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사선(死線)을 넘어서 (병실에서 쓴 글모음)

이청산 2008. 2. 17. 16:54

사선(死線)을 넘어서



生也如是 死也如是 畢竟如何

삶이란 이와 같고 죽음 또한 이와 같은데 필경에는 어떠할까. (碧坡)

 

천정에는 전등이 벌집처럼 달려 있었다. 온몸을 초록색 천으로 덮은 사람들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나를 들여다본다. 코 위에 마스크 같은 것을 씌었다. 심호흡을 하라고 했다. 숨을 두어 번 크게 들이마셨다.

순간 모든 것이 멈추어버렸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시간은 어떻게 얼마나 흘러가고 있는지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얼굴 어느 부분을 어떻게 갈라 부서진 뼈들을 어떻게 맞추어 어찌 붙여 내는지, 내 의식의 일이 아니었다. 내 모든 의지는 정지되어버렸다.

……

흐릿한 망막 속으로 물체들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아내의 얼굴과 함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기쁨이랄까 서러움이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명치에서 터져 올랐다.

어디냐고 물으니 아침에 누워 있던 병상이라고 했다. 나를 내려다보던 사람들이 사라져 갔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파 왔다. 온 얼굴에 신열이 돋아났다.

"정신 들어요?" 아내의 눈에 찰랑한 물방울이 고여 있었다.

"수술은 잘되었습니다. 곧 나을 겁니다.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생각보다는 상처가 심해 시간은 좀 오래 걸렸지만, 완벽하게 시술해 놓았다고 했다.

의사와 간호사가 수시로 병실을 드나들었다. 부기를 내리게 하는 주사, 진통제, 항생제, 혈액순환 개선제라며 쉴 새 없이 주사를 놓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통증은 진정되어 갔지만, 얼굴의 모습은 끔찍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큰길 모서리에 안경점이 있었다. 안경을 새로 하나 맞추고 나와 안경점 옆에 세워둔 자전거에 막 올라 페달을 두어 바퀴 밟았을 때였다. 반대쪽에서 불쑥 자전거 한 대가 나타나면서 나는 고꾸라지듯 길바닥으로 나뒹굴어졌다. 왼쪽 광대뼈가 몹시 아팠다. 한동안 일어나지를 못했다. 자전거끼리 부딪치면서 상대방의 머리가 자전거보다 먼저 날아와 나의 얼굴을 들이박은 것이다. 겨우 정신을 차려 일어나 보니 열 서너 살 됨직한 소년이었다. 머리를 싸안은 채 불안에 떨고 있었다. 괜찮으냐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얼굴을 만져보니 왼쪽관골이 쑥 들어가 있었다. 안경점으로 뛰어들어 거울을 보니 얼굴 양쪽의 높낮이가 달라져버렸다.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고 불안해하는 소년을 집으로 보냈다.

얼굴 왼쪽 부분에 열이 나며 심하게 아파 왔다. 무슨 이상일까 하여 아내와 함께 동네 병원으로 갔다. 3차 의료기관으로 가야 할 상처라 했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의사는  CT 촬영을 해보아야겠다고 했다. 촬영실로 가서 기다란 침대에 누웠다. 번개같은 빛이 얼굴을 스쳐갔다. 결과를 기다리는 있는데 코에서 피가 흘렀다. 코뼈의 이상으로 인한 출혈이라 했다. 안구 검사를 받았다. 안구는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얻기까지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광대뼈가 몇 조각이 나서 함몰이 되었다는 CT촬영 결과가 나왔다. 수술을 해서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앞선 환자의 수술이 밀려 있어 언제 시술을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수술을 대비한 각종 검사는 해놓자고 했다. 심전도, 맥박, 혈압 등을 검사했다.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수일 내에 통보를 해 주겠다고 했다. 빠른 시일 내에 수술할 수 있도록 의사에게 부탁하고 상처를 감싸 쥔 채 병원을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나는 방학중에 출장의 임무를 띠고 육지에 머물고 있었고, 출장이 끝나면 곧장 내 삶의 터 울릉도로 돌아가 긴급히 처리해야 할 일도 있었다. 할 일들을 해 나가다가 수술 통보가 있으면 병원으로 달려가리라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얼굴을 보니 눈엔 멍이 들고 많이 부어 있었지만 통증은 심하지 않았다. 흉측해 보이는 눈을 가리기 위해 안대를 끼고 출장지인 구미로 갔다.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와 다시 하루 밤을 보내고 삶의 터 울릉도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지난밤에 눈이 내린 듯 지붕 위에는 눈이 덮여 있었다. K선생의 도움을 받아 경부고속도를 지나 포항의 여객선 부두를 향해 달렸다. 팔공산 분기점을 지나 포항 쪽으로 향하자 상기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길은 물기로 젖어 있었지만, 산에는 눈이 제법 두껍게 쌓이고 있었다. 임고2터널을 지날 무렵 차가 미끌! 뒷바퀴 한 쪽이 순간적으로 헛돌았다. 그러나 무사히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이쿠! 백미러를 보며 차를 달리던 운전자 K선생이 갑자기 가는 비명을 질렀다. 뒤따라오던 승합차가 전복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 동안 우리 차 뒤에는 따라 오는 차가 없었다. 뒤따르는 모든 차들이 추돌한 모양이었다. K선생은 진땀이 난다고 했다. 그 날 밤에 뉴스를 들으니 우리가 터널을 막 통과한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승합차가 전복되어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났다고 했다. 그 때 우리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어선 것이다.

