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오래된 장롱

이청산 2008. 9. 30. 14:06

오래된 장롱



장롱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헤어진 지 한 해 반이다.

장롱과 우리 가족이 만난 것은 이십여 년 전이었다. 결혼한 지 열여덟 해만에 겨우 열아홉 평짜리 아파트를 하나 사고, 사 놓은 지 한 해가 지난 다음에 내 집이라고 입주했다. 좁다란 셋방을 살다가 처음으로 가져 보는 우리의 방은 참으로 널찍했다. 넓고 깨끗한 벽에 옷가지를 그대로 중중 걸어둘 수 없어 어려운 형편을 무릅쓰고 옷장을 하나 장만하기로 했다. 조금 무리해서 옷장, 이불장, 화장대 세 짝으로 구성된 티크 장롱을 들였다. 생애 처음으로 장만한 집에 처음으로 들인 세간다운 세간이었다. 그리 대견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우리와 한 가족이 된 장롱은 우리의 가족사와 운명을 함께 해 나가야 했다.

아이들이 자라고 가구가 늘어나면서 집은 점점 좁아져 갔다. 조금씩 더 넓은 집에 살아보겠다고 네 번이나 이사를 하는 사이에 장롱은 화물차에 실리어 원근을 옮겨 다니며 육중 몸체를 밧줄에 묶여 혹은 사다리 차를 타고 높고 낮은 곳을 오르내려야 했다. 그렇게 옮아 다니는 사이에 빛이 조금씩 바래지기도 하고 받치고, 긁혀 흠집이 생기거나 귀퉁이 한 곳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마치 살아가는 사이에 세월 따라 늙어가기도 하고, 세파에 부딪쳐 상처가 지기도 하는 우리네 육신처럼.

장롱이 우리 집 식구가 된 지 강산이 한 번쯤 변할 세월이 흘렀을 때, 우리도 우리의 장롱도 안착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더는 옮겨다니지 않아도 좋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안식처를 마련하게 되었다. 갓 지은 새 집이었다. 장롱은 다시 사다리 차를 타고 14층 높다란 곳을 올라와야 했지만, 큰방 제일 편한 자리에 안방마님처럼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렇게 편안한 세월, 십 년이 흘러갔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모든 것을 그 모습 그대로 두지는 않았다. 새 방의 새 장판은 닳아 해져 맨 바닥을 보이는 곳이 생기게 되고, 장롱에 흐르던 윤기도 빛을 많이 잃고 세월이 준 상처만 남아 있게 되었다.

그 세월 사이에 아이들이 장성하여 저들의 짝을 맞이해야 할 나이에 이르렀다. 드디어 새 사람을 맞이하게 되었다. 새 사람을 해진 방바닥 위에 앉게 하겠느냐며 장판을 새로 놓자고 했다. 장판을 새로 놓자면 장롱을 들어내야 하는데 이참에 장롱도 새로 바꾸자고 했다. 아이들이 강권했다. 그리하기로 했지만 진득한 손때가 묻은 장롱과 헤어지는 일이 자못 아쉬웠다. 그 때 마침 우리는 따로 기거하고 있는 사택이 하나 있었다. 집에는 새 장롱을 들이고, 쓰던 장롱은 사택으로 옮기기로 했다. 장롱은 다시 화물차에 실려 사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택에 기거하는 날이 더 많아 장롱은 우리와 더욱 가까이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택이란 무한정 거처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일터를 옮기면 따라 옮겨야 한다. 장롱은 나의 일터를 따라 또 화물차에 실리는 신세가 되어 먼길을 달려 새로운 사택으로 옮아가야 했다. 옮길 때면 언제나 그렇듯, 차를 오르내리며 받치고 문을 드나들며 문턱이며 문설주에도 받치고 긁혀야 했다. 우리의 어여쁜 장롱의 신세는 고단을 면치 못했다.

