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새로운 삶의 터에서

이청산 2008. 9. 30. 13:37

새로운 삶의 터에서



칠십 명이 넘는 선생님들과 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커다란 강당을 빼곡이 메우고 있었다.  '즐거운 학교, 학력 관리 잘 하는 학교, 인성교육이 제대로 되는 학교'를 만들어 보자고 부임 인사를 겸한 포부를 말하는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감개와 중압이 합쳐져 소리를 떨게 하는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박수를 받으며 강당을 나와 사무실에 앉으려는데, 운영위원회에서 찾아왔다. 그들의 손에는 백설기 하얀 떡과 붉은 꽃 활짝 핀 꽃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하얀 떡판 위에는 '축 영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아이들을 잘 가르쳐 달라는 당부일 터이다.

어깨가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조금씩 온기에 젖어 갔다. 오늘 내가 선 자리-. 삽십오 년을 걸어서 이른 자리다. 이제야 고향 가까이에 이르게 되었다는 안도감과 교직 생애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삶의 터전이라는 애틋함이 가슴에 잉걸불을 집혔다.

지난 세월이 파노라마로 뇌리를 스쳐간다. 이 새로운 삶의 터에 이르기 위하여, 생각해 보면 참 많이 돌아왔다. 시간을 돌고 해륙을 넘나들어 돌았다. 내 몽매가 바로 난 길을 찾지 못하게 한 탓이었을까, 내 우둔이 질러난 빠른 길을 찾으려 하지 아니한 탓이었을까.

삼십오 년 전 영양, 그 산골짜기에서부터 일구어나가기 시작한 내 삶은 경주, 구미, 화원, 영해, 군위로 동과 서,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사람살이가 다 그러하듯 고락이며 호오가 엇바뀌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때로는 해맑은 미소를 짓기도 하고, 때로는 아픈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 하는 사이에 흘러간 세월들이었다.

이십육 년, 강산이 세 번 가까이 바뀔 삶의 시간이 흐른 날,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는 다른 모습으로 절해고도를 향해 바다를 건넜다. 울릉도, 그 '바다 건너기'는 또 다른 내 삶의 한 모습이었다. 섬은 아름다웠다. 바다는 푸르렀다. 그 아름다움과 푸름은 내 생명력의 한 상징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불현듯 나타난 새로운 임지를 향해 미련과 그리움을 남긴 채 섬을 떠나와야 했다. 그 후로 섬은 다시 한번 찾아야 할 내 삶의 한 목적지가 되었다. 그리고 의성, 선산을 거쳤다. 그 사이 답답하고 힘든 일도 많았었지만, 미움도 원망도, 사랑도 그리움도 지나온 발자국 속에 다 묻어버렸다. 그러나 섬을 향한 그리움은 어디에도 묻을 수가 없었다.

삼십일 년 세월이 내 삶을 감은 날, 또 삶의 이름을 바꾸어 경상도 최북단 문경 땅에 이르렀다. 지난날의 탄진이 말끔히 사라져버린 문경은 고요하고 순박했다.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 속에서 고락의 두 해가 또 흘러갔다. 다시 바다를 건널 수 있는 기회가 성큼 찾아왔다. 첫사랑의 애인을 다시 만나는 듯한 설렘을 안고 섬으로 갔다. 섬은 지난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바다 위에 솟아 있었다. 그러나 첫사랑은 가슴속에만 간직해야 하는 것이었을까, 가슴속에 곱게 담고 있던 그 섬은 아니었다. 사랑, 그리움, 행복 들은 현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것임을 새삼스레 깨달으며 다시 바다를 건너왔다. 그리고 이 자리, 새 삶의 터에 이르렀다. 숱한 세월 속에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시련과 고뇌, 즐거움과 보람이 한데 이겨져 이 자리가 만들어진 것 같았다.

참 많이도 걸어 왔다. 원근을 가리지 않고, 뭍이며 바다도 마다하지 않고 참 먼 시간 긴 길을 걸어왔다. 속도의 쾌감을 누릴 수 있는 어떤 장치도 지니지 못한 채, 뚜벅뚜벅 걷기만 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그렇게 걷는 사이에 많은 것을 보고들을 수 있었음은 큰 다행이었다. 산과 강을 보았고, 들판과 마을을 보았고, 바다와 섬을 보았다. 쾌속으로 달려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나는 보았다. 그것들은 즐거움으로 가슴을 활짝 펴나게도 했고, 아픔으로 가슴을 옥죄게도 했다. 모두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어 나에게 안겨 온 것임에야 모두 내가 소중히 보듬어야 할 것들이다. 걷는다는 것은 '가장 범속한, 따라서 가장 인간적인 몸짓'이라는 브르통의 말을 이런 경우에도 상기해 볼 수 있을까. 내 걸어온 길이 가장 범속한, 가장 인간적인 길이었기를 바랄 뿐이다.

유시유종,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이제 내 삶의 한 장은 끄트머리를 향해 가고 있다. 수 없이 돌고 돌아 온 길을 지금도 쉼 없이 걸어가고 있다. 그 길 끝에 주렁주렁 열려 있을 자유의 세계가 그리워진다. 그 때 만끽할 자유를 생각하면 지금부터 가슴이 설렌다. 얼마나 달콤한 과실일까. 그러나 가꾸지 않는 나무에 좋은 열매가 열리기를 어찌 기대할 수 있으랴. '유종의 미'라는 말이 그래서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임 인사에서 포부로 말했듯, 모든 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삶의 터를 일구기 위하여, 열심히 가르치고 부지런히 배우는 교풍과 학풍을 진작하기 위하여, 반듯한 인격체를 가진 사람들을 기르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 쏟을 일이다.

이 자리를 일어서 나가는 그 날까지 남은 힘을 다 쏟아볼 일이다.

사랑하는 삶을 위하여, 사랑하며 사는 삶을 위하여-.

일 끝에 맞이할 달콤한 자유를 위하여-.♣(2008.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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