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성인봉과의 포옹 -여기는 울릉도.9

이청산 2007. 5. 23. 11:59

성인봉과의 포옹
- 여기는 울릉도·9
 (주사골에서 성인봉으로)



섬의 품속으로

섬의 품속을 걷는다. 섬의 모든 것은 신비다. 그러나 그것은 함부로 혹은 아무에게나 몸을 드러내지는 않다. 보기를 애쓰는 사람에게, 또는 볼 수 있는 사람에게 수줍은 듯 드러낼 뿐이다. 정겨운 마음으로 섬의 품에 안기다 보면 섬은 뜻밖의 선물을 우리에게 안겨 주곤 한다. '신비'라는 그 선물을 우리에게 안겨 주는 것이다. 오늘은 주사골에서 말잔등을 올라 내쳐 성인봉으로 내닫기로 했다.

어린이날이었던 어제도 최 선생, 전 선생과 함께 서달령을 거쳐 미륵봉을 올랐었다. 그리고 섬의 남서쪽 경치를 감탄했었다. 섬 최초의 '산나물축제'가 열리고 있는 나리분지를 내려다보며, 현포령 열두 구비 위에 우뚝 솟은 초봉과 청옥빛 바다를 향해 뻗어 내린 향목령을 보며, 그 옛날 검찰사 이규원이 첫발을 디디고 섬을 검찰하기 시작했던 유서 깊은 태하를 보며 한 폭의 정갈한 수채화처럼 그려져 있는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있는 섬의 비경에 가슴을 설레었다. .

어제의 걸음은 다리를 뻐근하게 했다. 그러나 일요일 오늘 섬의 신비 찾아가기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다시 만났다. 그리고 섬 길을 걷기 시작했다. 주사골로부터 신비의 섬, 그 신비를 찾아가는 걸음을 옮겨나갔다. 뒷산 석벽에 붙어 있는 흙이 주사(朱砂)와 같아 '주사골'이라 부른다는 마을, 늘 봉래폭포에서 흘러내리는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며 사는 마을을 지난다. 등판에 땀을 적시며 오름길을 재촉하여 폭포 매표소를 지나 다리를 건너 폭포로 향한다. 봉래폭포는 스무 길은 족히 넘을 듯한 3단의 단애에 마치 거룡처럼 높다랗게 걸린 물줄기로 세상의 모든 티끌을 단박에 다 쓸어버릴 듯 장엄한 광경을 연출하여 보는 이의 가슴을 삼엄한 청량감에 젖게 한다. 뿐만 아니라 하루 26,000톤을 떨어뜨리는 청정수는 섬사람들의 달디단 젖줄이 되고 있어 섬사람들의 각별한 사랑을 오로지로 받고 있다.

그 폭포를 오르기 직전의 삼림욕장 곁으로 난 비탈길을 오른다. 처음에는 없는 길을 새로 내듯이 하며 삼나무 낙엽이 깔려 있는 비탈을 오른다. 오를수록 산은 신록에 젖어 몸에 온통 신록의 푸른물이 젖을 것 같다. 땅에는 큰두루미꽃 푸른 잎이 질펀하게 덮여 있고 하늘로는 너도밤나무, 섬피나무가 산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오르다보니 닦여진 길이 나타난다. 그 길을 닦은 것은 물론 사람의 발길이다. 등산객들은 잘 오르지 않을 길이고, 나물꾼들의 닳아진 발자취일 것 같다.

 

