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자전거와 안경

이청산 2008. 2. 22. 11:38

자전거와 안경



졸업식이 다가 온다. 졸업생들에게 회고사를 하자면 다초점 안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어느 안경점 앞에 걸린, '돋보기가 필요 없는 누진 다초점 안경'이라는 광고 문구가 떠올랐다. 그것을 끼면 연설대 위에 놓인 연설문을 보다가도 고개를 들어 장내를 살피는 데도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돋보기는 가까이 보기는 좋지만 멀리 보기는 불편한 안경이다.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안경점으로 갔다. 자전거는 문경의 마성이라는 산골에 살 때 타던 것이다. 해거름이면 자전거를 달려 주지봉이라는 산봉우리 밑에 세워놓고 산을 올랐다. 자전거 타기 운동과 등산 운동을 함께 하는 것이다. 울릉도로 임지를 옮기면서 자전거를 대구의 집에 갖다 두었다. 겨울 방학을 맞아 집에 온 김에 다초점 안경을 맞추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모처럼 자전거를 달려 거리로 나갔다.

안경점 옆에 세워 두고 안경점에 들어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거쳐 다초점 안경을 맞추었다. 안경은 며칠 뒤에 나올 것이라 했다. 안경점을 나와 잠가 둔 자전거를 풀어 안장 위에 발을 올려 두어 번 힘을 주는 순간, 꽈당!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나는 안경점 앞에 나뒹굴어졌다. 길가 모서리에 있는 안경점 저 쪽에서, 그 때 마침 달려오던 어떤 소년이 탄 자전거와 부딪친 것이다. 나에게 들이닥친 것은 자전거가 아니라 그 소년의 머리였다. 한참 정신을 일었다가 일어나 화끈거리는 얼굴을 만져보니 왼쪽 광대뼈가 없어졌다. 그리고 소년은 집으로 갔다. 나는 부서진 광대뼈를 수습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고, 십여 일간의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시커멓게 멍든 눈자위, 퉁퉁 부은 얼굴의 아린 상처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내 육신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시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술도 예사 수술이 아니었고, 치료도 쉽사리 할 수 있는 치료가 아니었다. 전신 마취로 시술해야 하는 수술에 후유 장애가 생기거나, 만에 하나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경우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보호자 각서를 쓰고서야 받을 수 있는 수술이었다. 다행히 마취에서 무사히 깨어나고, 아직은 후유 장애가 크게 없지만, 수술 뒤의 부기와 눈자위에 시커멓게 든 멍은 언제 완전히 치유될지는 알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문병을 와서 어처구니없는 병을 앓고 있는 나를 심심하게 위로해 주었다. 그 자전거를 당장 버리라고들 했다. 먼 길은 차를 타고, 가까운 길은 걸어 다니면 되지 자전거는 왜 타느냐는 것이다. 다시는 자전거를 탈 생각을 말라고 했다. 특히 아들 녀석이 더욱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쉽사리 버릴 수 있는 것 아니었다.

해거름이면 주지봉 위로 넘어가는 해를 잡으려는 듯 소야천 방축 위를 신나게 달려 나가던 기억이 그림 같은 풍경이 되어 떠오른다. 다리를 건너 은행나무 숲으로 간다. 노란 단풍이 들어 그 노란 잎이 땅 위에 카펫처럼 깔려 있을 때가 숲은 가장 아름다웠다. 은행나무 아래 자전거를 세워두고 산봉우리를 오른다. 꼭대기에 올랐을 땐 등판이 흠씬 젖지만, 산골 동네 정겨운 풍경이 한 눈에 다 들어올 때의 청량감을 잊을 수 없다. 산을 내려와 다시 자전거를 달려 집으로 오면서 맞는 시원한 바람은 지금도 두 볼에 와 닿는 듯하다. 폭우, 폭풍이 치는 날이 아니면 자전거 달리기를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그 산봉우리에 삼백 번을 오르던 날, 동네 사람들은 나를 위해 기념 빗돌을 세워 주었다. 비의 앞에는 봉우리 이름 '朱芝峰'을 새기고, 뒷면에는 "삼백회등정기념 이 아무개'라고 새겼다.

새로 맞춘 안경 이야기는 누구에도 하지 않았다. 안경을 맞추고 나오다가 그런 일이 있었노라는 말은 더욱 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여, 필요하여 한 일이 아니던가. '그 놈의 안경 때문에……'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참으로 비싼 값을 주고 마련한 안경이 아닌가. 어쩌면 내 목숨과 바꾸었어야 할지도 모를 귀한 안경이 아닌가.

눈을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눈 부근을 절개하여 수술하다 보니 눈자위에 깊은 멍이 들고, 이 멍이 풀리자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멍을 조금이라도 가리기 위해서는 늘 안경을 끼어야 할 형편이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감하여, 늘 낄 수 있는 안경을 맞춘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원망할 수 있으랴. 자전거 탓이랴, 안경 탓이랴. 그 날의 좋지 않은 일진(日辰) 탓이라 할지언정 그것들의 탓은 아니다. 차라리 어둔한 내 행동 탓이요, 어설픈 내 삶의 모습 탓일 것이라 할 것이다.

적지 않은 치료비만큼 상처도 엄청났다. 어떤 이는 나를 머리로 박은 그 아이를 그냥 둘 수 있느냐고, 고의는 없다 하더라도 이 큰 상처를 두고 심적인 보상이라도 받아야 할 게 아니냐고 했다. 그렇지 않다고 했다. 서로 앞을 살필 수 없는 형국에 있었고, 내 상처가 크다고 어린 아이를 탓하는 것은 내 도리가 아니라고 했다. 내 실수일 뿐이라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많은 실수를 하며 살아왔다. 실수의 연속이 내 삶의 본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 실수가 내 '살아 있음'의 실제적 증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실수는 내 삶과 더불어 있는 것이다. 그 실수가 나에게 고통과 고뇌를 주기도 하지만, 내가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도 한다. 그 실감이 내 삶을 조금은 힘겹게 할지라도 그로부터 나는 살아보아야겠다는 얼마간의 욕구 같은 것도 느끼게 된다.

자전거와 안경, 두 개의 둥근 테가 닮은 두 물체, 그것이 내 실수의 빌미를 제공했다 할지라도, 실수를 한 것은 나이지 그들이 아니다.

그들로 하여 내 삶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느껴 본다.  

취여(取如 1720~1789) 스님의 열반송을 듣는다.

幻來從幻去 來去幻中人 幻中非幻者 是我本來伸

(본래 꿈인 듯 와서 꿈속을 쫓아가니/ 오고가는 것은 꿈 가운데 사람이네/ 꿈 가운데 꿈 아닌 것은/ 오직 나의 본래의 몸뿐이네)

살아가는 모든 일이 꿈일지라도 꿈 가운데서도 꿈이 아닌 것은 '오직 나의 본래의 몸'이 아니라, 나는 차라리 '오직 나의 실수''뿐이라 하고 싶다.♣(2008.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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