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무소유'가 없다

이청산 2010. 3. 29. 11:43

'무소유'가 없다



 법정스님이 입적하셨다. 스님의 유언대로 분향소에는 조화도 없고, 장례식도 만장도 추모사도 없고, 관 대신으로 가사를 덮고 수의 대신으로 평소 입던 승복을 입은 채 대나무 평상 위에서 다비에 드셨다. 다비를 바친 스님의 법구는 사리도 수습하지 않고 습골, 쇄골의 과정을 거쳐 수행하시던 산야에 산골되었다.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도 무소유의 자유를 만끽하고 가셨다.

나는 지금 공황 장애를 겪고 있다. 스님이 남기신 모든 글을 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몇 권의 책을 읽으며 스님의 생각과 글을 흠모해 오던 터였다. 그 청결한 생각들이며 천의무봉의 그 문장들을 본 받으리라 했다. 사숙해 오던 분이 떠나셨다. 그 안타깝고 애통한 마음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 것 같은데, 무어라고 써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쓸 수가 없다.

내가 가진 어떤 최상의 어휘로도 그 맑고 향기로운 삶과 정신을 추모할 수 없었다. 그 숭고한 생애에 어눌하기 짝이 없을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이러고도 내가 글을 즐겨 쓴다고 하는 사람인가? 생각할수록 머리 속은 하얗게 지워지기만 했다. 스님과 스님의 입적을 생각하면 백치처럼 오히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달라."는 말씀에 이르러서는 절망감마저 느껴진다. 그간 스님이 남긴 말과 글을 이승의 업보와 허물로 여긴 듯하다지만, 무엇이 말빚이란 말인가. 그렇게 청량한 감동을 주던 글들이 말빚이라면, 장삼이사 문학가들이 쓴 글들이며, 부질없는 나의 글들이란 얼마나 큰 업보인가.

출판 업계에서는 유지를 받들어 스님의 모든 책들을 절판하기로 했다고 한다. 서점에서는 스님의 책들에 대한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급기야는 어느 인터넷 경매에서 스님의 책 '무소유'가 출간 당시 가격의 700배가 넘는 110만원에 낙찰이 되었다고 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한 스님의 무소유 정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행위일 것 같기도 하지만, 스님의 말씀들에 얼마나 큰 감동을 느꼈으면 그리할까, 라고 생각하니 낙찰자의 심정이 남의 일 같지 않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도 몇 권이나마 스님의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스님의 입적으로 공허해진 마음에 조금의 위안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나에게도 이삼십 년 전 초간 당시에 구해 놓은 조그만 문고본인 '무소유'라는 책이 있다. 다시 듣고 읽기 어려운 스님의 말씀이라 생각하니 그 책을 가지고 있다는 마음에 큰 안도감이 들었다.

어찌 하다 보니 나는 두 채의 집을 쓰고 있다. 한 채는 오래 전부터 지닌 본가요, 한 채는 직장을 따라 쓰고 있는 사택이다. 우리 내외 모두 사택을 십여 년째 주된 주거지로 쓰면서 본가는 어쩌다 한 번씩 들르는 형편이다. 사택은 자주 옮겨야 하니 임시 필요한 용품만 두고 있는 터라 책들조차도 당장에 보는 책이 아니면 거의 본가에 두고 있다.

'무소유'도 본가에 두고 있는 책이다. 근간에 나온 스님의 책 '맑고 향기롭게', '아름다운 마무리' 등은 사택에 두고 가끔 읽고 있지만, '무소유'는 하도 오래 전의 것이라 솔직히 말하여 스님의 입적 전까지는 까마득히 잊고 지내왔다. 스님이 입적하시면서 책의 절판을 유언하시어 책이 귀해지니, 그 오래된 책이 새삼스레 생각이 나고, 그 책을 내가 가지고 있음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게 생각되었다.

엊그제 본가가 있는 곳에 가야 할 일이 있어, 볼일을 마치고 본가에 들러 '무소유'부터 바쁘게 찾아보았다. 서가를 다 훑어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책이라 잘 보이지 않는가 하여 서가를 몇 번이나 뒤져보았지만, 이걸 어쩌나. 아무리 살펴도 보이지 않았다. 으레 있으려니 하고 관심에서 조금 벗어난 사이에 종적을 감추어 버린 것 같다.

너무도 아쉽고 애통했다. 늦은 밤 사택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는데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책을 찾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은 꿈으로까지 이어졌다. 시간이 흐름을 따라 안타까움이 가셔지기는커녕 더욱 간절해지는 것만 같았다.

'무소유'가 없어진 것을 두고 무엇 때문에 이리 안타까워하는가. 고가에 낙찰되었다는 그 물질적인 값어치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순간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문득 스님의 한 말씀이 떠오른다.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은 온통 물질의 야욕에 차 있는 것 같아, 울림이 있는 삶을 살기를 바라고 있는 스님에게 부끄럽고도 송구스러운 마음이 솟아오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바삐 찾느라 못 찾았을 뿐이지 어딘가는 있을 것이라고, 나중에 차근차근 찾다가 보면 먼지 묻은 조그만 책이 날 보란 듯이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스님이 가지신 맑은 복 네 가지로 책, 차(茶), 음악, 채전(菜田)을 치시면서 그 중 으뜸이 책이라 하셨거늘, 책 지니기를 탐내는 것은 스님도 용서하실 것이라는 변명으로 자위를 삼을수록 보이지 않는 '무소유'에 대한 안타까움이 자꾸만 커져 간다.

다시 나의 공황 장애는 한동안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스님에 대하여 사랑도 존경도 차마 말할 수 없다. 그 고결, 청결한 삶과 뜻을 나의 가난한 언어로 어찌 우러를 수가 있겠는가. 어찌하였거나 '무소유'만은 소유하고 싶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스님의 향기로운 정신세계가 아스라하다.♣(201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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