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졸업식을 축제로

이청산 2010. 2. 17. 13:03

졸업식을 축제로



록밴드 '케취 사운드'가 뿜어내는 소리가 널따란 강당을 꽉 메워 나갔다. 강당을 채운 졸업생과 재학생들, 학부모들과 축하객들은 울려 퍼지는 사운드에 맞추어서 손뼉을 쳤다. 사운드가 절정을 이룰 때 아이들은 모두 함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한 해 동안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결과로 저마다 가고 싶은 대학, 공부하고 싶은 학과를 가려서 모두들 합격했다. 졸업식 날이 다가왔다. 졸업식을 마치면 이제 이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갈 것이다. 지난 고교시절은 참 힘이 들었다. 가고 싶고 보고 싶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밤낮 교과서며 문제집만 펼쳐 놓고 있어야 했다. 그 고달팠던 시절을 뒤로하고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졸업식 풍경-. 개식사에 이어 국민의례를 하고 졸업장을 수여하고, 우수상, 개근상, 공로상, 무슨 상, 무슨 상……, 누가 주는 상, 또 누가 주는 상……. 상을 주고받는 데만도 한 시간은 좋게 걸린다. 처음 몇 사람이 받을 때는 축하의 박수를 잘 치다가 하도 많으니 박수도 심드렁해진다. 상도 참 많이 준다. 상은 귀해야 받을 맛이 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상이 흔해도 못 받는 사람이 있다. 흔한 상은 받아도 귀한 줄 모르고, 그것도 못 받으면 더욱 소외감이 느껴지지는 않을까. 정치인들이 주는 상에는 상품도 없다. 공직선거법이 상품을 못 주게 하기 때문이다. 받아도 개운치 않다. 학교장의 회고사에 이어 축사, 축사……. 졸업을 축하한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여 훌륭한 사람 되라……. 모두 귀한 말씀들이지만 말씀하는 분만 다를 뿐, 내용은 한결 같은 말씀들이다. 그 졸업식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간직하게 될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졸업식의 방법은 없을까?

지역의 유지님들께 졸업식 안내장을 보냈다.

"……이번 졸업식에서는 졸업생들이 희망차고 활기 넘치는 기상으로 학창을 나서게 하기 위해 특별 축하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외래상 및 장학금은 영상으로 소개하고, 내빈 축사는 축하 공연으로 대체할 예정이오니 젊은이의 장도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졸업식 날, 식의 시작 시각이 가까워 올 무렵 지역 유지 몇 분이 내빈으로 오셨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내장에서 미리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졸업식에서는 의식은 가급적 간단하게 하고, 축하 공연을 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좋아하겠지요……. 어느 초등학교도 몇 그렇게 하더니 내빈들이 안 오니까, 요새는 그래 안 한다고 하대요."

"ㅇ중학교도 오늘인데, 거기 갈려다가 여기 왔는데……"

말씀하는 유지님의 얼굴에 옅은 그늘이 드리워지는 듯했다.

식이 시작되었다. 무대 위에는 졸업식과 축하 공연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리고, 경쾌한 색깔의 풍선으로 무대 가장자리를 장식하였다. 앞자리는 졸업생들이 앉고 뒷자리는 재학생들이 앉았다. 양쪽 옆으로는 내빈과 학부모님, 선생님들이 자리 잡았다. 손마다 꽃을 든 축하객들이 뒤쪽을 빈틈없이 채웠다.

학교에서 한 해 동안 해온 여러 가지 교육활동들이 무대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움직이는 영상으로 펼쳐졌다. 아이들이 자신의 얼굴이 비칠 때마다 환호를 했다.

교감선생님이 내빈을 소개하고 식의 시작을 알리는 개식사에 이어 국민의례가 진행되었다.

졸업생 대표가 단상에 올라왔다. 졸업장을 수여했다. 모두들 축하의 박수를 쳤다. 수위 졸업생에게 학교장 상을 수여했다. 다른 수상자들은 스크린을 통해 받는 상의 종류와 받는 사람의 이름이 소개되었다.

