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독도해오름합창단'. 노래하는 사람도, 지휘하는 사람도, 반주하는 사람도 모두 섬사람들이었다. 주부도 있고, 공무원도 있고, 장사하는 사람도 있고, 농사짓는 사람도 있었다. 섬 살이 틈틈이 모여 화음을 가다듬었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를 사랑하여 모인 사람들이다. 지난해 창단하여 두 번째 연주회를 갖는다고 한다. 한 해가 다 저물어 가는 십이월 중순의 어느 날, 넓지 않은 군민회관에 사람들이 모였다. 자리를 다 채우지는 못했지만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소담스레 모여 앉았다.
단장의 합창단 소개, 회장의 인사, 군수의 축사에 이어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남성 단원은 검은색 양복을 입고, 여성 단원들은 흰 블라우스에 검 은 치마를 갖추어 입었다. 단복은 각자가 마련한 듯 한결 같지는 않았지만, 노래를 부를 때는 여러 성부의 소리들이 하나로 화음을 이루면서 고운 선율을 자아냈다. 훨훨 날아요, 나의 노래, 언덕 위의 집, 매기의 추억 등 주옥같은 외국 곡들로 프롤로그를 장식했다. 무대가 낡고 좁아 보면대와 지휘대를 세우기도 노래를 부르고 지휘를 하기에도 여간 불편하지 않았지만,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지휘자도 그리고 청중들도 너무나 진지했다. 이런 연주회를 잘 보고 들을 수 없는 섬사람들에게는 저들의 목소리 하나 하나, 동작 하나 하나가 신기하기만 했다. 개여울, 기다림, 푸른 열매 등 귀에 익은 우리나라의 노래들을 부를 때는 청중들은 가락에 맞추어 손뼉을 치기도 했다. 많은 학생 청중 들을 위하여 나뭇잎 배, 고향 땅, 퐁당퐁당, 과수원 길 등의 동요를 연주할 때는 엄숙한 연주복을 벗고 가벼운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재미있는 동작으로 청중과 호흡을 맞추었다.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함께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 연주 틈틈이 색소폰 연주단을 초청하여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 연주단도 중학교 교장선생님, 군청의 과장님, 선생님, 공무원, 자영업자 등의 섬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색소폰 연주에 특기를 가진 어느 중학교 기술선생님이 연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솜씨를 갈고 닦았다고 한다. 에델바이스, 진주조개잡이, 홀로 아리랑, 내일은 해가 뜬다 등 듣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노래들을 신나게 연주했다. 곡이 끝날 때마다 청중들은 환호도 하면서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감미롭고도 신명이 나는 색소폰 소리로 잠시나마 이 절해고도의 고적감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던 것일까.
동요 합창 순서에 이어 색소폰 솔로 연주 순서가 되었다. 연주자가 나와 반주 음악에 맞추어 '오 데니보이'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소프라노 색소폰의 맑고도 부드러운 소리가 장내를 압도해 나갔다. 청아한 고음으로 클라이맥스를 올라가면서 청중들은 넋을 잃듯 소리에 몰입되어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암흑이 모든 것을 덮어 버렸다. 개석에서는 비명이 폭발했다. 정전이 된 것이다.
"여러분, 전기가 곧 올 것입니다. 전기가 오는 대로 연주회를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진정해 주십시오. 진정해 주십시오!" 사회자가 청중을 향하여 호소하듯 외쳤다. 그러나 전기는 오지 않았다.
청중들은 자리를 떨치고 일어서는 대신에 핸드폰을 모두 꺼내들어 무대를 향하여 흔들었다. 그리고 앙코르를 연호했다. 객석과 무대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드러났다. 난처한 모습으로 무대에 서 있던 연주자가 어둠 속의 객석을 향하여 말했다.
"예, 감사합니다. 지금 악보도 볼 수 없고 반주도 없지만, 여러분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 제가 평소 즐겨 불던 노래 하나 들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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