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살고 싶은 마을

이청산 2010. 2. 10. 08:43

살고 싶은 마을



"이런 일, 평생 처음일세!"

"우리 마을이 이렇게 좋은 마을인 줄이야!"

날씨는 차가웠지만, 회관 앞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는 한가득 웃음꽃이 피어났다.

행여 기념식이 시작되는 시간에 늦을세라 속력을 다하여 문경의 마성 못고개마을로 달려갔다. 퇴임 후의 삶을 의탁하기 위해 집터를 마련해 놓은 곳이다. 한 시간 여를 달려 식이 시작되기 십 분 전쯤에 마을에 닿았다. 마을회관 주위 길섶에는 승용차들이 빽빽이 줄지어 섰다. 차에서 내리자 면장이 맨 먼저 인사를 했다. 이장이 달려왔다. 감격과 기쁨의 인사를 나누었다. 도의원, 시의원들 그리고 문경농업기술센터 소장과도 서로 축하한다며 인사를 나누었다.

"이 모두가 선생님 덕분입니다."

농촌진흥청의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농촌마을 100선' 공모에 내가 못고개마을을 응모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뇨, 마을 덕분이지요."

전국에서 응모한 마을을 대상으로 200곳을 먼저 뽑아, 다시 여러 가지 조사 과정을 거쳐 100곳을 선정하였는데, 이 마을이 '100선' 마을에 당선이 된 것이다. 농촌진흥청에서 보낸 지정패를 회관 앞에 달면서 그 기념식을 거행하려 하고 있다.

회관 앞에는 문설주 위 가운데에서부터 두 갈래로 벌려 무지개 빛 갖가지 색의 천을 늘어뜨리고, 슬래브 지붕 벽면에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농촌마을 100선' 선정을 경축하는 푸르고 붉은 색깔로 현란하게 장식한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찬바람을 가리는 천막이 쳐진 회관 앞뜰에는 난로를 피우고 의자를 줄지어 놓아 축하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과 회관 안에 있던 사람들이 천막 안에 자리를 잡았다. 시장이 도착했다.

기념식이 시작되었다. 국민의례에 이어 이장이 먼저 나와 경과보고를 했다. 이장의 보고는, 임진왜란 때 때 원군으로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 마을을 지나다가 큰 인물이 날 형세인 것을 보고 지세를 꺾기 위해 고개에 못을 박아 '못고개마을'로 불리게 되었다는 마을의 유래담부터 시작했다. 그런 전설이 있을 만큼 좋은 지세를 지니고 있으며, 배산임수의 수려한 풍광과 때묻지 않은 청정한 환경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마을임 말하고, '늘 살고 있는 곳이라 좋은 줄을 모르고 살았는데, 우리 마을이 좋은 마을임을 선생님이 다시 일깨워 주셨다.'면서 나에게 박수를 치게 하였다.

시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조그만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난 곳임을 말하고, 자연 환경도 좋지만 인심도 좋아 살기 좋은 마을이라며 이 마을이 드러날 수 있게 된 것이 그러한 점을 간파한 나의 공이라며, 나를 향한 박수를 두 번이나 치게 했다. 더욱 살기 좋은 마을이 될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어르신들을 잘 모시겠다며 말을 맺었다.

나에게도 축사의 기회가 주어졌다. 과분한 칭찬에 감사함을 말하고, '제가 아무리 응모한들 우리 못고개마을이 살기 좋은 마을이 아니라면 어찌 선정될 수 있었겠느냐'며 공을 마을에 돌렸다. 이 좋은 마을에 살기를 결정한 것은 아주 잘 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더니 시장님이 제일 먼저 박수를 보냈다. 이 지정을 계기로 못고개마을이 한층 더 '살기 좋고 가보고 싶은 마을'로 발돋움하기를 빌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못고개마을은 나의 제2의 고향, 생애의 마지막 고향이 될 것이며, 다정한 이웃이 되어 모두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뜻을 말했다. 사람들은 화창한 웃음과 함께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 내 마음은 벌써 즐거운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회관 문 위에 붙여진 지정패의 제막 순서가 이어졌다. 왼쪽은 시장님이 맨 앞에서 오른쪽은 내가 맨 앞에서 서서 제막 줄을 잡았다. 사회자의 구령을 따라 일제히 줄을 당겼다.

정겨운 곡선으로 다듬은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농촌마을 100선' 로고를 새긴 지정패가 드러났다. 패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못고개마을은 농촌진흥청에서 지정한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농촌마을입니다."

사람들은 다시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제막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지정패를 배경으로 하여 기념촬영을 하였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환담을 나누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손을 잡고 고맙다는 말씀들을 송구스러울 정도로 거듭했다. 이장이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도울 수 있는 마땅한 체련 시설이 없다고 말하자 시장님은 즉석에서 면장에게 '시설을 설치해 드릴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사람들은 환호를 모아 박수를 쳤다. 식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난로 가로 사람을 모으던 추위는 어느새 마을 빠져나가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불그레한 화기들이 한껏 피어나고 있었다. 보람에 찬 기념식이요, 자랑에 찬 현판식이었다.

지난 가을, 인터넷에서 농촌진흥청의 '100선' 마을 공모 요령을 접하고, 못고개마을을 응모하기로 마음먹고 신청서를 쓸 때만 해도 이리 성대한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다만 못고개마을을 보고 느끼고 인상 받은 점을 진솔하게 말했을 뿐이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 맑고 깨끗한 환경, 서로 정을 나누며 사는 이웃'을 바람직한 농촌의 모습으로 정하고 못고개마을이 그런 농촌상에 잘 어울리는 것임을 강조하고, 푸른 산 아래에서 맑은 강을 내다보며 오순도순 살고 있는 마을의 모습을 담은 몇 장의 사진을 붙였었다. 그 모습이 심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 내가 이 마을에 퇴직 후를 살기로 하고 터를 잡아 놓긴 했지만, 아직 살아보지는 않은 땅이라 이방인의 눈에 비친 마을의 모습을 말했었다. 농촌진흥청에서도 가본 농촌마을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마을을 말해 달라고 했었다. 이장이 말했듯이, 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좋은 줄을 모르고 살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알 것 같았다. 이제는 이방인의 마음이 아니라 주민의 처지가 되어 수려한 풍광과 청정한 환경을 언제까지나 어그러지지 않도록,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켜나가는 것이요, 이 곳 사람들과 삶을 함께 나누는 정다운 이웃이 되어 더욱 따뜻한 마을, 살기 좋은 마을, 살고 싶은 마을이 될 수 있도록 애를 써 나가는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가슴 한 자리에서 뜨거운 열기 덩어리 하나가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 때, 중로의 한 이웃이 다가와 내 손을 꽉 잡았다.

"나는 우리 마을이 그렇게 좋은 마을인 줄도 모르고……, 다른 데에 가서 살고 있는데요, 다시 돌아와야겠십니더. 선생님, 우리 같이 사이입시더!"♣(201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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