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손녀의 돌을 섬에서 -여기는 울릉도·18

이청산 2007. 8. 21. 13:57

손녀의 돌을 섬에서
 
-여기는 울릉도·18



벽에 갖가지 색깔의 풍선을 달고 커다란 글자로 '이승윤 첫돌 기념'이라 써 붙였다. 백설기를 비롯한 떡 몇 가지를 괴고 갖은 과일을 차렸다. 상의 앞쪽에 쌀이며, 연필, 마우스, 돈, 실 등을 놓았다. 의자를 돋우어 앉혀 놓고 모두들 손뼉을 치며 돌을 축하하는 노래를 불렀다. 승윤이도 저를 향한 축하가 기쁜 듯 함께 손뼉을 쳤다. 상 앞에 세우고 좋아하는 것을 잡게 했더니 송글송글 맺혀 있는 포도송이에 손이 먼저 갔다. 어른들은 돈이나 연필을 잡기 바라고 있는데, 제 손에 딱 들어가는 포도알 따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그것도 귀여운 모습이라고 모두들 손뼉을 치며 웃었다.

돌날이 되자면 두 주일은 남았지만, 서둘러 잔칫상을 마련했다. 첫 손녀라 할아비, 할미의 손으로 돌상을 차려 주고 싶었다. 섬으로 오라고 했다. 섬에서 뭍으로 나가기나, 뭍에서 섬으로 건너오기나 모두 멀고도 험한 길이다. 손녀의 돌잔치를 좀 특별하게 차려 주고 싶었다. 제 할아비가 섬을 살고 동안에 맞이하는 돌을 섬에서 기념하는 것도 특별한 축하가 될 것 같았다. 하기야 갓 돌을 맞이하는 저 어린것이 무엇을 기억할 수 있으랴만, 이야기로도 영상으로도 남을 수 있는 일이기에 튼튼히 자라 철이 든 먼 훗날 저의 돌잔치가 특별(?)했음을 알 수 있다면 그 또한 즐거운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섬으로 부른 것이다.

제 아비 어미의 휴가 기간과 나의 방학 기간 그리고 돌날에 가장 가까운 날을 잡다가 보니 방학이 끝날 무렵인 8월의 중순에 아들 내외와 손녀가 섬으로 올 수 있었다. 외조부모를 비롯한 외갓집 식구들도 함께 왔다. 손녀로 보면 다 같은 할아버지 할머니요, 가까이들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새벽을 돋우어 길을 나섰다고 한다. 서울에서 너덧 시간을 달려 강원도 묵호항에 이르렀다. 출항 시각을 기다려 울릉도행 여객선을 탈 수 있었던 것은 집을 나선 지 예닐곱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리고 배의 요동을 따라 멀미에도 시달리면서 세 시간이 넘는 뱃길을 달려 왔다. 흔들리는 배가 요람으로 느껴졌을까, 그 요동이 어린것을 지치게 했을까. 손녀는 곤한 잠이 든 채 제 어미 품에 안겨 배를 내렸다. 모두들 반가운 손을 잡았다.

함께 집으로 왔다. 잠을 깬 손녀는 제법 재롱을 부리기도 했지만, 평소와는 달라진 집 안의 풍경이며, 익히 보지 못했던 할아비, 할미의 모습을 낯설어 했다. 제 어미 품만 파고들며 칭얼대었다. 한참을 그렇게 낯설어 하더니, 그래도 핏줄의 당김이 있었던지 드디어 안겨오기 시작했다. 지난 설날에 안아보고는 처음이다. 할아버지를 꼭 빼닮았다고 모두들 입을 모아 환호한다. 손녀의 가지런히 난 앞니가 봉곳이 솟은 봄날의 새싹 같이 앙증맞다.

학교 언덕에 서서 보면 시원스레 펼쳐지는 바다, 고깃배들이 항구를 수놓는 무늬처럼 정박해 있는 저동항,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의 효녀바위(촛대바위), 기묘한 형상의 북저바위와 공주의 잃어버린 유리구두 모양의 죽도……. 섬을 사는 사람들에겐 일상의 풍경이지만, 뭍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모두가 신비하고 감탄 어린 풍경이었다. 손녀의 눈에도 비쳐질까. 먼 훗날 저의 돌 무렵에 할아비, 할미는 저 아름다운 풍경을 일상 삼아 살고 있었음을 손녀는 어떻게 새길까.

섬에 왔으면 섬의 아름다운 풍경에 젖어야 할 일이라고, 배를 타고, 차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았다. 며칠 동안 바람 불고 흐리기만 하던 날씨가 손녀가 섬에 온 날부터는 하늘도 바다도 눈이 시리게 푸르렀다. 거북바위며 곰바위, 코끼리바위며 삼선암, 노인봉이며, 송곳봉, 관음도와 죽도 그리고 쪽빛, 옥빛으로 물보라 하나 일지 않는 잔잔한 바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내려 쬐는 햇볕이 따갑긴 했지만, 바다에서 섬을 봐도, 섬에서 바다를 보아도 풍경은 또렷하고도 시원했다. 사람들은 땀을 연신 닦으면서도 축복 받은 날씨라고 했다. 손녀 승윤이가 무럭무럭 튼튼히 잘 자라라고 뜨거운 햇살을 주고, 푸르고 큰 꿈을 키우며 살라고 저 바다와 하늘이 저리 맑고 푸른 것이라 했다.

섬의 바다며 섬 길을 달리는 동안 제 어미, 아비 품에 안기고 등에 업힌 채 새근새근 잠이 들기도 하고 그 여린 살갗에 내려앉은 햇살이 따가운 듯 가끔씩 칭얼대기도 했지만, 괭이소리를 내며 뱃전을 달려드는 갈매기를 신기한 듯 쳐다보기도 했다. 푸른 바다와 기암괴석이 어울려 빚어내는 신비로운 풍경이 분명 저의 망막도 스쳐갈 것이다. 저의 눈에 드는 저 아름 다운 풍경처럼 마음도 용모도 예쁘고도 아름답게 자라기를 빌며, 풍경들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어느 훗날 사진첩을 펼쳐놓고, 할아비와 함께 보았던 섬의 풍경이라고, 그 때 할아비는 이리 아름다운 풍경 속을 살고 있었노라고, 승윤이가 이 아름다운 풍경처럼 아름다운 되기를 빌고 있었다고 말해 줄 것이다. 그 훗날의 승윤이는 아름답고도 착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예쁘고도 성실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손녀는 사흘을 섬에 머물다가 멀고 먼 물길, 뭍길을 거쳐 서울로 돌아갔다. 아내는 섬을 보여주느라 더 많이 안아보지 못하고 업어 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당신의 품이나 섬의 품이나 아름답고 포근하긴 마찬가지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고 달랬다.

저들이 탄 배는 흔드는 손길만 남겨놓고 항구를 떠나갔다. 아내와 나의 가슴에 고 귀여운 환영만 또렷이 남겨 놓고-.♣(2007.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