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

이일배의 수필 <사선을 넘어서>를 읽고

이청산 2009. 2. 26. 15:32

 

 

              이일배의 수필 <사선을 넘어서>를 읽고

                     -'대한문학' 2009 봄호 계평 '체험의 수필적 변용 넓히기'

 

김         길         웅

('대한문학'편집위원, 수필가)

 

  이 한 편의 수필이, '수필은 체험의 결과물'임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교통사고가 이만한 수필을 낳는 돌발변수가 되었으니 이를 우연이라 하랴. 고통 뒤에 수작 한 편을 쑥 뽑아냈으니 그 악몽에서 이미 해방되었으리라 믿고 싶다.

  사고를 당한다고 그게 수필로 다 이어지는 건 아니다. 더욱이 수술과정에 아내를 끌어들여 작품의 분위기를 촉촉하게 적셔놓은 것이 돋보인다. 그 만큼 메마르기 쉬운 소재에 서정적 요소를 덧씌우는 데도 섬세한 손길이 닿았다는 얘기다.

 

이튿날 아침, 모든 옷을 벗으라고 했다. 초록색 가운을 입히고 머리에는 덮개가 씌어졌다. 이동 침상으로 옮겨져 수술실로 향했다. 철커덕! 이승과 저승을 경계짓는 듯한 문소리와 함께 수술실에 누웠다. 그리고 나에게서는 모든 것이 멈추었다. 시간도 공간도, 사랑도 미움도, 기쁨도 슬픔도, 성낼 일도 욕심낼 일도 모두 멈추어버렸다.

 시간은 수술실 밖의 아내에게서 끈질기게 맴돌 뿐이었다. 아내는 불안과 초조 속에서 가슴을 옥죄고 있었다.

 

  절박한 순간이다. 그만큼 언어가 긴장하고 있다. 수술 직전의 심리적 상황이 눈에 잡힐 듯 치밀하게 묘사됐다. 이일배는 자신의 체험을 풀무질해 쇳물로 녹여냄으로써 수필이라는 그릇 하나를 반듯하게 빚어 놓은 것이다. 수필적 변용이다. 수술이라는 특수한 체험을 숨결까지 들릴 듯 현장감 있게 재현했다.

  다만 수술실 밖 아내의 상황을 '수술실 밖에 맴돌 뿐', '가슴을 옥죄고' 라 한 것은 재고되어야 할 것 같다. 아마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풀었으리라 보이는데, 그래도 작가는 지금 수술대에 올라 있지 않은가. 따라서 '맴돌았으리라, 가슴 옥죄었으리라'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내는....동의서를 써준 생각이 떠올랐다.'한 것도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수술 장면을 글머리에 도입해 독자에게 긴장감을 촉발하고 있는 구성의 기법이 도드라진다. '아내의 눈에 고인 눈물방울 속으로 내 그림자를 밀어 넣고서야,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였다.'에 이르러 가슴 뭉클하다. 제목이 너무 심각하다는 생각이 얼핏 든다. 안면 한쪽이 함몰될 정도로 심한 상처였겠으나 사선을 넘을 정도는 아니었다 싶어서다. <'대한문학' 2009 봄호>

 

 수필 <사선을 넘어서>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