학교장의 회고사 순서다. 한 해 동안 열심히 공부해 온 성과에 대해 칭찬하고, 졸업을 하더라도 교훈의 정신을 잘 실천할 것과 뚜렷한 목표를 세워 생활해 줄 것,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 줄 것을 당부했다. 1부 순서가 끝났다.

교무부장이 진행했던 1부에 이어 학생이 사회를 맡는 2부 축하공연 순서가 시작되었다. 1,2학년 재학생들이 졸업생들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무대였다. 막이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갔을 때 무대에는 노래 동아리 '소리샘' 아이들이 서 있었다. 독창과 합창을 섞어가면서 부르는 노래는 높고 낮아지는 가락으로 은은하면서도 기운차게 봄비처럼 강당을 적셔 나갔다. 노래가 끝나자 소낙비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래가 끝나자 1학년 남, 여 학생 두 사람이 등장하여 단락을 번갈아 가며 정감 어린 목소리로 축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

그 때마다 힘이 되어 주던

선배님의 따뜻한 손길,

선배님의 아름다운 마음이

더 큰 세상에서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이길 바랍니다.

 

새 학문의 너른 광장에서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 세상에서

선배님의 꿈을 맘껏 펼치세요.

미래를 향해 큰 날개를 펴고

 세상을 품에 안으세요.

……"

 

졸업생들은 감회에 젖는 듯 눈과 귀는 모두 무대 위의 두 후배에게로 모으고 있었다.

이어 댄스 동아리 '신무혼' 이 등장했다. 빠른 템포의 음악은 경쾌하고도 격렬하고, 느려지는가 싶더니 문득 빨라졌다. 그 음악의 흐름에 따라 정겹고도 기묘한 몸짓으로 춤사위를 엮어 나갔다. 아이들은 환호와 함께 손뼉을 치며 춤을 추는 아이들과 호흡을 같이 했다. 노래와 춤이 함께 어울리는 '소리샘'과 '신무혼'의 합동 공연이 진행되기도 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춤도 노래도 모두 졸업을 축하는 뜻을 담은 것이라 했다.

"예! 참 좋습니다. 저 아이들 좋아하는 거 봐요. 참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옆에 앉은 운영위원장님이 감격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요."

마지막 순서로 일렉 기타와 베이스 기타, 키보드, 드럼으로 구성된 록밴드 '케취 사운드'가 등장했다. 밴드의 연주에 맞추어 싱거 희광이가 세련된 목소리로 'glory days'를 불러나갔다

 

"……

 오늘은 그대의 날 오늘은 우리의 날

 어제보다 아름다워진 당신과 나의 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 그 순간

  My glory days

  ……"

 

젊은 날의 애틋한 꿈과 낭만을 노래하는 내용이었다. 조용히 듣다가도 템포에 따라 팔을 들어 물결처럼 흔들거나 손뼉으로 박자를 맞추기도 했다. 'I'm just a days'라는 노래 한 곡을 더 부르고 연주가 끝났을 때, 강당 안의 모든 사람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갈채를 보내며 환호했다.

모든 공연이 끝났다. 아이들과 학부모님, 축하객들이 함께 치는 박수 소리는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교무부장이 단상에 올라가 '교가 제창'을 알리고서야 겨우 잦아들었다. 모두가 일어섰다. 그리고 지휘자의 지휘를 따라 쾌활하고 씩씩한 목소리로 교가를 불렀다. 교가가 끝나면서 졸업식도 모두 끝났다.

축하객들은 아이들 사이사이를 들어와 아들, 딸들에게 형, 동생들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문득 한 학부모님이 감격에 겨운 듯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렇게 잘 가르쳐 주셔서-."

졸업생들은 마지막 종례를 위하여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향했다. 학부모님들도 아이들을 따라 갔다. 박수와 함성의 열기가 뜨겁던 강당이 썰물의 바다처럼 비어갔다.

아이들은 이 졸업식에서 무엇을 얻고, 느꼈을까. 커다란 가르침은 못 얻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공연 순간의 환호만이 아이들의 뇌리 속을 채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환호가 뜨거운 감성이 되고, 따뜻한 인정이 되기를 빌어본다. 그 감성과 인정이 자신과 이웃을 위한 사랑으로 거듭나기를 살며시 빌어본다.♣(20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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