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화요 데이트 -여기는 울릉도.8

이청산 2007. 4. 30. 16:05

화요 데이트
- 여기는 울릉도·8



데이트 오프닝

KBS 울릉중계소의 김태은 아나운서로부터 전화가 왔다. 편부경 시인으로부터 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화요데이트'란 프로그램에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섬에서는 KBS 라디오를 중계하여 방송하는 가운데 자체 제작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섬의 명사들을 초청하여 대담을 나누는 '화요데이트'란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한 번의 섬 살이도 쉽지 않은데 두 번이나 섬 살이를 하게 된 사연을 듣고 싶다고 했다. 방송을 해 본 적이 없다고 걱정했더니 생각을 담담히 이야기하면 된다며, 녹음 날짜와 시간을 잡아 주며 중계소 녹음실로 와 주기를 부탁했다.

약속한 날, 김 아나운서와 함께 녹음실의 둥그런 마이크 앞에 앉았다. 아나운서의 오프닝 멘트가 시작되었다.

"4월17일 화요일입니다. 오늘은 특별한 데이트, 화요데이트를 준비했는데요, 울릉도를 처음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자원하여 일을 하러 오신 분이 계세요. 교육자이신데요, 멋-진 데이트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윤종신의 노래 듣겠습니다.……" 노래가 이어졌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에 무슨 말을 어떤 어조로 말해야 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호흡으로 속을 가다듬었다.

시그널 뮤직과 함께, 오늘의 '화요데이트' 시간에는 33년 동안 도내의 여러 중고등학교에서 교사, 교감, 교장으로 재임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배출한 울릉종합고등학교 이일배 교장선생님을 모셨다면서 나를 소개했다. 대담이 시작되었다.

 

두 번씩이나 섬 살이를?

인사에 이어 두 번이나 울릉도 근무를 자원한 동기를 물었다. 2000년3월부터 2001년8월까지 울릉종고의 교감으로 재임하면서 울릉도와 울릉종고에 대해서 너무나 아름답고도 좋은 기억들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는 것부터 말했다. 울릉도 사랑에 한창 깊이 빠져 있던 2001년 여름 갑자기 육지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너무도 아쉬운 마음을 안고 울릉도를 떠나게 되었었는데, 육지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퇴임하기 전에 꼭 울릉도에 다시 와서 살리라 결심하고 있다가 마침 이번에 기회가 되어 다시 자원하여 오게 되었다고 했다. 울릉도가 고향이라거나, 여기 친척이 살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런 건 아니지만 고향처럼 아주 편하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울릉도에는 초임 교감, 교장이 첫 임지로 발령 받아 오는 것이 보통인데, 육지에서 교장으로 근무하다 온 사람은 나 뿐이라 했더니 놀라워했다. 섬에 대한 나의 사랑을 말한 것이다.

울릉도에 대한 첫 인연과 첫 인상을 묻기에 대학생 때인 1968년, 섬에 도로나 차량이 전혀 없던 시절에 처음 와 본 기억을 말하고, 1997년 여행을 와 보고 울릉도의 비경과 인심에 흠뻑 빠져 2000년 3월 교감으로 승진하면서 울릉도 근무를 자원하여 오게 된 일을 회고했다. 산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 섬의 절경은 나의 가슴을 감동으로 벅차게 했다. 그 감동은 눈물이 솟아나게도 했다. 그 때 생애에 단 몇 달만이라도 이 섬에 와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마침내 그 꿈을 2000년에 이루었던 것이다.

 

섬 살이 그 감동

학교 생활도 나에겐 사뭇 감동적이었다. 모든 생활이 바쁘기만 하고 삭막하기 짝이 없는 뭍의 생활 모습에 비하여, 모두들 학교 부근에 함께 모여 살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에 쫓길 일도 없고, 오백여 리 물길을 건너와 사는 사람들이라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껴안으면서 살고 있는 모습이 나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었다. 두 번째로 섬에 온 지금도 그런 느낌이냐고 물었다. 훌륭한 예술 작품은 그 감동이 영원하듯이 울릉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넉넉한 인심은 언제 다시 봐도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 바뀌었지만 서로들 위해주며 따뜻하게 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어, 그야말로 사람 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는 섬의 풍경으로 옮겨갔다. 산과 바다를 좋아하느냐, 고향이 바다 쪽은 아니냐고 물었다. 고향이 바다 쪽이 아니기에 바다에 대한 느낌이 사뭇 각별하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울릉도를 사랑하는 까닭 중의 하나가 산과 바다가 함께 있다는 것이고, 그 산과 바다에서 언제나 싱싱한 생명력을 느낀다고 했다. 섬 어디의 경치가 가장 좋더냐고 물었을 때는 나는 잠시 망설였다. 나에겐 절경이 아닌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한두 군데 짚어 달라고 했다. 굳이 들라면 지형이 매우 부드럽고 선이 매우 아름다운 석포, 하도 정이 들어 떠날 때는 울지 않고 못 배긴다고 해서 정들포라고도 부르는 그 석포와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형상이라는 학포의 비경을 소개했다. 음악이 이어졌다. 김정호의 '하얀 나비'가 흘러 나왔다. 멜로디는 학포 앞 바다의 맑은 물결 위로 흘러가는 듯했다.

 

수필 그리고 섬에 사는 애국

노래가 끝나고 다시 질문이 이어졌다. 나의 수필과 내 수필집에 대해서 물었다. 지난 섬 살이 때 섬을 살면서 그리고 섬의 곳곳을 걸으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 써서 낸 책이 '마가목 빨간 열매'라는 수필집이라고 소개했다. 아나운서는 울릉도 공공도서관에서 본 적이 있는 책이라며, 그 책의 저자가 나라는 사실을 감탄했다. 그러면서 울릉도에 수필의 소재가 될 만한 것들이 많이 있느냐고 물었다.

