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김 선생의 결혼식에서

이청산 2010. 1. 11. 20:53

김 선생의 결혼식에서



"……평생의 반려자가 되어 희로애락으로 생애의 사랑을 함께 쌓아갈 것이며, 살고 낳는 일을 함께 하는 것으로 생명의 존엄성을 함께 가꾸어 나갈 것입니다. 신랑 신부가 더욱 값진 인생을 가꾸어 갈 수 있도록 몇 가지 당부 말씀을……"

한 쌍의 남녀가 부부의 인연을 맺으며 새로운 삶의 장을 열려고 하는 순간이다. 그 출발의 증인이 되어 그들 앞에 섰다. 신랑과 신부의 모습이 예쁘고 멋졌다. 평소에 간직하고 있던 아름다움과 멋진 모습을 모두 드러내어 단장한 듯했다.

내 앞에 선 신부 김 선생은 나와 같은 학교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동료 선생님이다.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을 들고 왔을 때, 아주 크게 축하한다고 했다. 예쁘고 귀여운 모습에 소녀 같은 청순미를 간직하고 있었지만, 나이로 보면 진작 했어야 할 결혼이었다. 언제 결혼할지를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터에 받은 청첩장이라 축하하는 마음이 한층 컸다. 결혼식에 참석해서 다시 축하를 하겠다고 했다.

김 선생은, 그냥 참석만 하실 게 아니라 주례를 해 달라고 했다. 나보다 더 훌륭한 분들이 많을 텐데, 내가 어떻게 주례를 하느냐며 사양해도 한사코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나를 믿어 주는 고마운 마음을 야속하게 뿌리칠 수 없어 주례를 서주기로 했다. 지난 해 봄에 박 선생의 결혼식에서도 그런 마음으로 주례를 서 주었었다.

결혼식은 김 선생의 고향 마을 조그만 예식장에서 열렸다. 예식 시각이 가까워지자 식장 안팎에는 하객들로 붐볐다. 김 선생 반 아이들도 많이 왔다. 아이들이 김 선생을 잘 따르는 모양이다. 먼 길을 마다 않고 선생님의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달려온 마음들도 기특했다.

혼주와 하객들이 식장 안에 자리 잡고 앉았다. 주례석으로 가면서 혼주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신랑, 신부가 맏이라서 그런지 양가의 부모님들도 젊게 보였다.

식이 시작되고 양가의 어머니들이 단상으로 나와 초에 불을 붙였다. 새로운 삶의 출발을 알리고, 젊은이들의 앞날을 밝히는 불이다. 사회자는 주례의 임석을 소개했다. 하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단상으로 나갔다. 신랑이 씩씩한 걸음으로 입장하여 양가의 부모님께 첫 인사를 올린다. 뒤이어 아버지의 손을 잡은 신부가 입장을 한다. 축복의 박수가 쏟아진다.

혼인 서약을 받을 테니 큰소리로 대답하라고 했다.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신랑과 신부는 밝고 큰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졌음을 주례의 이름으로 선언했다. 이로써 한 쌍의 부부가 이 세상에 탄생했다. 또 하나의 아내와 남편이라는 이름이 생겨나고, 가족이 된다. 함께 사랑하고, 함께 살고, 함께 낳고, 함께 기르고, 다시 함께 사랑해야 할 가족이 된다. 가슴 설레는 가족이 되는 순간을 내가 증거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 가슴도 설레었다.

사회자가 앞으로 함께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말씀을 주례 선생님이 들려 줄 것이라 했다. 내가 이 아름답고 멋진 젊은이들에게, 충분히 슬기로울 이들에게 무슨 도움의 말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오늘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넉넉한 삶을 살아왔던가. 내 앞에선 젊은이들을 보면서 문득 덧없이 지나온 생애가 찰나로 스쳐갔다.

"사랑은 자기만의 말과 행동으로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항상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관용을 베풀 때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이란 사회생활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이기 때문에 가정이 평화로워야 원만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과 결혼이란 두 사람만의 만남이 아니라 두 집안의 결합이기 때문에 두 집안의 모든 혈족을 나의 혈족으로 알고, 섬기고, 받들고, 사랑하고, 친하기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해주는 말처럼 내가 그렇게 살아왔던가를 생각하니 이마에 땀이 솟는 듯했다. 내가 한창 아름다운 꿈에 젖어 있을 이 젊은이들보다 인생을 조금 더 살았다고 앞에 서서 훈계의 말을 한다는 것이 참 실답지 못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들려주는 나의 말 속에는 훈계의 뜻만이 아니라 행복한 결혼 생활을 축원하는 마음도 녹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말이라고 하면서 자식을 많이 낳도록 하라고 하였다. 뜬금없는 말로 들렸던지 하객들이 웃었다. 아이들을 많이 낳는 것이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 일인 동시에 사회와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일이기도 하다며 말을 이어 나갔다. 부모가 성실하게 살면 아이들도 성실하게 자랄 것이니 많이 낳아 어떻게 키울까를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까를 생각하라고 했다. 이 말은 이 젊은이들에게만 이르는 말이 아니라, 아들과 며느리가 결혼할 때 들려주었던 말이기도 했다. 아직 손녀 하나밖에 두지 못해 지금도 아들과 며느리에게 강조하고 있는 말이다.

내가 두 젊은이에게 주는 말이 다 끝났다. 그런데 감격과 긴장, 꿈과 현실이 서로 엉겨 만 가지 느낌과 생각이 교차하고 있을 이들이 나의 말들을 들어 새길 경황이나 있을까. 잘 듣지 못했다고 해도 탓할 수는 없다. 내 말보다 더 아름다운 생각들로 머리 속이 차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들려주었던 주례문을 혼인서약문과 성혼선언서 사이에 끼워 두었다. 나중에 겨를을 얻어 읽어보고 살아가는 일에 참고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김 선생 반 아이들이 나와 귀여운 율동과 함께 축가를 부르며 선생님의 결혼을 축하했다.

신랑과 신부가 단상을 내려가서 부모님에게 부부로서의 인사를 올린다. 절을 올리고 나면 시어머님은 며느리를, 장모님은 사위를 따뜻하게 안아주라고 했다. 모성의 품으로 한 가족이 된 첫정을 주고받으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안아 줄 때 하객들은 축복의 박수를 보냈다.

신랑과 신부가 나란히 새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축포가 터지면서 꽃가루가 뿌려지고 다시 한번 축복의 박수가 터졌다. 이로써 이들은 한 쌍의 부부가 되어 한 가정을 만들고 한 사회를 이루게 되었다. 그 기념으로 사진을 함께 찍고, 신랑 신부와 축복의 악수를 나누고 예식장을 나왔다. 사랑과 행복이 이들에게 충만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다.

 꽃처럼 아름다운 젊은이들의 모습을 떠오르면서 내 마음속에도 화사한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왠지 허전했다. 나의 말들이 저들의 삶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저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비하면 나의 말들이란 참 실없이 느껴졌다. 무슨 말인들 저들의 꿈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으며, 저들의 사랑보다 더 따뜻할 수 있을까. 내가 한 말이며 그 수사란 공허하기 짝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축복의 마음이 허전한 심사를 덮어 주리라 믿으며 예식장을 나섰다.♣(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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