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어화(漁火) 꺼진 밤바다 -여기는 울릉도·16

이청산 2007. 7. 12. 15:06

어화(漁火) 꺼진 밤바다
-여기는 울릉도·16



"원양산 오징어 반입 즉각 중단하고 연근해 오징어 채낚기 어민 보호하라"

"연근해산 오징어 전량을 정부가 수매하고 적정 수매가를 제시하라"

"동해 어민 죽게 하는 엉터리 수산 정책"

"동해 어민 죽고 나면 동해 바다 누가 지키나"

"입춘은 지났건만 어민들은 한겨울"

 

2007년 7월9일 밤, 저동항 앞 바다 수평선엔 어화가 피어나지 않았다. 짙은 어둠만이 광막한 바다를 휘덮고 있었다.

섬사람들은 어한(漁閑)의 봄이 어서 가고 성어(盛漁)의 여름이 오기를 기다렸다. 밤바다 수평선 위에 어화 찬란하게 피어날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리던 여름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섬이 자랑하는 풍경, '저동어화(苧洞漁火)'는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름도 중반을 접어 들 무렵, 밤바다에 두어 개의 어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대여섯 개도 떴다. 불빛은 찬란했다. 밤이 지난 아침 부두에 나가보면 오징어가 배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어화 피던 밤이 지난 아침, 항구에 들어오는 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어판장에 쌓이는 오징어 상자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할복하는 아낙네들은 이내 집으로 돌아가고 산 것 몇 마리가 활어통에 담겨 임자를 기다릴 뿐이었다.

 

플래카드 빼곡이 걸린 물양장 지붕그러던 어느 날, 물양장 지붕 슬래브 벽에 플래카드가 빼곡하게 내 걸렸다. 하나같이 정부의 수산 정책을 탓하고, 어민의 절박한 삶을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하소연이 아니라 절규였다. 목구멍으로 피가 끓어오를 것 같은 부르짖음이었다.

 

그렇게 피맺힌 절규의 플래카드가 항구를 뒤덮던 며칠 뒤 섬사람들은 해양수산사무소 앞에 모였다. 그리고 모두들 불끈 쥔 주먹을 흔들며 피를 토하는 목소리로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를 성토하고, TAC(Total Allowable Catch, 총허용어획량)에 분개했다. FTA 때문에 포클랜드산 오징어가 대량으로 들어와 유통되는 바람에 울릉도 당일바리 오징어 값은 지난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값으로 폭락한 것이 분통 터진 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수입 오징어가 울릉도에까지 들어와 건조 후 울릉도산으로 둔갑해 팔리는 바람에 오징어 잡이를 주업으로 하는 울릉도 어업인의 생계 수단마저 위기에 처하게 된 사실에 더욱 분노했다.

 

해양수산부가 어족 자원 보전을 위해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정책을 전환하면서 지난 1월부터 도입해 시행 중인 TAC 제도가 울릉 어민들의 생존권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입산 때문에 시세도 폭락한 상태에서, 대형 트롤(trawl)어선 등에나 해당할 제도를 당일바리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영세 어민들에게 적용하여 어획량까지 제한하면, 울릉도 어민들은 다 죽으라는 말과 마찬가지라며 절규했다. 함성과 아우성은 허공을 맴돌다가 괭이 갈매기 우짖는 소리와 함께 파도 속으로 묻혀 갔다.

채낚기선장협회에서는 이미 오징어채낚기 어업허가증을 해양수산부에 반납해 놓았다. 선박의 조타실 키도 해양수산사무소에 주고, 배를 고정 정박시켜 항구를 봉쇄해 버렸다.

 

그 날로부터 저동항 앞 바다의 어화는 꺼져버렸다. 바다는 어둠에 묻혔다. 검은 바다에 검은 물만 출렁거렸다. 등대는 배 없는 밤바다를 스산하게 비추고 있다. 아침 항구는 쓸쓸해졌다. 항구에 묶인 배는 바람 따라 하릴없이 흔들리기만 했다. 물양장도 비어 버리고, 어판장 활어통에는 해수만 속절없이 맴돌고 있다.

섬의 여름이 활어통에 맴도는 물 속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여름의 끝은, 그리고 가을, 겨울은 어떤 모습으로 섬사람들을 찾아올 것인가.

이제 섬사람들은 무엇을 어찌해야 할까. 무엇을 바라야 할까.

무심한 촛대바위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할까.

저동항 앞 바다 수평선에 언제 다시 어화 찬란하게 피어날 수 있을까, 피어날까.

파도만 방파제에 제 몸을 찧어 대고 있을 뿐-.♣(2007. 7. 11)

 

 

       게시판 편지쓰기 방명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