봉래폭포의 수원(水源)을 보다

한참을 오르다보니 물소리가 들려 온다. 위치상으로 보아 봉래폭포로 흐르는 물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조금 더 오르니 내림길이 나타났다. 올라가야 하는데, 잘못 온 건가. 의구심도 잠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수많은 바위틈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다. 바위 위엔 온갖 풀들이 무성한데, 층층진 바위의 틈 틈마다에서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듯 물이 솟아나고 있다. 물은 아래로 떨어지며 한데 모여 작은 폭포를 이루어 두어 길은 됨직한 계곡 아래로 떨어지고, 떨어진 물은 다시 모여 아래로 흘러가는 것이다. 위치상으로 보아 필시 봉래폭포로 흘러 갈 것이다. 그렇다면 봉래폭포의 폭포의 수원(水源)임이 틀림없다. 지난 섬 살이 때 봉래폭포에 오르면서 늘 그 수원을 궁금해했다. 언젠가는 탐사를 해 보리라 벼르기만 하다가 그냥 섬을 떠났다. 오늘 우연찮게 그 수원을 만날 줄이야! 반갑고 기쁘기도 하면서 큰 신비를 찾아낸 듯한 장한 기분에 젖는다. 이 높은 산 그 깊은 속에 간직되어 있는 물이 바위를 뚫고 세상을 향하여 힘찬 몸짓을 하고 있는 저 신비가 사람의 가슴을 서늘케 한다. 저 물 어디에 저리 간직되어 있다가 세상을 향하여 저렇게 솟구쳐 나오는 것일까. 흙과 바위 속에도 또 하나의 길이 있고 세월이 있어, 그 길 그 세월 속을 흐르고 흐르다가 수 억 년 신비의 길과 세월을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온 저 물이다. 새 세상을 향한 갈구가 얼마나 간절했기에, 새 세월을 향한 염원이 곡진했었기에 저 굳센 바위를 뚫고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나와서도 그 간절과 곡진을 다 풀 수 없어 수십 길 단애를 마다 않는 폭포 되어 떨어지는 저 물이 볼수록 신비롭고 생각할수록 오묘하다. 정지된 사진으로만 남겨놓기에는 아쉽기만 하여 활동사진으로 촬영하여 오늘 발견의 뜻을 깊이 새기기로 했다. 물이 흐르는 뒤쪽으로는 커다란 계곡이 펼쳐졌다. 비가 온다면 커다란 물줄기를 이룰 수 있는 골짜기다. 건너편에는 동굴이 보였다. 그 또한 신비롭게 생각하며 가파른 비탈을 올라보았다. 굴이 깊지는 않았지만 섬의 생성과 더불어 숱한 세월을 간직한 모습이 역력히 보였다.

 

줄맨등을 오르다.

봉래폭포 수원을 발견한 흥분과 감동을 잠시 누르며 오르기를 재촉한다. 큰두루미꽃 천지인가 싶더니 명이가 지천을 이루는 비탈이 나타나기도 했다. 사람 소리가 들렸다. 이 깊고 가파른 산정에 웬 사람들일까. 나물 채취꾼들었다. 너덧 명의 사람들이 몸집보다 더 큰 나물 자루를 지고 산을 내려오다가 쉬고 있었다. 새벽 5시경부터 산을 올라와 명이를 뜯어 내려가는 중이라 했다. 4,50키로는 됨직한 나물 짐을 지고 내려가서 명이 김치 공장에 넘길 것이라 했다. 우리에게 이 산은 호기심의 대상이지만, 이들에게는 삶의 현장이다. 잘 가라고 인사하고 계속 올랐다.

다시 한참을 오르니 가파른 비탈에 길다란 밧줄이 내려쳐져 있었다. '줄맨등'이라는 곳이다. 산이 하도 가팔라 무엇을 잡지 않고는 오를 수 없어 늘 매어 놓은 줄을 잡고 오르내려야 하는 곳이기로 등성이 이름도 '줄맨등'이 되어 버린 것이다. 밧줄을 잡고 유격 훈련을 하듯 팔과 다리에 힘을 주며 오르기를 거듭했다. 줄은 200미터 정도에 걸쳐 비탈에 걸려 있었다. 팔도 아프고 숨도 가빴지만, 드디어 광활한 바다와 정겨운 섬 천지를 한 눈에 넣을 수 있는 감격은 아픈 팔, 가쁜 숨쯤이야 씻은 듯이 잊게 했다. 쾌재를 부른다. 저 건너 북쪽등성이로 말잔등 군사기지가 보인다. 마치 말이 고개를 숙인 채 등을 드러내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말잔등이라 부르는 곳이다. 지난 번 섬 살이 때 보았던 아픈 기억-. 그 때는 공사 중이었다. 말의 잔등에 선혈이 낭자했다. 기지를 건설하면서 수많은 나무와 풀들을 무참히 잘라내고 산의 등성이를 마구 파헤쳤다. 환경 단체와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그 반환경적 공사는 결국 산사태로 이어져 봉래폭포에 토사가 덮쳐 폭포의 경관이 크게 훼손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취수원이 어이없이 함몰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2004년 9월의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의 불행은 까마득히 잊은 듯 싱그러운 녹음을 배경 삼아 둥글고 커다란 시설물들이 등성이에 덩그렇게 자리잡고 있다. 주위의 풍경도 그 날의 일은 옛 기억으로만 접어둔 듯, 명도와 채도가 다 다른 녹엽들로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남쪽으로는 망향봉이 있는 도동전망대가 나뭇가지 사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서쪽으로 눈을 돌려 나가면, 아가씨 엉덩짝 같은 형제봉이며 송곳봉과 나리분지가 차례로 나타난다. 아직은 감탄을 아껴야 할 일. 성인봉을 올라 쾌재를 부를 일이 또 남았기 때문이다

 

