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기

천단공원의 놀라움

이청산 2010. 3. 1. 15:11

천단공원의 놀라움

-중국 여정기·2



북경 외성의 남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천단공원은 중국에서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행하기 위하여 설치한 제단이다.

천단공원에 들어선 것은 중국 방문 이틀째 날의 오전이었다.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천단공원'이란 명패가 걸린 붉은 벽의 커다란 문이었다. '붉은 벽'은 중국을 떠나는 날까지 우리의 시야를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그 문을 들어서면 여러 가지 원형 건축물과 함께 끝이 보이지 않을 듯이 널찍한 광장이 나타난다. 부지 면적이 무려 273만㎡로 천안문 광장보다 7배나 더 크다고 한다. 놀랄 만한 일이었다. 붉은 색의 갖가지 시설과 장식물, 보는 이를 압도하는 커다란 건축물, 사통팔달의 널찍한 광장은 어디를 가나 중국의 특징이 되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광장을 통과하면 황제가 제천의식을 거행하던 원구단, 역대 황제들의 신주를 모셔 놓은 황궁우, 황제가 매년 풍년을 기원하던 높이 32m의 기년전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하늘을 형상화한 흰대리석 재질의 3층으로 되어 있는 원구단의 제단은 읽은 제문을 태우던 천심석을 중심으로 하여 부채꼴 모양으로 9단의 돌이 원을 그리고 있는데, 1단에 9개의 돌, 마지막 9단에는 81개의 돌들로 거대한 원을 이루고 있다. 9는 황제의 수로서 천단에 오를 수 있는 이는 오직 황제라는 뜻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황궁우는 흰대리석 기단 위에 세워진 원형 목조 건물로 매우 섬세하고도 화려한 모습이었다. 소리가 벽을 타고 벽을 타고 다시 돌아온다는 건물 주위의 회음벽(回音壁), 손뼉 소리가 첫 번째 돌에서 치면 한 번, 두 번 째 돌에서 치면 두 번, 세 번째 돌에서 치면 세 번 메아리가 들린다는 건물 중앙 바닥의 삼음석(三音石)이 호기심을 끌었지만, 너무 많은 관람객 탓인지 그 소리들을 직접 들을 수는 없는 것이 아쉬웠다.

기년전은 흰대리석 제단 위에 전각을 올린 것으로 4계절을 뜻하는 4개의 기둥을 근간으로 하여 열두 달을 뜻하는 12개의 기둥과 바깥쪽의 하루 12시간을 뜻하는 12기둥을 세워 전각에 작은 우주를 담고 있었다.

주나라 때부터 행해진 제천의식은 한나라 이후는 모든 황제의 의무가 되어 주로 동지 때 추수감사제의 뜻을 담아 밤에 원구단에 올라 섶을 태워 하늘에 연기를 올려 보내는 것으로 의식을 치렀는데, 제단이며 전각들은 엄청난 규모를 과시하고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그러나 천단공원의 놀라움은 제단과 전각의 규모, 엄청난 부지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공원 속을 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방인의 눈과 가슴을 더욱 놀라게 했다.

공원을 들어서자 윤기 나는 블록이 깔린 광장에 엄청나게 큰 붓으로 글자를 쓰고 있는 노인 몇 사람이 보였다. 모양도 빼어나고 솜씨도 능숙하다. 한 바닥 가득히 글을 써 놓고도 계속 쓰고 있다. 이미 쓴 글은 서서히 지워지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먹물이 아니라 맹물로 쓰고 있다. 쓰는 순간 지워질 글자일지언정, 열심히 쓰고 있는 모습이 세상의 모든 명리를 넘어서서 우주 만물의 무궁한 이치를 글자 속에 새기며 유유자적하는 도인과도 같이 보였다.

