한 것이다. 조그만 상품권을 선물로 주는 것이었지만, 선물의 크기보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더 컸다. 나에게 추첨을 해달라고 했다. 통 속에 깊숙이 손을 넣어 번호 하나 뽑아 올리는데, 이런 변이 있나! 내 번호를 내가 뽑다니! 확률을 뛰어넘은 기막힌 우연이다. 모두들 놀라는 사이에 친목회장은 무효를 선언했다. 다시 추첨하여 예쁜 여선생님에게 행운을 선사하였다. 모두들 박장대소하며 잔을 높이 들었다. 밤이 깊어 가고 우리들의 사랑과 열정도 농도를 더해 갔다.

바다로 나갔다. 파도는 어둠 속에서도 밀려왔다가 밀려가기를 거듭했다. 모래에 결을 새겼다가, 새긴 결을 다시 쓸어간다. 그리고 다시 밀려와 결을 새긴다. 세상에 정지되어 있는 것이란 없다. 물결도 흐르고 시간도 흐르고 우리네 삶도 흘러간다. 우리도 멈추어 있지 않았다. 물결이 넘나드는 모래톱을 뛰기도 하고, 손을 잡고 돌기도 하고 환호도 부르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마음에 인정의 결을 새기며, 가슴에 열정의 결을 새기며 밤바다를 노래했다.

 

ㅇ 궁남지(宮南池)의 사랑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열정을 끓였던, 우리 삶에 대한 열정을 새겼던 안면도의 밤을 지새고, 이제 햇살 밝게 퍼진 방포 해변을 떠난다. 그 모래톱에 밤새워 새긴 발자국을 두고 방포항을 떠난다. 안면대교를 건너고 간월호를 지나 서해안고속도를 달리다가 홍성으로 든다. 김이 유명하고 젓갈이 맛있다는 광천으로 들어 김 공장을 둘러보고 젓갈 가게를 들러본다. 맛있는 것들을 식탁에 올리고 싶어하는 생활인들의 할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달린다. 고추가 유명하다는 청양을 거쳐 머드축제가 이름난 보령을 지나 마침내 부여에 이른다. 부여를 위하여, 백제를 위하여, 백제의 로맨스를 간직한 임금님들을 위하여 두어 시간을 줄기차게 달려 왔다. 로맨스로 나라를 피게 했던 임금님과 로맨스로 나라를 지게 했던 임금님을 만나러 간다.

부여에 당도한다. 서동공원 궁남지(宮南池)에 이른다. 궁의 남쪽에 있어 궁남지라는 곳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연못 가운데 최초로 조성된 인공 연못으로 경주의 안압지보다 40년 앞서 백제 무왕 35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연못가에 홀로 살던 여인이 용신과 교통하여 아들을 얻었는데, 그가 나중에 백제 제30대 무왕이 된 서동(薯童)이라는 전설이 있고 보면 자연의 연못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수양버들 늘어진 못 가운데 방장선산(方丈仙山)이라는 섬을 두고, 그 위에 포룡정(抱龍亭)이라는 정자가 서 있는 이 못이 로맨틱한 옛 이야기가 잠겨 있는 탓인지 수련 몇 잎을 띄운 채 푸르고도 은은히 피워내는 물빛도 그윽한 낭만에 젖어 있는 것 같다. 못 주위의 1만4천 평에 이르는 연못에서는 백련, 홍련, 어리연, 외개연, 가시연이며 갖가지 모양의 수련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희고, 붉고, 노랗고, 또는 그런 빛들이 섞인 채로 어떤 것은 꽃잎을 활짝 피우기도 하고, 어떤 것은 막 벌어질 듯 봉오리만 수줍게 서 있는 것도 있다.

이런 곳이면 로맨스 한 자락쯤 없을 수가 없을 것이니, 서동과 선화공주의 국경도 신분도 초월한 러브스토리의 진원지가 된 것은 필연 있을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여곡절 끝에 가연을 맺어 왕이 된 백제의 서동과 왕비가 된 신라의 선화공주가 이 못 가를 거닐며 사랑을 속삭였을 옛일을 그려보노라니 저 못 속의 꽃들이 더욱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 같아 보는 이의 가슴이 공연히 설렌다.