사택을 전전한지 몇 해가 지났을 때, 손잡이조차도 헐거워진 장롱은 우리와 헤어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터가 섬으로 옮겨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장롱과 함께 바다를 건널 수는 없었다. 영영 작별을 해야 할 것이냐, 한 동안만 이산 가족이 될 것이냐를 고민하다가 당분간만 헤어지기로 했다. 쉽사리 헤어질 수가 없을 만큼 깊은 정이 들어 있음을, 아니 엄연한 한 가족임을 우리는 그 고민을 통해서 새삼스레 깨달았다. 마침 쓰지 않는 빈 사택이 있어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지 보관해 두기로 했다. 사택 관리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지 앉지 않게 포장을 하여 빈 방 한쪽에 안치해 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섬으로 떠났다. 마치 가족 하나를 떼어놓고 객지 먼길을 떠나는 아린 심사를 떨칠 수가 없었다.

절해고도에서 고적한 섬살이를 하면서도 가끔씩은 떼어두고 온 우리의 가족, 장롱에 대한 생각에 잠기곤 했다. 두고 온 그 모습 그 대로 잘 보관되고 있을까. 좀이 슬지나 않을까. 주인 없는 것이라고 누가 헤치지는 않을까…….

드디어 섬살이를 마치고 뭍으로 나왔다. 다시 새로운 일터, 새로운 사택을 얻게 되었다. 널찍하고 깨끗한 새 사택에 살림을 벌린 지 두어 주 지난 어느 일요일, 우리는 화물차를 하나 얻어 고속도로를 달렸다. 도로를 내려 구불구불 동네 길을 내달아 전임지의 한적한 빈 사택에 이르렀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방문을 열었다. 두고 떠난 그 모습대로 그 자리에 얌전하게 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솟았다. 해후의 설레는 기쁨을 안겨준 빈 사택이 고맙기만 했다. 문짝이며 손잡이를 쓰다듬으니 오랜만에 만난 자식의 살 같은 감촉이 느껴지는 듯했다. 또 화물차에 실었다. 먼길을 내달아 새로운 사택으로 옮겨왔다.

깨끗하게 닦은 방 가장자리에 나란히 세웠다. 방으로 들일 때는 흔히 문지방이 긁히기도 하고 방바닥이 조금씩 상하기도 한다. 이번에도 문지방이 조금 긁혀 마음이 아리기도 했지만, 들이기를 주저하거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먼지와 때를 닦아내었다. 윤기가 비쳐 날 때까지 닦고 닦았다. 긁혀 흠이 진 곳이며, 헤져 속이 드러난 곳엔 비슷한 색깔의 칠감 찾아 입혔다. 흠을 온전히 지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프게 드러난 속살을 그대로 보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 먼길을 달려가서 다시 가져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냐, 그렇게 공력을 들여 닦을 만한 것이냐고, 우리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가족 누구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지금 내가 기거하고 있는 사택은 내 생애의 마지막 사택이 될지도 모른다. 공직생활의 막바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택을 벗어날 때는 어느 아늑한 시골에 작은 집을 하나 지으려 한다. 그 때는 공적인 일을 놓아버린 자유인이 되어 새 소리, 바람 소리 들으며 텃밭이나 가꾸고 지내려 한다. 그 때도 이 장롱과는 쉽사리 헤어질 수 없을 것 같다. 세월의 수레에 내가 실려 다니듯 이 장롱도 다시 화물차에 실려 그 작은 집으로 함께 가야 할 것 같다. 받치고 긁히며 함께 전전해 온 세월이 너무나 애틋하다. 내가 살아온 세월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이 들수록 장롱을 내 곁에서 떠나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오래된 장롱을 다시 닦아주고 싶다. 나를 닦듯, 내 지나온 생애를 닦듯, 내 살아갈 남은 생애를 닦듯. 그리고 정갈하게 손질한 우리의 옷이며 이불을 넣어두고 싶다.♣(2008.9.24)

          


'청산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갑 날에  (0) 2008.10.14
아내의 텃밭(2)  (0) 2008.09.30
새로운 삶의 터에서  (0) 2008.09.30
자전거와 안경  (0) 2008.02.22
사선(死線)을 넘어서 (병실에서 쓴 글모음)  (0) 2008.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