"예, 울릉도의 모든 것이 아주 훌륭한 글의 소재지요.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경치와 풀과 나무들이 좀 많습니까? 이 모든 것이 좋은 소재지요. 그리고 울릉도 사람들의 순박한 인심과 굳센 의지가 참 인상적이고 감동적입니다. 저의 글 속에는 섬의 아름다운 풍경과 울릉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많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꼭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하고, 울릉도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 울릉도 사람들은 어느 곳 사람들보다 큰 애국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울릉도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의 바다와 우리의 땅 독도를 굳건하게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냐며, 그런 점에서 정부에서는 울릉도 사람들에게 좀더 확고한 정주(定住) 기반을 마련해 주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울릉도를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나운서는 듣고 보니 울릉도 주민임이 참으로 자랑스럽고, 긍지가 느껴진다고 화답해 주었다. 울릉도가 번성할수록 우리의 영해와 영토가 튼튼하게 지켜진다는 생각을 더욱 굳건히 다지며 다음 물음을 기다렸다.

 수필을 잘 쓰는 요령이 뭐냐고 물었다. 난감했다. 수필을 잘 쓰지도 못하는 사람이 그 요령을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수필뿐만 아니라 모든 글들이 다 그렇지만,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나 사물을 예사로 지나쳐 보지 않는 예리한 관찰력이 있어야 하고, 그런 것들을 이리저리 둘러 생각해 볼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이 읽고 많이 써 보는 것만이 좋은 글,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느냐고 얼버무리듯이 말했다.

 

섬마을 선생님으로 살기와 화상으로 가족 만나기

학교 생활로 대화가 이어져 나갔다. 선생님으로서 교사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며, 어려움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사람을 기르고 만들 수 있는 직업이라는데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매력을 느낄 수 있으면서, 그 일이 또한 큰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훌륭한 제자가 많이 있느냐고 물었다. 문득 몇 사람의 제자가 뇌리를 스쳐 갔다. 화제는 학교의 교육 활동으로 계속 이어져 갔다. 섬의 특성상 가정 형편이 경제적으로 또는 가정 구조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들은 정성과 사랑을 다해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유달리 결손 가정이 많은 섬 아이들의 모습이 가슴속을 아리게 파고드는 듯했다.

학부모들이 지역 학교를 기피하고, 육지로 자녀들을 유학 보내는 걸 보면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으냐고 물었다. 물론 학교에서도 상당한 책임감을 느끼지만, 육지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때문에 육지로 나가려고 하는 경향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육지 유학이 대학 진학에 목적이 있다면, 특별 전형 혜택 면에서나 내신 성적 면에서나 지역 학교인 울릉종고 진학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인식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학생들과 학부모를 향해 이해를 구하듯이 힘주어 말했다.

학교의 총 책임자로서. 학교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으냐고 물었다. 나의 본연의 임무를 어떻게 수행하겠느냐는 것이다. 학교 운영의 제일의 목표를 학력 향상에 두고 공부 잘하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과 학습환경이 쾌적한 학교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말했다. 나의 솔직한 소망이기도 한 것이었다.

나의 개인적인 문제로 화제가 옮겨갔다. 가족들은 육지에 다 두고 왔느냐고 물었다. 가족으로는 아들, 딸 남매와 집사람이 있는데, 아이들은 다 제 가정을 가지고 서울서 살고 있고, 울릉도에는 집사람과 함께 와서 살고 있다며, 집사람도 울릉도를 아주 좋아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 다행이라고 하면서 아나운서가 웃었다. 자녀들을 자주 만나러 가거나 오느냐기에 명절이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요즈음 남북 이산가족이 화상 상봉하는 것처럼 인터넷 화상을 통해서 아이들과 손녀를 가끔 만나면서 그리움을 풀고 있다고 했더니, 첨단 기기를 잘 활용한다며 다시 웃었다. 이야기는 막바지로 이르고 있었다.

 

포부·울릉문학회 창립하기·파란 물빛

끝으로 울릉도에서 생활하시면서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 같은 것이 있으면 말씀해 달라고 했다. '울릉문학회'를 창립하여 운영해 볼까 구상 중에 있다고 했다. 섬에는 풍부한 글의 소재가 있고, 글을 쓰고 있거나 글 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활동 공간이 없는 것을 아쉽게 생각해 왔다. 문학을 통해 신비의 섬 울릉도의 아름다움을 선양할 수 있는 일을 해 보고 싶다고 했다. 뜻과 관심이 있는 많은 섬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고도 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울릉도의 문화 발전을 위해서 아주 좋은 계획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선생님의 뜻이 꼭 이루어지시기를 빌면서, 그리고 앞으로도 종종 모셔서 가끔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데이트를 마치겠습니다.

오늘 화요데이트에서는 울릉종합고등학교 이일배 교장선생님과 함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마무리 멘트로 대담을 끝냈다. 음악이 이어졌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가벼운 웃음도 곁들이면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김 아나운서의 능숙한 진행에 짧지 않은 대화의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 진행 솜씨 덕분에 대중을 상대로 하는 방송용 대화라는 사실도 가끔씩 잊어가며 대화에 몰두도 했던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는 적절한 어휘를 생각해내지 못해 더듬거리기도 했지만, 섬 살이에 대한 평소의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던 것 같아 마음이 가볍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또한 내 섬 살이의 한 모습일 터-. 도동 부두가 내려다보이는 높다란 언덕에 서 있는 방송국 스튜디오를 나설 때, 파란 하늘빛을 닮은 바다가 왈츠를 추듯 일렁이고 있었다.

그 위로 하얀 배 하나가 일렁이는 물결을 타고 미끄러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