그 공원에 도인의 탈속한 모습이 있는가 하면, 속세의 풍속을 즐기면서 여유작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제단이며 전각을 돌아 공원 외곽으로 나오니 경쾌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리 나는 곳으로 눈을 돌려보니 몇 사람들의 여인네들이 조그만 녹음기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날렵한 사위로 율동 같기도 하고 운동 같기도 한 춤을 즐기고 있었다. 흥을 누르지 못한 일행 중의 한 사람이 그 여인네 속으로 뛰어 들어 함께 스텝을 맞추어도 여인네들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춤사위의 즐거움 속으로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회랑으로 나오니 난간에 무리를 지어 앉아 마작이며 카드놀이를 즐기고 있는 노인들이며 여인들이 보였다. 약간의 지전(紙錢)들을 앞에 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놀음을 놀고 있는 듯했지만, 눈에 핏발을 세워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난간 안쪽에서는 오, 육십 줄은 족히 되었음직한 중로의 두 여인이 서로 주고받으며 제기를 차고 있는데, 발로 받았다가, 이마로 받았다가, 가슴으로 받았다가, 몸을 한 바퀴 돌려받았다가, 다리를 뒤로 제쳐 받았다가 하는 품이 경탄을 금할 수 없게 했다. 여간 놀라운 재주요, 기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슨 곡마단의 여인 같지도 않고 여염집의 평범한 주부일 듯한데 그 기술이 여간 놀랍지가 않았다. 그 두 여인뿐만 아니었다. 회랑을 벗어나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삼삼오오 모여서 한껏 기술도 부려가며 제기들을 차고 있고, 제기를 들고 와 사 달라고 조르는 장사꾼도 많이 보였다. 일설에 의하면 고대 중국에서 무술을 연마하기 위하여 고안된 축국(蹴翹) 놀이에서 제기차기가 연유되었다고도 하여 그 시기를 중국의 전설적인 왕 황제(黃帝, B.C.2700년경) 때로 보는 견해가 있어 이 놀이의 뿌리가 깊은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오늘날까지 이토록 생활화되어 만인이 즐기는 놀이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제기차기 놀이 구경에 잠시 침잠하고 있으려니 공원 또 한쪽에서 굉음 같은 음악소리가 고막을 심하게 진동시켰다. 무슨 일인가 하여 달려 가보니, 백여 명은 될 듯한 일군의 노소 남녀들이 가장자리 한 쪽의 커다란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신명나는 춤판을 벌이고 있었다. 함께 흥에 겨워 춤 구경을 하고 있는데 아무리 보아도 춤꾼들이 모두 일행 같지도 않고, 아주 젊은 사람은 보이지 않아도 삼십대에서 칠십대 정도까지 각색 각층의 사람들이 어울려 놀고 있는 것 같았다. 두어 쌍의 남녀는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안기도 하며 스텝을 맞추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혼자서 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울려' 있다기보다는 함께 춤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들에게는 보편적인 생활 문화일지는 몰라도 이방인의 눈에는 사뭇 신기하고 놀랍게만 보였다.

이 천단공원의 놀라움을 보면, 지금 중국은 체제에 눌려 사는 사회주의 나라도 아닌 것 같고, 귀한 물자에 거친 인심 속을 사는 공산주의도 아닌 것 같다. 사회 개방 이후 날로 성장해온 경제 때문일까. 천성으로 간직해온 대륙적인 기질 때문일까. 사람들은 활기에 넘치고 여유가 충만한 것 같다. 다른 데는 몰라도 천단공원에서이기에 사람들이 활력에 넘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번 중국여행에서 둘러본 자금성이며, 이화원이며, 진병마용갱이며 화청지며 하는 것들은 모두 황제와 권력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래도 천단공원은 나라에 풍년들기를 비는, 그래서 백성의 삶도 살펴준 황제의 마음이 담긴 곳이라 사람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것이지도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의 삶을 잘 살펴주는 나라가 행복한 나라, 평화로운 나라임에는 틀림없는 일이겠다.

다음 찾아갈 곳은 2008 북경올림픽을 치러낸 중국국가체육장이라 한다. 거기서는 중국의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천단공원에서 들려오던 음악 소리며, 그 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던 춤사위로 여정의 피로감을 덜어내고 다음 길을 나선다.♣(2010.2.6)

 

■ 중국 여정기, 다음 링크로 계속 됩니다.

    중국연수기

    천단공원의 놀라움

    고궁과 이화원 그리고 서태후

    지하 세상의 군단과 궁전

    만두집 덕발장

    화청궁의 사랑과 눈물

    대안탑과 서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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