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기

대안탑과 서안성

이청산 2010. 3. 1. 15:28

대안탑과 서안성

-중국 여정기·7



서안 일정과 중국 여정의 마지막 날이요, 경인년의 새로운 한 달도 다 가는 1월31일 오전, 서안시 남동쪽 교외에 있는 대자은사(大慈恩寺)를 찾아갔다. 하늘은 흐리지만 비가 우리의 발길을 잡을 것 같지는 않다. 대자은사 앞 광장에 도착한 것은 9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대자은사는 당나라 고종이 돌아가신 어머니 문덕왕후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세운 황실 사원으로 건립 당시에는 23만㎡의 부지에 1,897칸으로 지어진 엄청난 규모의 사찰이었으나, 당나라 말기에는 모두 소실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대자은사 앞에는 현장법사(玄裝法師 602∼664)의 커다란 입상이 대안탑을 등지고 대당불야성(大唐不夜城) 광장을 향해 서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합장으로 예를 올리기도 한다.

절 경내로 들어가니 널찍한 마당 양쪽으로는 종루(鐘樓)와 고루(鼓樓)가 서 있고 가운데는 '國泰民安'이라는 글자를 커다랗게 새긴 청동 향로가 서 있다. 대리석에 용을 새겨 비스듬히 눕힌 기단 위에 대웅보전이 서 있고 그 앞에는 대형 촛대에 붉은 색 초들이 꽃불로 제 몸을 태우고 있었다. 대웅보전을 돌아드니 다시 널따란 마당이 나타나면서 양쪽 맛배지붕의 전각 안에는 관음전(觀音殿), 재신전(財神殿)을 비롯한 여러 개의 불당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의 부처를 모시고 있었고, 정면에는 지붕 위로 대안탑(大雁塔)이 우뚝 솟아 있는 법당(法堂)이 보였다. 관음전에는 수많은 팔이 달린 관음보살상과 함께 옥으로 부처님의 일생을 새겨 채색한 대형 벽화가 벽의 전면을 채우고 있었다.

법당을 돌아 다시 후원으로 드니 정면에 현장법사(玄裝法師)의 행적을 벽화와 유물로 보여주는 광명당(光明堂)이 나타난다. 현장법사는 불교 성전인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에 모두 정통한 승려라 하여 삼장법사(三藏法師)로도 불리는데, 광명당 안에서는 629년 장안을 출발하여 트르판, 사마르칸트를 거쳐 바미안, 간다라를 거쳐 마침내 동경하던 천축(인도)에 이른 이후 16년 동안 인도의 여러 곳을 다니며 수행하다가 16년만인 645년에 150개의 불사리, 8체의 불상, 657부의 경전을 가지고 장안으로 돌아온 행적을 옥으로 새긴 벽화와 유물로 보여 주고 있다.

인도에서 돌아온 현장법사는 대자은사에 11년간 머물며 경전을 번역하고, 652년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갈무리하기 위하여 대안탑을 지었다. 인도를 향해 가던 현장이 어느 날 사막 한가운데를 걷다가 길을 잃어버렸을 때 어디에선가 기러기 한 마리가 날아와 길을 인도해 주었다고 하는데, 부처가 기러기로 현신하여 자신을 도왔다고 여겨 이를 기려 '대안탑(大雁塔)'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벽돌을 쌓아 흙을 채워 쌓은 탑은 오래 가지 않아 무너지고, 701년에서 704년 사이에 측천무후가 10층으로 다시 세웠다가, 그 후 전란으로 인해 위의 3층이 무너져 7층만 남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20위엔의 입장료를 내고 탑 안으로 들어간다. 높이 4.4m, 면적 2,200㎡의 정방형 기단 위에 67m의 높이로 세워진 탑은 계단을 타고 오를수록 내부가 점점 좁아진다. 1층의 아치형 문미(門楣)에는 당나라 때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석각 도안이 보존되어 있고, 문 옆 감실에는 당나라 고종이 쓴 글을 명필 저수량( 隧良)의 글씨로 새긴 비석이 눈길을 끈다. 층마다 불상이며 소형 탑을 봉안해 놓거나 벽화를 걸어 놓기도 했지만, 현장법사가 보관했다는 인도의 불경은 역사 속에만 남아 보이지 않고, 사방의 아치형 창문 너머로 창연하면서도 잘 정비해 놓은 듯한 서안 시가지 풍경이 시원스레 시야에 들어온다. 시가지 풍경을 한참 조망하다가 탑을 내려와 밖으로 나와서 뒤돌아보니 탑이 아니라 벽돌을 쌓아 지은 거대한 건축물이다. 중국은 거대하다. 땅도 광활하고 사람도 많고 건축물도 거대하다. 그러나 그 거대 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도 거대하리라는 생각이 서안을 떠나는 날의 여정에까지도 늘 따라 다니기를 멈추지 않는다.

