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가물개 신인철 씨 -여기는 울릉도·14

이청산 2007. 6. 30. 12:17

가물개 신인철 씨
-여기는 울릉도·14



길동무 최 선생과 함께 가물개를 다시 찾아 간 것은 하지가 지난 유월의 어느 토요일이었다. 지난 섬 살이 때 가물개를 찾았을 때도 이맘때였던 것 같다. 유월의 싱그러운 햇살이 바다와 산을 푸르게 하고 있었다. 해안 절가물개 언덕에서 해안으로 내려 걸린 짐 운반용 철삭벽에 걸린 계단 길을 따라 숨을 헉헉거리며 올랐을 때 까마득한 높이에서 해안을 향해 걸려 있는 녹슨 철삭은 옛 그대로였다. 해안과 언덕 사이에 여러 가지 짐을 오르내리게 하는 장치다. 우거진 숲 속 길을 들어서니 홀연 나타나는 폐가의 모습도 옛 그대로다. 더욱 자욱하게 집 주위를 덮고 있는 풀숲이며 좀더 많이 허물어져 있는 집의 모습이 시간의 흐름을 말해 주고 있다. 개울을 건너 골짜기를 올라간다. 후박나무며 동백나무가 우거진 숲을 지나 언덕을 올라섰을 때 나타나는 빨간 양철집, 그 집도 지난날 그대로다.

그 때 '가물개를 아시나요'라는 글을 쓰면서 그 집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었다.

"풀숲을 헤친 길섶에 나타나는 빨간 양철집. ㄱ자로 서 있는 두 채의 집은 지붕도 벽도 모두 빨간 양철이다. 그 빨간색은 초여름의 신록에 둘러싸여 더욱 붉은 빛을 내고 있었지만, 녹슨 나물 가마가 걸려 있는 좁다란 마당에는 깊은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나물 가마로부터 저 아래 해안 쪽으로 운반용 케이블이 걸려 있는데, 운행을 하지 않은 지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집 주위 비탈이며 둔덕에는 나물 밭이 걸우어져 있었지만, 손을 쓰지 않아 묵은 곳도 있고, 나물이 한창 자라고 있는 곳도 있다. 집 뒤란의 닭장 안에는 토종닭 몇 마리가 모이를 쪼고 있다. 집주인은 이 집에 상6년 전에 촬영한 가물개의 신인철 씨 집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안 마을 어디에서 생활하면서 가끔씩 올라와 채전을 가꾸고 닭을 돌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집은 살림집이라기보다는 농막 구실을 하는 집이라 할 수 있겠다."

집 모양은 그대로였지만 좁다란 마당에 늘려 있는 것은 '적막'이 아니라 삶은 나물이었다. 주인 부부가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다. 반가웠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이소. 어데서 왔능교?"

"저동에 사는데요. 휴일이라서 섬 이곳저곳 둘러보려고 이렇게 왔습니다."

"그래요? 여 좀 들어오이소. 당신은 커피 한 잔 끓이고."

우데기 안의 마루에 걸터앉았다. 기다리고 있던 반가운 손을 맞은 듯 환대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부인은 얼른 상을 치우고 차를 끓이러 부엌으로 가려 한다. 차는 끓이지 말고 냉수나 한 그릇 달라고 하니 부엌으로 달려가 하얀 사발에 물을 떠다 준다.

울릉도에 사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 종고에 근무한다고 했더니, 그러면 그렇지 보통 사람 같지 않더라고 하면서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사람' 같지 않다는 말에 조금은 계면쩍어 하는데,

"아이구 선생님, 우리 아이들이 전부 종고를 졸업했니더. 참 반갑심더." 하며 다시 환대를 한다.

아들 둘, 딸 둘 모두 4남매가 울릉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지로 나가서 다들 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서울, 대구, 포항, 성주에서 저마다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다고 한다. 9천 평 농사를 지어 아이들 공부 다 시켜내고, 지금은 한숨 놓고 살고 있지만, 막내가 조금 어려워 걱정이라고 했다. 아직 젊은 사람이니 앞으로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위로하니, '그래야지요'하면서 활짝 웃는다. 올해 예순 일곱이라고 하는데, 이 산에 산 지는 40년이 다 되어 간다고 했다. 이마에는 굵은 주름살이 그어져 있지만 부부 모두 살결은 튼실해 보였다. 성함을 알고 싶다고 하니 성은 신 씨에 '인' 자, '철' 자를 쓴다고 했다.

나그네를 환대해 주며 나물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신인철 씨 부부이 가물개에 지금 몇 집이나 살고 있느냐고 물으니,

"지금 '가물개'라 캤습니까? 가물개는 우예 압니까?"

부인이 놀라듯이 되묻는다. 참 오랜만에 들어본 말이라며, 사는 사람이 없으니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가물개가 적막해져 가고 있다는 말이다.

