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고향 사랑 가래떡 -여기는 울릉도·25

이청산 2007. 11. 11. 17:07

고향 사랑 가래떡

-여기는 울릉도·25



서울 사는 김태숙 씨가 가래떡을 보냈다. 쌀이 귀하던 울릉도에서의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나서 가래떡을 마련한 것이라 했다. 떡은 다섯 개의 상자에 담아 우체국 택배로 부쳐 왔다.

내가 김태숙 씨를 처음 안 것은 사 년 전 첫 섬 살이를 끝내고 육지의 어느 학교에서, 그것도 섬에서 나온 이후 두 번째로 학교를 옮겨 생활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 내가 김태숙 씨를 '안 것'이라 했지만, 김태숙 씨를 만나 본 적은 없다. 오직 전화나 메일로서만 소식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에 그의 모습도, 마음도 내 상상과 느낌 속에서만 살아 있을 뿐이다.

어느 날 김태숙 씨가 문득 전화를 하여 '울릉향우회지'를 편찬하고 있울릉향우회지 제2호 표지는데 좀 도와 달라고 했다. 울릉도 남양에서 태어나 지금은 서울에 살면서 '재경울릉향우회'의 일을 돕고 있다고 했다. 나는 울릉도 사람도 아닌데 도울 게 무엇이 있겠느냐고 했더니, 그만큼 울릉도를 사랑하면 울릉도 사람 이상이라면서 울릉도에 관한 글들을 보내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의 홈페이지에서 울릉도에 관해서 쓴 나의 글을 다 읽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라면 도와 주겠다고 했다. 나와의 인터뷰를 싣고 싶다며 설문 원고를 보내왔다.

나의 근황, 울릉도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대해서 주로 물었다. 울릉도의 인정과 풍경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들에서 얻은 감동을 말해 주었다. "그 감동의 장면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표현을 위해 겪어야 하는 어려움보다 감동을 참고 있기가 더욱 힘들다고 느낄 때 글을 썼다"라는 말도 했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울릉도에 한번 더 가서 살고 싶다고도 했다. 나는 그 때 쓴 글로 '마가목 빨간 열매'라는 수필집을 내기도 했고, 지금은 다시 울릉도 사람이 되어 살고 있다.

울릉향우회지에 실린 인터뷰 기사김태숙 씨가 힘을 들여 펴낸 재경울릉향우회지 '울릉인' 2호에는 나의 인터뷰 기사와 함께 내가 기고한 글들, 그리고 내가 쓴 울릉도 '동백꽃 전설'이며, 울릉도의 비경을 소개한 글들이 실려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김태숙 씨와 전화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울릉도 추억담이며, 출향 인사들의 동정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다. 나는 울릉도에 잠시 살았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울릉도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내가 다시 울릉도를 찾아 왔을 때 그는 그야말로 나를 완전한 울릉도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통화를 할 때마다 고향의 안부를 물으면서 향수를 토로했다. 그는 생활과 생업에 분망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한 시도 고향을 잊어 본 적이 없다며, 간혹 만나는 향우들과 더불어 그리움을 풀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가 살았던 동네, 그 고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메일로 보내 주기도 하고, 변한 고향의 모습을 이야기로 들려주면서 그의 향수를 위로해 주었다.

지난 일은 모두가 아름답게 생각이 되고, 떠나온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울릉도를 떠나 사는 사람들은 어느 곳의 어떤 사람보다 짙은 향수 속을 사는 것 같다. 그것은 물론 울릉도가 풍경과 인심이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적하고 고단했던 섬 살이의 기억이 향수를 짙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가 바로 그의 모교였다. 나와 통화를 할 때면 그는 학창 시절의 추억을 털어내곤 했다. 웃음으로 말하는 이야기 속에서도 그 시절의 고난과 지난날에 대한 짙은 향수를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요즈음 후배들은 어떻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모교 사랑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옛날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겠지만, 교육적인 모든 환경과 조건이 육지보다는 열악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해 주었다.

며칠 전 가래떡 다섯 말을 빼어 학교로 부쳤노라며 문득 전화를 했다. 작은 정성이지만 학생들, 선생님들과 함께 두루 나누어 드시면 좋겠다고 했다. 떡은 부친 지 사흘만에 섬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차를 타고 포항의 선착장까지 달려와서 배의 출항을 기다려 물길 오백 리를 건너 왔다. 하얀 떡이 김태숙 씨의 하얀 향수를 싣고 멀고 먼 뭍길, 물길을 달려 왔다. 고향과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 온 것이다.

가래떡은 떡국으로 끓여야 제 맛이지만 이백여 명분의 떡국을 한꺼번에 끓일 수가 없어 하얀 가래떡 그대로 골고루 나누기로 했다. 보내준 분의 고마운 뜻을 생각하며 가족과 함께 맛있게 끓여 먹으라며 깨끗하게 포장들을 하여 나누어주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고마움의 박수를 쳤다. 박수소리는 교실을 넘어 저 푸른 바다로 퍼져 나가는 듯했다.

얼굴도 모르는 김태숙 씨. 언제나 밝고 생기에 찬 그 목소리를 들으면 모든 면에서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분일 것 같다. 떡에 고향과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보내는 것은 따뜻하고 너그러운 모성에서 비롯한 일일 것 같다.

주말에 섬의 북쪽에 있는 옥녀봉을 올랐다. 저 건너로 보이는 송곳봉, 유두봉, 미륵봉, 초봉의 단풍이 참으로 고왔다. 세상의 고운 색들이 이 섬에 다 모여 산봉우리들을 프리즘으로 수많은 빛깔의 스펙트럼을 발산해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섬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섬으로 날아온 김태숙 씨의 따뜻한 마음이 저 단풍을, 이 섬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만 같았다. ♣(2007.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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