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박 선생이 성인봉에 오르던 날 -여기는 울릉도·13

이청산 2007. 6. 20. 16:08

박 선생이 성인봉에 오르던 날
-여기는 울릉도·13



박 선생이 성인봉에 오르던 날, 하늘과 바다가 유난히도 푸르렀다. 산의 풀과 나무도 한껏 싱그러웠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수려한 정경에 감탄도 하고 쾌재도 부르며 모두 박 선생과 함께 성인봉 표지석을 사이에 두고 기념 촬영을 하였다. 섬 살이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처럼 한 마음이 되어 한 걸음으로 섬의 으뜸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성인봉을 오른 것을 기념도 하는 것이지만, 박 선생이 섬 살이 삼 년째에 처음으로 오른 것을 모든 사람들은 기념하고 싶어했다.

박 선생이 섬에 들어온 이태 전의 삼월, 그러니까 섬 살이 삼 년째를 맞고 있다. 삼 년째라면 섬 살이 고참이다. 박 선생은 삼 년만 살면 섬을 떠나야 하는 그 마지막 해를 살고 있는 것이다. 섬 살이 마지막 해를 맞으면서도 박 선생은 성인봉에 한 번도 올라보지 않았다. 그것은 박 선생이 산을 오를 수 있는 체력이 안 된다거나, 움직이기를 싫어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박 선생은 운동을 좋아했다. 그 중에서 테니스를 즐겨하여 자주 라켓을 잡는 편이며, 지난 교직원테니스대회 때는 선수로 코트를 누비기도 했다. 뭍으로 가족을 만나러 나가지 않는 휴일이면 테니스를 치거나, 스포츠 중계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박 선생은 나름대로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다만 등산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뿐이다. 박 선생이 오랜 동안 섬을 살면서 성인봉에 올라보지 않았다는 사실은, 박 선생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오히려 큰 관심거리가 되었다. 아무리 재미난 일이 많다한들 섬을 살면서 어찌 성인봉을 한 번 올라보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다른 취미 활동은 뭍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성인봉 오르는 일은 울릉도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인데, 왜 올라보지 않느냐며, 때로는 놀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채근도 했다. 그 때 마다 박 선생은 소이부답(笑而不答)이나 심자한(心自閑)인지 그냥 웃기만 했다.

성인봉을 오른다는 것은 '등산' 이상의 커다란 기대를 가지게 한다. 성인봉을 오르자면, 어느 쪽으로 오르든 대개는 섬을 한 바퀴 돈 다음에야 오른다. 섬을 돌면서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과 망망한 대해 어울려 빚어내는 절경을 감탄하고, 나리분지쯤에서 성인봉을 오르다 보면 섬에서만 나는 신기한 풀과 나무들과의 만남을 통해 '신비의 섬 울릉도'라고 하는 그 '신비'를 온몸의 감각을 통하여 느낄 수 있게 된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해발 984m의 성인봉 정상을 오르면, 왈츠를 추고 있는 무희의 치맛자락 같기도 하고, 초록색 유채로 그려진 강렬한 인상의 풍경화 같기도 한 산봉들의 행렬이 펼쳐내는 절경에 가슴 서늘한 감동을 받게 된다. 산행의 즐거움과 함께 섬이 주는 그 신비와 감동 때문에 사람들은 성인봉을 오르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신비와 감동도 잠시, 조금 더 눈길을 멀리로 던지면 바다, 바다, 바다……. 사위 팔방이 온통 바다뿐이다. 바다가 하늘에 스미고 하늘이 바다에 스며들어 하늘도 바다도 분간할 수가 없다. 그 하늘같은 바다, 바다 같은 하늘은 연초록 진초록이 스펙트럼을 이루며 빚어내는 푸른 산빛이며, 온갖 형상의 기암괴석들과 한데 어울려 웅장한 합주를 하는 듯한 풍경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바다 먼 곳으로부터 눈길을 서서히 끌어당기면 그 풍경은 마치바다라는 거대한 성곽에 옴팍 포위를 당해 있는 것 같다. 그 무엇도, 그 어떤 이도 이 산봉을 벗어날 수 없는 절대 포위 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다. 성인봉 표지석을 잡고 사방을 둘러보면, 망망대해에서 표류되어 파도 따라 정처 없이 떠가는 배 위에서 작은 돛 하나 잡고 서 있는 것 같다. 성인봉에 서면 울릉도는 천상 섬이다. 섬 살이의 고단과 고독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절해고도다. 바람만 심하게 불어도, 파도만 거세게 밀어닥쳐도 금새 지워질 것 같은 조그만 낙도다.

섬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성인봉에 오르면 자신이 고적한 섬 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임을 실감하게 된다. 성인봉 정상에 오르는 순간이면 산정 정복의 유쾌감에 젖으면서도, 너울을 타고 파도를 넘어 올 때의 그 지독한 멀미를 다시 상기도 해야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오백여 리 물길을 건너와 살고 있는 삶의 모습이 돌아 보여진다. 외로움을 친구처럼 알고 살다가 이 섬을 떠날 때, 외로움이 머물던 자리는 희망으로 채워질 것인가도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러운 일이다. 성인봉에 오르면 오로지 망망대해와 외로운 산뿐일 것을, 섬 살이의 고독감을 되새김질해야 할 뿐일 것을, 바다 저 편에 있는 그리운 사람들을 또 그리워해야 할 뿐일 것을, 그 봉우리엔 올라서 무엇할까. 아린 가슴은 또 어찌할 것인가. 섬도 사람 사는 곳, 사람들의 일상이 여느 곳처럼 펼쳐지고 있는 곳이 아닌가. 그렇다면 섬 살이도 뭍의 살이처럼 평일엔 열심히 일을 하다가 휴일엔 운동도 하고, 텔레비전도 보고, 책도 읽고……. 그렇게 살면 될 일 아닌가. 박 선생의 생각이 그랬을까. 그래서 여태껏 성인봉을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뭍의 일상처럼 그렇게 섬을 사는 것으로 섬 살이의 고독과 고단을 날리려고 했을까. 어쨌든 박 선생의 섬 살이 모습은 나름대로 터득한 '섬 살이법'일지도 모른다. 그 섬 살이법에 따라 박 선생은 섬을 살아 왔을 것이다.

그 섬 살이법을 호사꾼이 침노(侵擄)한 것이다. 그 침노를 배낭에 넣어 짊어진 박 선생이 침략자들과 함께 성인봉을 향하여 나섰다. 작지만 놀라운 혁명이었다. 그 혁명 대열을 따라 섬 식구들이 함께 나섰다. 섬의 서북면을 돌아 나리분지로부터 한 발 한 발 오르기 시작하는 걸음, 오르는 발자국 따라 풍경은 활동 사진처럼 변해 간다.

드디어 성인봉-. 섬의 온갖 산과 바위와 나무와 풀들이 드러났다. 바다가 사방을 둘렀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무늬를 새겼다.

박 선생이 말했다.

"섬을 떠날 때까지 열 번은 꼭 오를 겁니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박 선생이 성인봉에 오르던 날-.♣(2007.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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