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기

만두집 덕발장

이청산 2010. 3. 1. 15:22

만두집 덕발장

-중국 여정기·6



덕발장(德發長) 만두집은 중국 서안의 서안성 종고루(鐘鼓樓) 광장의 오래된 상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36년에 개업한 덕발장은 중국 국가관광국의 홍보책자에도 소개되어 있을 만큼 서안에서 가장 오래 되고 유명한 만두집이다.

일행이 덕발장에 도착한 것은 해 저물녘인 6시경이었다. 서안의 외곽지역에 있는 병마용박물관과 진시황릉을 둘러보고 오던 길이었다. 진시황제의 지하대군단이라고 할 수 있는 병마용갱의 3개 갱에서 출토된 총 8,000여 개의 병마용, 전차, 기마상을 다 둘러보는 일도 숨 가쁜 일었지만, 박물관의 경내가 엄청나게 넓어 걸어 다니며 관람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힘든 발품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박물관에서 1.5㎞ 떨어져 있는 진시황릉을 찾았을 때, 더 고된 발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능이 아니라 작은 산이었다. 조성 당시에는 높이가 100m도 넘었다지만 지금은 79m의 높이를 200m의 돌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그 힘든 다리품 끝에 저녁때를 맞이하여 만찬장을 찾아가는데, 차를 내려 어수룩한 골목길을 따라 베란다마다 쇠창살을 얼기설기 설치한 고층 아파트를 지나 또 한참을 걸어야 했다. 어떤 음식이 우리의 만찬 식탁을 채울까 기다려졌다. 서안은 비가 적게 내리고 물이 귀하여 농촌지역에서는 옥수수, 밀 등 밭농사를 많이 하고 있어 밀가루 음식을 주식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음식들 중에서 만두 요리가 매우 발달해 있다고 하면서, 오늘 저녁은 유명한 만두집에서 만찬을 하겠다고 안내자가 예고를 내놓은 터였다. 어떤 만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드디어 명나라 때부터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던 종루(鐘樓)와 고루(鼓樓)가 있어 종고루 광장으로 불리는 널찍한 광장의 한쪽에 자리 잡은 상가에 이르렀다. '덕발장(德發長)'이란 상호가 전광으로 번쩍이는 출입문은 여느 식당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니 덕발장 옛 건물의 모습과 갖가지 만두 요리, 만두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조상(彫像)으로 형상화한 전시대가 있었고, 그 한 머리에 커다란 황금 만두가 놓여 있었다. 붉은 색 중국고유 의상을 입은 아가씨의 인사를 받으며 안쪽을 보니 수백 명은 앉을 듯한 대형 홀이 보였다. 2층으로 안내되어 올라가는데 이 식당을 찾은 유명 인사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강택민 전 총리의 모습도 보였다.

널찍한 홀 한쪽에 자리를 잡으니 회전판 위에는 몇 가지 첸차이(前菜) 요리가 이미 놓여 있었다. 그 요리로 입맛을 돋우고 나니, 드디어 이 전통 깊은 만두집이 자랑하는 18가지의 자오쯔엔(餃子宴) 요리가 잇달아 나왔다. 30명의 전속 요리사가 108가지의 만두를 만들어 낸다고 하지만, 다는 먹어 볼 수 없고 18가지를 내어놓겠다고 했다. 한 요리에 한 개씩만 맛을 보라고 하는데, 밀가루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 터였지만, 이 또한 중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한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하며 한 가지도 놓치지 않고 맛을 보기로 했다.

만두의 종류는 고기, 야채, 버섯 등 다양한 재료의 소로 결정이 되었지만, 모양도 물고기, 나비, 꽃 등을 형상화한 기묘한 모양도 호기심과 입맛을 돋우었다. 돼지고기, 닭고기를 넣은 소에 매운 맛과 순한 맛을 따로 하고, 소에 버터를 섞어 별미를 낸 것, 김치, 야채, 토마토, 새고기 등을 소로 넣은 것, 그리고 쪄서 익인 것(물만두), 구워서 익힌 것……. 그렇게 헤아리다 보니 종류가 점점 불어났다. 순하고, 맵고, 달고, 짜고 한 것이 입맛에 맞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미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마지막이라면서 알코올 불판과 둥근 냄비를 내어와 왔다. 신선로라 하는 냄비 안에서는 우윳빛 국물에 강낭콩만한 만두가 끓고 있었다. 진주만두라 했다. 아리따운 여종업원이 나와 서툰 우리말로 무어라 설명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쥐화훠궈(菊花火爐)'라는 만두 샤브샤브였다. 청나라 말 서태후가 반란군에게 쫓겨 피난길에 올랐을 때, 서안 일대에 이르러 입맛을 잃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는 서태후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황실 수행 주방장이 고안해 낸 것으로 즉석에서 끓여서 떠먹는 감칠 맛 나는 요리라는 것이다. 먹을 때에는 미처 몰랐는데 나중에 돌이켜 맛을 상기하니 좀 특별했던 것 같았다.

만두집 '덕발장'에서 입맛을 돋우는 것은 만두만이 아니었다. 객석 앞쪽에 조그만 무대가 있었는데, 만두의 맛을 즐길 동안에 남녀 두 악사가 나와 우리나라 가야금과 흡사한 쟁이라는 악기와 피리를 합주하며 청아하고도 아리따운 선율의 음악을 계속 연주했다. 중국의 전통 음악인 듯한 곱고 신나는 멜로디의 음악을 연주하더니, 객석을 메운 사람들 중에 한국인이 많은 것을 알고는 아리랑이며 사랑의 미로, 가슴 아프게, 고향 무정 같은 익숙한 우리의 대중가요를 연주하였다. 이국 땅에서 우리의 가락은 마치 멀고 먼 이방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감격과 감동을 느끼게 했다.

한 나라의 문화는 흥망과 성쇠를 거듭해온 역사나 예술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음식을 통해서도 사람들의 독특한 삶의 모습이며 역사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쉽사리 접할 수 없고 맛 볼 수 없는 만두에서 중국 서안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며, 환경에 맞추어 발달해 온 문화의 한 단면을 보고 느낄 수 있었음은 유명한 만두집 '덕발장'을 찾은 한 보람이라 할 것이다.

만두 식도락을 마치고 '덕발장'을 나오니 명나라 태조 주원장 홍무제 때 백성들에게 시각을 알려주기 위해 지었다는 종루(鐘樓)와 고루(鼓樓)에서 찬란한 불빛이 쏟아지고 있다. 낮 시각은 종루가 알려주고 밤 시각은 고루가 알려 주었다는데, 지금이 그 시절이었다면 몇 시쯤이라 알려 줄까. 우리는 지금 중국의 몇 시에 서 있는가.♣(2010.2.7)

 

■ 중국 여정기, 다음 링크로 계속 됩니다.

    중국연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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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궁과 이화원 그리고 서태후

    지하 세상의 군단과 궁전

    만두집 덕발장

    화청궁의 사랑과 눈물

    대안탑과 서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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