최근에 발견된 미륵사지 석탑 사리봉안기에 무왕의 왕비는 백제 귀족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라 하나, 40년 오랜 재위 기간에 얻은 계비(繼妃)일지는 몰라도, '서동요(薯童謠)'로 맺어진 궁남지의 로맨스가 깨어질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의 로맨스에 로맨틱하게 젖는 사이에 비는 내리다가 그치기를 거듭하는데 커다란 연잎에 또르르 구르는 빗방울이 어쩌면 선화공주의 미소같이도 보여 연못가를 도는 발길마저도 낭만이 느껴진다. '사랑'을 생각하고 느끼고 상상하는 일이란 언제나 따뜻해서 좋다. 그 따뜻한 마음 한 자락에 궁남지를 새겨 넣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부소산으로 걸음을 옮긴다.

 

ㅇ 비 내리는 낙화암

이름난 구드래돌쌈밥 집에서 점심 요기를 하고 부소산을 오르는데 부슬부슬 비가 뿌린다. 부소산은 해발 106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한 나라의 흥망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삼충사(三忠祠)로 든다. 삼충사는 말년에 총명이 흐려진 의자왕의 정치를 바로잡고자 충언하다가 투옥되거나 유배를 가야했던 성충과 흥수, 황산벌에서 김유신 장군의 오만 군사를 맞아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계백 장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곳으로, 백제 최후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곳이다. 군왕의 치세를 따라 나라의 흥망이 좌우될 수 있는 것임을 새삼스레 실감하며 삼충사를 나와 서복사지(西腹寺址) 옛터를 지나 낙화암으로 향한다. 나라의 최후를 맞아 궁녀들이 몸을 던졌다는 부소산성 북서쪽 그 절벽에 백화정(百花亭)이 우뚝 솟아있다. 강을 향해 몸을 던진 궁녀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이 고을 군수가 새운 것이라 한다. 정자에 서서 강을 내려다보니 검푸르게 흐르고 있는 백마강 물결이 아스라하다. 그 수가 삼천이야 되었을까만, 적들에게 유린을 당하느니 차라리 몸을 던지리라며 남치마 덮어쓴 채 꽃처럼 떨어져가던 꽃다운 궁녀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애처로운 죽음을 증언이라도 하듯 이 절벽에 비가 내리고 있다. 내리는 비는 강물을 향해 마치 그 날의 꽃송이처럼 하염없이 떨어져 간다. 꽃처럼 꽃비 되어 떨어져 내린다.

고란사(皐蘭寺)로 내려간다. 참 희귀한 고란초란 풀이 절 뒤 바위틈에 살고 있어 고란사라 한다는데, 박제처럼 유리 상자 안에 몇 잎 담겨 있을 뿐 바위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름이야 어찌되었든, 1028년 고려 현종 때 낙화암에 몸을 던진 궁녀들의 원혼을 위로하기 지었다는 유래담이 절집의 풍경을 더욱 그윽하게 한다.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에는 황포돛배가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비 내리는 강으로 나가 배를 탄다. 물 위에서 바라보는 낙화암 그 바위 그 절벽이 현기증이 일 듯 아득하다. 저 높은 곳에서 꽃이 된 낭자들이 몸을 던졌단 말인가. 절벽 중허리에 굵직한 필체로 붉게 새긴 '落花巖' 세 글자가 우련 붉게 드러난다.

낙화암을 감돌아 배가 흐르고 돛대에 높이 달린 확성기는 지난날의 전설들을 엮어내고 있는데 불현듯 흘러나오는 옛 노래 한 가락이 오롯한 감회를 일으킨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에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 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천 궁녀를

 

배가 나루에 닿는다. 구드래나루터에서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을 뒤돌아보니, 숱한 사연, 수많은 세월이 안기고 감기어 흘러가고 있다. 기뻐서 아름답고 슬퍼서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들을 싣고 흐른다.

비 그친 흐린 하늘엔 늦은 하오의 시각이 매달려 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보고 먼 길을 달려가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우리나라 석탑의 시조가 된 정림사지 석탑의 유래담을 역사 선생님에게 듣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귀로를 서두른다.

 

선진 학교를 둘러보기도 하고, 태안반도 그윽한 풍경과 함께 결의와 열정을 다졌던 안면도의 밤, 그리고 백제의 기쁘고도 슬픈 사랑의 이야기에 젖었던 우리들의 여정-. 그 여정으로 우리는 열정을 넘어섰다. 열정은 승화되어 삶에 대한 사랑으로 의지로 번져났다.

그렇게 번져나리라.

우리에게,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의 삶이 있는 한-.♣(201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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