"6년 전에도 여기에 왔었습니다. 그 때는 문이 잠겨 있고 아무도 안 계시대요."

"살림집은 통구미에 있고, 일 철에만 올라와 살지요." 통구미는 산 아래 해안 마을이다.

일 철이 아닐 때는 통구미에서 오징어 말리는 일을 하며 산다고 했다. 한창 때는 이 가물개에 열댓 집 정도가 살았는데, 지금은 모두 다 떠나고 저 위에 한 집만 살고 있다고 했다. 젊을 때는 이곳에서 살림을 하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고 했다. 절벽 아래로 내려가서 걸어서 학교엘 다니곤 했었는데, 눈이 오면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때 아이들을 너무 고생시킨 같아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런 아이들이 다 잘 커서 저마다 살길 찾아 잘 살고 있는 것이 대견스럽다고 하면서, 큰며느리가 고등학교 영어 선생으로 있다며 자랑삼아 말했다. 마당에 널린 나물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지난번 이곳에 와서 만났던 노총각 소식을 물었더니 시름시름 앓다가 연전에 죽었다고 했다. 남 다 가는 장가도 못 가보고 죽은 것이 애통한 일이지만 나이 많은 섬사람한테 누가 시집오려 하겠느냐고 했다

일어서려니 그냥 가서는 안 된다며 차라도 빨리 끓이라고 부인을 채근한다. 오뉴월 햇살보다 더 맑고 싱그러운 마음씨가 느껴졌다.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 갈 길이 바쁘다며 마당으로 나서자 신인철 씨 내외도 따라 나온다.

마당에 한가득 널린 것이 무슨 나물이냐 물으니, 허리 굽혀 뒤적이며 미역취라고 일러준다. 마당 앞쪽에 설치된 케이블과 리프트의 빨간 녹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녹이 슬어 있어 사용하지 않는 것인 줄 알았다고 했더니, 이것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며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듯 어루만진다.

남양으로 가는 길을 물으니, 길은 있지만 사람이 통 다니지 않아 풀숲에 다 묻혔을 거라며 길이 나 있는 집 뒤란으로 이끈다. 살구가 탐스럽게 달린 나무 옆에 허물어진 닭장이 보였다. 옛날에 여기서 먹이던 닭을 본 기억이 난다고 하니 근년까지 닭을 키웠다며, "그것도 다 봤심니꺼."하면서 기억해 주는 것을 반가워했다. 살구를 좀 따가라며 권하기도 했다.

편안히 잘 계시라고, 건강하게 잘 지내시라고 인사를 하며 돌아서니 부부는 잘 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손길 속에는 손[客]을 전별하는 서운한 마음이 묻어나는 듯했다.

우거진 풀숲을 헤치며 비탈길을 올라가는데, 숨이 가쁘고 등판엔 땀이신인철 씨 집 뒷모습 젖으면서도 가슴속엔 청량하고 푸근한 느낌이 떠나지 않았다.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인 사람들에게 그토록 따뜻한 마음을 줄 수 있을까. 산중에 외롭게 살다보니 사람이 그리워 그리할 것이라 짐작해보지만, 타고난 마음 없이 될 수 있는 일은 아닐 성싶다. 신인철 씨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섬 길을 걷다가 만난 사람은 모두 그러했다. '저 위에' 한 집 산다던 그 집에 이르렀을 때도 노부부가 나물을 갈무리하고 있었는데 그들도 우리를 보고, 날도 더운데 차라도 한 잔하고 쉬어가기를 권했다. 섬 길을 걷는 중에 그런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곧 울릉도의 인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때묻지 않은 자연과 더불어 살다 보니 사람도 그 풍경, 그 자연을 닮아 아름답고 때묻지 않은 마음을 지니게 된 것 같다.

문명은 사람에게 지식과 지혜를 주기도 하지만, 또한 잇속을 밝게 하고 영악하게도 만든다는 것을 이 섬에서도 절실히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좁은 섬 안에도 도동과 저동은 가물개와 같은 산골에 비해 많은 문명을 누리고 사는 곳이다. 그래서 그곳에는 신인철 씨 같은 사람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시기, 갈등, 증오 같은 것을 안고 사는 사람을 더러 볼 수 있다. 사람을 치어놓고 뺑소니를 치는 가해자도 있고, 그런 사람을 꼭 잡겠다며 거액의 현상금을 건 피해자도 있다.

울릉도는 어디에 있는가. 신인철 씨가 살고있는 가물개에 있고, 김두경 할아버지가 살고있는 향목령에 있다. 다툼이 있고 미움이 있는 곳은 울릉도가 아니다. 울릉도는 다툼과 미움 속에 있지 않다.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이 있는 곳에 울릉도가 있다. 내 사랑하는 섬이 있다. 그 섬에 내 삶의 자리가 있다.♣(2007.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