 

포항 톨게이트를 통과할 무렵 핸드폰 신호가 울렸다. 대학병원 성형외과 의사였다. 사선을 넘어온 생명의 전화라고 할까. 내일로 수술 날자가 잡힐 것 같으니, 오늘 밤 자정부터 금식하고 내일 아침 일찍 입원하라고 했다. 울릉도로 가고 있는 중인데 다녀와서 하면 안 되겠느냐 했더니, 다음 수술 스케줄은 불투명하다고 했다. 무한정 늦출 수가 없는 일이었다.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지키고 있는 교감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임무를 대행해 줄 것을 당부하고 다시 대구로 향했다. 내 처지에 대해서도 간단히 알려주었다.

이튿날, 세면도구를 챙겨들고 아내와 병원으로 갔다. 입원 수속을 하고 입원실을 배정 받았다. 담당간호사는 환자의 권리와 임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입원 생활을 안내했다. 병상에 눕자 간호사가 링거를 꽂았다. 그리고 금식령과 함께 각종 검사가 행해졌다. 오후 들자 입원이 미루어졌다며 저녁 식사를 하라고 했다.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아까운 시간들이 흘러갔다. 병원식으로 저녁을 먹고 난 밤에 또 금식령이 내려졌다. 내일 아침에 수술 스케줄이 잡혔다고 했다. 불안한 병상의 밤이 병처럼 깊어갔다.

이튿날 아침, 모든 옷을 벗으라고 했다. 초록색 가운을 입히고 머리에는 덮개가 씌어졌다. 이동 침상으로 옮겨져 수술실로 향했다. 철커덕! 이승과 저승을 경계짓는 듯한 문소리와 함께 수술실에 누웠다. 그리고 나에게서는 모든 것이 멈추었다. 시간도 공간도, 사랑도 미움도, 기쁨도 슬픔도, 성낼 일도 욕심낼 일도 모두 멈추어버렸다.

 시간은 수술실 밖의 아내에게서 끈질기게 맴돌 뿐이었다. 아내는 불안과 초조 속에서 가슴을 옥죄고 있었다. 전광판에 환자의 이름과 함께 '수술중'이라는 메시지가 게시되고, 수술이 끝난 환자의 이름 옆에는 '회복중'이라는 메시지가 나타나면서 보호자를 호출하면 환자와 함께 수술실을 나온다. '회복중' 메시지 없이 호출되어 들어간 보호자는 잠시 뒤에 통곡으로 몸부림치며 혼자 수술실을 나오는 것이 보였다. 수술에 이상이 있거나 신변에 변화가 일어난 경우였다.

내 이름 옆에는 좀처럼 '회복중' 메시지가 뜨지 않더니 갑자기 보호자를 부르더라고 했다. 아내는 그 때 문득 전신마취 후 못 깨어날 경우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써 준 생각이 떠올랐다. 필경 무슨 일이 생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병원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으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좀 많이 부서져서 힘들었지만, 잘 끝났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의사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광대뼈가 예상보다 조각이 많이 나서 맞추어 붙이기가 어려웠다며, 재수술이 필요 없는 흡수식 플레이트를 박아 튼튼하게 고정시켰다고 했다. 아직도 세상모르고 누워 있는 모습이 살아있는 사람으로 믿겨지지 않았다.

아내가 생애의 가장 큰 고뇌와 절망을 겪고 있는 사이에 나는 사선을 넘나들고 있었다. 잠시 갔던 저승을 넘어 이승으로 다시 왔다. 아내의 눈에 고인 눈물방울 속으로 내 그림자를 밀어 넣고서야,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사람 만공! 자내와 나는 70여 년 동안 동고동락해왔지만 오늘이 마지막일세. 그 동안 수고했네." 만공(滿空, 1871~1946) 스님의 열반송이다.

아내에게 소리 없이 말했다.

"이 사람 아내여! 당신과 나는 30여 년 동안 동고동락해 오는 동안 사람 잘못 만나 수고 많이 했소. 이제 잘 살아봅시다."

그리고 내 육신에게 말했다.

 "이 사람 이 공(公)! 자네와 나는 60년 동안 동고동락해왔지만, 주인을 잘못 만나 수고 많이 했네. 새로 한번 살아보세."♣(2008.2.10)

 

<병실에서 쓴 글 모음> 보기

사선을 넘어서

자전거와 안경

병실·설날

병실 사람들

손녀의 마음

 

 

      게시판 편지쓰기 방명록 


 

 

'청산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운 삶의 터에서  (0) 2008.09.30
자전거와 안경  (0) 2008.02.22
손녀의 신기한 세상  (0) 2008.02.17
아버지를 위한 작은 선물  (0) 2007.11.27
그리운 것을 찾아서  (0) 2007.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