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아이들의 노래자랑

이청산 2010. 6. 29. 11:38

아이들의 노래자랑

 


민수는 빨간 재킷에 까만 중절모를 쓰고 등장했다. 마치 기성 가수와 같은 제스처도 써가면서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 젖혔다. 아이들은 박수와 폭소, 함성을 함께 섞으며 열기를 뜨겁게 지펴갔다. 출연자들은 혼자 나와서 노래를 부르거나 둘, 셋 짝을 지어 부르기도 했다. 반주기에서는 선곡에 맞추어 신나는 선율이 흘러나오고,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지는 노래 소리를 따라 아이들의 흥은 점점 뜨겁게 달아올랐다.

올해부터 휴업일이 아닌 첫째, 셋째 토요일은 감성교육의 날로 정했다. 두 주일 동안을 꼬박 교과서며 문제집과 씨름하면서 머리만 쓰다가 토요일 하루쯤은 가슴으로 느끼고 배우는 날로 만들어 보자는 데로 선생님과 아이들의 뜻을 모았다. 여러 가지 동아리 활동을 한다든지, 명사를 초청하여 좋은 말씀을 듣는다든지, 작은 체육대회를 열어 땀을 흘린다든지, 예능 경연대회나 발표회를 연다든지 해서, 감각을 통해 마음과 몸을 열고 느낄 것은 느끼며 익힐 것은 익히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런 활동을 통해서 풍부한 정서와 바람직한 인성을 길러나가기로 했다.

오늘 토요일은 며칠 전에 지나간 개교 일을 기념하는 노래자랑을 열기로 했다. 처음으로 갖는 노래자랑에 노래를 부를 아이들이나 들을 아이들이나 모두 유쾌한 기대로 한껏 부풀었다. 모두 열일곱 팀이 참가하여 저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어떤 장르의 노래, 무슨 곡을 부르던 저들의 자유다. 간간이 댄스 동아리 신무혼과 노래 동아리 소리샘이 찬조로 출연하여 보고 듣는 재미를 더욱 돋우도록 했다. 말하자면 아마추어의 경연에 프로가 등장하여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노래 자랑이 계속 이어졌다. 아이들은 역시 신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확성기에 울려나오는 음악 소리가 강당을 압도하는 가운데 아이들은 열광을 더해 갔다. 노래 동아리 소리샘아이들이 등장하여 슬픈 부탁’, ‘시간아 멈춰라를 부르며 친구들에게 평소에 갈고 닦은 노래 실력을 보여 갈채를 받기도 했다.

남학생과 여학생 둘이서 한 팀을 이루어 등장했다. 아이들의 환호가 폭발음처럼 터져 나왔다. 혼성 듀엣은 포맨이라는 가수가 불렀다고 하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를 유려한 화음으로 불러 나갔다. 어떤 소절에 가서는 듣고 있던 아이들도 팔을 높이 들어 파도처럼 일렁이며 함께 부르기도 했다. 노래가 끝났을 때는 한 번 더!’, ‘한 번 더!’하는 함성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예솜이의 등장-. 아이들의 환호는 강당을 무너뜨릴 것 같았다. 남 앞에서 노래를 잘 부를 것 같지 않던 아이가 씩씩하게 무대에 등장했다. 박자가 좀 틀리긴 해도 혼신의 힘을 쏟아 열창을 하는 모습에 아이들이 환호했다. 예솜이가 노래할 때 아이들은 함께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추어나갔다. 노래자랑에서는 물론 노래를 잘 불러야 하지만, 어차피 노래 선수 선발만을 위한 대회는 아니다. 무슨 일에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모습을 통해 감동을 얻을 수 있다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닌가.

여러 팀들의 노래가 계속 이어지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도, 객석에서 보고 듣는 아이들도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셋으로 구성된 어떤 팀은 청바지에 빨간 셔츠 그리고 하얀 가발을 쓰고 나와 코믹한 몸짓으로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환호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노래자랑은 막바지에 이르러 갔다. 드디어 아이들이 고대하는 신무혼의 차례다. ‘신무혼은 모든 아이들이 선망하는 댄스 동아리다. 오늘은 모두 까만 색으로 의상을 갖추었다. 아이들 몇이 저마다의 포즈를 잡아 무대에 섰다. 처음엔 좀 느린가 싶더니 이어 빠르고 경쾌한 무곡이 확성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은 온몸에 동작을 실어 신나고도 날렵한 춤사위를 그려 나갔다. 무아의 경지가 저런 것일까. 아이들은 동작 하나하나에 저의 모든 것을 쓸어 넣고 있는 듯했다.

아니, 저 아이는!”

깜짝 놀랐다. 한 동안 놀라움이 그쳐지지 않았다. 다혜였다. 책 읽기를 좋아하여 학교 도서관에 있는 문학 서적은 거의 다 읽었다는 아이다. 저 아이가 언제 저런 춤을 익혔던가. 단순히 팀의 일원이 되어 딴 아이들과 호흡을 맞추나가고 있는 것 아니라 딴 아이들을 이끌며 경쾌한 춤사위를 얽어 나갔다. 다혜가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춤을 저렇게 잘 출 줄은 몰랐다. 시집을 읽고 소설책을 즐기는 그 감성이 저렇게 춤을 추게 했을까. ‘신문혼의 춤이 끝나도 강당 안의 열기는 좀처럼 식어들지 않았다.

아이들의 노래자랑이 끝났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아이들도, 함성과 박수로 강당을 가득 메우던 아이들도 모두들 한마음이 되어 저마다의 열정들을 쏟아냈다. 강당은 그 열정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용광로처럼 붉고 뜨겁게 달아 있었다.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오늘의 최우수상은 혼성 듀엣으로 열창을 했던 정호와 하영이에게 돌아갔다. 축하의 박수를 치며 강당은 다시 환호성이 뒤덮였다.

여러분! 나는 오늘 정말 기쁩니다. 여러분들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넘치는 에너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 열정, 이 힘이면 이제 우리에게는 불가능이란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열정들을 모아 더욱 열심히 면학 정진할 수 있기를……

내가 공연한 말을 하려는 것 같다. 굳이 면학이니 정진이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아이들은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굳이 가르치려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그런 결심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고답적인 훈계가 아이들의 사기를 오히려 떨어뜨려 버릴 것 같았다.

오늘 아이들의 이 노래자랑은 저들에게 아름다운 기억과 꿈을 가득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 기억과 꿈을 밭으로 하여 고운 심성, 착한 마음들이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우정의 꽃밭이 되어 젊은 날의 아름다운 사랑과 추억이 탐스런 꽃봉오리로 피어날 것이다. 그런 학창시절이 되기를 빌 뿐이다.(20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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