성인봉아, 반갑다

성인봉을 향하여 걸음을 옮긴다. 길은 없었다. 뚫고 가야한다. 명이 밭이거나 조릿대 밭이다. 산이 가꾸고 하늘이 북돋운 밭이다. 자욱이 우거진 조릿대 속을 뚫고 걷는다. 때로는 가냘픈 조릿대 키 높이에 묻혀 버린다. 최 선생과 둘이서 길을 뚫어 나가는데, 전 선생은 어디로 갔을까. 불러도 대답이 없다. 어디로 미끄러져 내려가 버린 것일까. 고함쳐 부르면서 계속 나아가니, 저 건너 언덕에서 대답 소리가 들린다. 날아서 간 것인지 벌써 저 건너 비탈에 가 있는 것이다. 성인봉의 마력이 전 선생의 걸음을 날게 한 것일까. 명이가 지천의 밭을 이루고 있다. 산이 높아 채취한 것을 지고 가기 힘들어 나물꾼들의 발길이 미치지 못했나 보다.

아, 드디어 왁자한 사람들의 소리, 성인봉이 가까워진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륙 년 전에 오른 성인봉, 그대로 변함없는 모습일까. 정상에 올랐다. 그대로 있었다.  '聖人峰' 표석이 성인처럼 늠름히 서 있는 산 아래로 송곳산이며 나리분지가 일망무제로 탁 트인다. 서·북면을 경계짓는 미륵봉과 초봉, 남·서면을 가르는 가두봉, 오밀조밀한 풍경의 도동, 도동과 사동 사이의 관모봉과 망향봉, 북쪽의 현포와 평리 사이 노인봉이 저마다 싱그러운 신록의 옷을 입고 기묘하고도 장엄한 비경을 펼쳐내고 있다. 알봉이 정다운 몸짓으로 송곳산을 받치고 있는데, 봉우리 한 쪽에는 화산섬임을 말해주듯 용암 흘러내린 단층의 고운 무늬가 선연하다. 무거운 짐이 되어 말을 수고롭게 하고 있는 저 건너 말잔등의 군사 시설물도 멀리서 보니 그림이다. 섬에서 햇볕이 가장 많이 든다는 남양 쪽을 돌아보니 쪽빛 바다를 닮은 하늘이 등성이에 얹혀 있다. 예 보던 그 모습이다.

세월이 흘러도 의구(依舊)한 산천으로 서 있는 성인봉-. 성인봉이 반갑고, 저 비경들이 눈물겹다. '聖人峰' 표석과 포옹을 한다. 이산의 피붙이를 만난 듯, 그리운 여인을 해후한 듯 젖은 가슴으로 표석을 껴안는다. 두 번째 섬 살이의 커다란 이유라 할 수 있을 감격스런 포옹이다. 표석에도 뜨거운 핏줄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박동을 거듭하고 있는 심장이 있는 것 같다. 따뜻하게 젖어있는 눈동자가 빛을 내고 있는 것 같다. 한참을 그렇게 껴안고 있었다. 이 성인봉이 있어 섬이 있고, 섬이 있어 내가 오늘 섬사람이 되어 있음을 생각하면 성인봉과의 포옹은 곧 섬과의 포옹이요, 섬과의 애잔한 사랑의 몸짓이다.

다시 보리라 손을 흔들고 정상을 내린다. 그 길 그대로다. 수년이 지났어도 변한 건 없다. 성인정에 내려선다. 하얀 띠가 되어 바다를 묶고 있는 저동항의 남, 북 방파제가 액자 속의 그림처럼 정자에 걸려 있다. 만선의 날을 기다리며 줄지어 있는 고깃배도 아름다운 풍경을 더하고 있다. 다시 길을 내린다. 아내와 마가목 빨간 열매를 따던 기억이 묻어 있는 길을 지나고, 박 선생 내외와 함께 나물을 뜯으며 섬의 봄날을 즐겼던 길도 지난다.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섬의 추억들이다. 대원사로 내려가는 길의 간이 휴게소 앞에서 저동으로 가는 길을 잡는다. 풀숲 속에 난 그 길도 세월 속에 묻히지 않고 그대로 있다. 그때의 폐가도 그대로고 녹이 슨 채 멈추어 선 나물 케이블카도 그대로의 자연으로 남아 있다. 세상사는 무상하게 변해 왔건만 그대로 있어준 섬의 풍경들이 고맙고 반갑다. 해는 성인봉을 넘어가고 긴 산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저동천에 이르러 오늘 여정의 출발지에 선다.

봉래폭포의 신비로운 수원을 목도할 수 있었음이,

비경 위에 우뚝 선 성인봉과의 감격스런 재회가

오늘 섬이 우리에게 준 커다란 선물-.

날이 갈수록 마음 속 깊이 새겨질 정겨운 섬 사랑이다.

섬사람 되어 사는 즐거움이다, 기쁨이다.(2007.5.9)♣

 

       게시판 편지쓰기 방명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