서안성으로 간다. 시가지를 잠시 달려 서안성에 닿았다. 명나라 때(1374∼1379) 새롭게 조성된 성벽이라 하여 명성벽이라고도 하는 서안성은 높이 12m, 폭 12∼18m, 총 길이가 14㎞나 되는 거대한 성으로 현존하는 중국의 성 중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사방으로 모두 네 개의 성문이 있는데, 우리가 도착한 곳은 성의 문루(門樓)에 '욱일동승(旭日東升)'이라는 편액을 달고 있는 동문이다. 동문은 생필품과 공물이 드나들던 곳이고, 서문은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 서방 상인들의 출입구였으며, 남문은 황제의 전용문이고, 북문은 사절단들이 드나들던 곳이었는데, 인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현장법사를 황제가 남문에서 맞이한 것이 단 한 번의 예외적인 출입이라 한다. 현장법사가 매우 고귀한 대접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둥근 문을 들어서 두꺼운 성벽을 통과하니 사각의 널따란 광장이 나타면서 또 하나의 성벽과 문루가 보인다. 두 겹으로 축성되어 있다. 수나라 때인 582년에 처음 세워지고 당나라 때 크게 확장되었다가 수차례의 전란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파손된 것을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1378년부터 8년간에 걸쳐 당나라 때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우리가 들어서고 있는 동문을 장락문(長樂門)이라고 하는데, 청나라 때 다시 세웠다고 한다. 명나라가 멸망한 원인이 된 '이자성(李自成, 1606∼1645)의 난' 때, 농민반란군을 이끌고 성을 쳐들어온 이자성이 장락문 편액을 보고 '황제가 오랫동안 즐거우면 백성들은 고생하기 마련이다.'라고 하자 그의 부하들이 불을 질러버렸다고 한다.

안쪽의 문루 쪽 성벽에는 성벽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당초에는 없었던 것을 관람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인 듯하다. 적이 올라오기 좋도록 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계단을 걸어 성벽 위로 올라가니 거대한 문루 양쪽으로 널따란 도로가 나타난다. 처마를 붉은 색과 황금색으로 단청한 누각 2층에는 '자기동래(紫氣東來)'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동쪽의 청나라가 하늘의 붉은 기운을 받아 중국을 지배한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양쪽에 널따랗게 길게 뻗은 길은 너비가 15m에 이르는데, 길이 아니라 수많은 병력들이 진을 치고 적과 대치하는 곳이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은 걷거나 자전거나 전동차를 이용해 성을 돌아볼 수 있는 관광로가 되어 있다. 문루 주위의 성 위에는 적과 싸울 때 사용했던 화포, 화차 등 여러 가지 무기가 역사의 유물로 전시되어 있었다. 성곽이며 문루, 예날 무기 등의 역사적인 유물과 대조를 이루면서 고층 빌딩들이 성을 둘러싸고 있었다. 지난날의 역사와 현재의 삶이 공존하고 있다. 성 주위에는 적의 침공을 방지하기 하기 위한 해자(垓字)가 흐르고 있지만, 시대의 변천은 그 위에도 다리가 놓여 수많은 차량들이 성의 안팎을 내왕하게 했다.

성 위 14㎞를 다 걸어볼 수 있는 여유를 얻지 못해 동문 주위에서만 성을 둘러보고, 성에서 보이는 시가지를 조망하고 성을 내려 왔지만, 역시 중국은 '거대하다'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성곽만 거대한 것이 아니라 성 안팎에 입립하고 있는 수십 층 빌딩들도 참으로 거대했다.

중국은 지금 발전하고 있다. 더욱 거대해지고 있다. 북경의 천안문에 높이 걸린 구호가 생각이 난다. '世界人民大團結萬歲'-. 중국의 그 거대한 국체(國體)와 국력(國力)으로 세계의 평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중국이 거대해질 때 우리는 별로 편치를 못했다. 침공을 당하거나 종속적인 관계에 함몰되기도 했다. 물론 그런 비극적인 역사가 다시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대안탑을 올라보고 서안성을 밟아보는 것으로 중국의 여정은 끝났다. '거대한' 중국도 작별이다. 이제 북경으로 돌아간다. 오늘 밤을 북경에서 자고 내일이면 조국으로 가는 하늘을 날을 것이다. 내일은 봄맞이 달 2월이다. 조국의 새 달, 새 날을 맞으러 간다.

작지만 아름다운 강산이 있고,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는 조국으로 돌아간다.

중국이여, 안녕! 평화의 세계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2010.2.25)

 

■ 중국 여정기, 다음 링크로 계속 됩니다.

    중국연수기

    천단공원의 놀라움

    고궁과 이화원 그리고 서태후

    지하 세상의 군단과 궁전

    만두집 덕발장

    화청궁의 사랑과 눈물

    대안탑과 서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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