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울릉문학회, 출범의 닻을 올리다 -여기는 울릉도·10

이청산 2007. 6. 9. 16:44

울릉문학회, 출범의 닻을 올리다
-여기는 울릉도·10



 어제는 잿빛 바다에 내린 강풍주의보가 뱃길을 막아 섬사람의 가슴을 아리게 만들더니, 오늘 아침엔 잔잔한 바다 위로 화사한 햇빛이 내려앉았다. 어제의 풍랑주의보도, 강풍주의보도 모두 해제되었다. 주의보들이 지나간 뒤에 고요하고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날이면, 섬사람들은 무슨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즐거운 기대에 찬다.

섬을 찾아오는 사람들이나 섬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가득 실은 배는 우렁찬 고동소리를 울리며 부두로 들 것이고, 사람들을 섬에 내린 배는 뭍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며 그리운 사람들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가득 싣고 출항의 고동소리를 힘차게 울리며 섬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다는 하얗게 갈라지며 길을 지어 줄 것이다. 사람들은 그 배를 타지 않아도 배가 그렇게 들고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즐거움에 젖는다.

그 즐거움이 섬사람들의 가슴을 포근하게 하던 무르익은 봄날 오후 5시, 사람들은 나의 사무실로 모여들었다. 가정주부 이후남 님과 독도박물관에 근무하는 박경필 님이 오고, 이우종 울릉문화원장님과 정만진 울릉의료원장님이 오고, 신아일보 송성준 님 그리고 KBS 울릉중계소 김태은 님이 왔다. 그리고 우리 학교의 송택경 선생과 내가 함께 앉았다. '울릉문학회'를 만들어 보자는 데 뜻을 모아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 동참하기로 했던 저동초등학교 손영규 교감선생님은 학교의 운동회 때문에, 울릉군청의 김기백 님은 섬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산나물축제' 준비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뜻은 함께 하기로 했다.

어디에서 살든 생활 속에 어느 것 하나 글의 소재가 되지 않을 것이 있을까만, 섬의 자연 풍경들이며 삶의 모습들이란 글의 충분한 소재가 되고도 남을 것들이다. 뭍의 모습에 비하면 이국적, 이색적일 수도 있는 수려한 풍광이며, 굳세면서도 순박한 인심들이 어느 곳의 그런 것들보다 더 큰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울릉도를 살다간 문필가들은 울릉도를 소재와 주제로 삼은 시집이며 수필집을 꼭 내게된다. 일찍이 여영택 시인을 비롯한 많은 시인들이 그랬다. 한 권의 책으로는 아니라 할지라도 울릉도를 소재로 한 글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것은 모두 울릉도에서 받은 감동을 속으로만 갈무리하고 말기가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첫 번째 섬 살이 때의 감동을 한 권의 수필집으로 엮기도 했다. 그 때 '표현을 위해 겪어야 하는 어려움보다 감동을 참고 있기가 더욱 힘들다고 느낄 때 써 본 글들'을 모아 책으로 낸다고 머릿글에 썼었다.

섬이 그렇게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감동'을 지닌 곳임에도, 그 감동을 글로 쓰고 싶고 많은 글이 쓰여지고 있음에도 오직 혼자서만 외로이 써야 할 뿐, 그 문학적인 감흥을 함께 나눌 글벗들의 모임이 섬에는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감동은 나눌수록 더욱 커질 수 있는 것이고, 활동 공간이 넓을수록 표현의 동기도 더욱 강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 문학인의 모임이 없는 곳이 경북에서는 군위와 울릉 딱 두 곳뿐이라는 사실도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되었다. 지난 번 섬 살이는 내 뜻과는 달리 참으로 아쉽게 마감하고 떠나야 했다. 뭍에 살면서 나는 늘 다짐했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섬으로 가리라. 그리고 그 감동 속에 다시 한 번 깊이 빠지리라, 그리고 그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글벗들의 모임을 만들리라. 소원이 간절했기 때문일까. 꿈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섬으로 왔다. 그리고 섬이 주는 또 다른 감동에 하루하루 젖어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꿈까지 이루어지는 순간이 오고 있다.

시를 쓰는 송 선생과 먼저 의기를 모았다. 섬의 문화적인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울릉문화원의 이우종 원장님을 만나 문학회 결성의 뜻을 이야기하고 지원을 약속 받았다. 각 기관의 홈페이지에 '울릉문학회' 창립 취지문을 올려 뜻 있는 사람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그리고 알음알음으로 뜻을 같이할 사람들을 찾아 나갔다. 수필을 쓰고 있는 정만진 울릉의료원장님을 비롯한 몇 분들에게 뜻이 닿게 되었다.

뜻을 같이 한 열 사람 중 여덟 사람이 모여 앉았다. 울릉도 최초로 문학 단체 하나를 탄생시킨다는 가벼운 흥분이 좌중을 달아오르게 했다. 진지한 마음으로 머리와 가슴을 모았다. '무엇을 하기 위해 우리는 모이는가'에서부터 화두를 풀어 나갔다. 문학적인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일을 통해서 문학적 역량을 강화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신비의 섬 울릉도의 문화와 자연을 선양해나가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자고 뜻을 모았다.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문학 작품 창작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서로 나누고, 정기적인 작품 합평회를 통하여 창작 능력을 발전 시켜 나가고, 활동 무대라고 할 수 있는 회보 및 회지의 발간을 추진하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 다른 지역 문학 단체와도 교류를 추진하고 지역의 문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을 해 나가자고 결의했다. 지역 문화 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것이라는 포부와 사명감도 잊지 않았다. 두 달에 한 번씩 모여 합평회를 여는데, 웹 카페 하나를 만들어 거기다가 수시로 작품을 올리고, 그것을 출력해 읽고서 서로 평을 해보자는 실질적인 활동 계획도 세웠다.

임원을 선출했다. 고문으로 지역의 원로이신 이우종 문화원장님을 추대했다. 회장은 나보고 맡으라고 했다. 사양하지 않는다고 했다. 회의 기능이 정착되기까지의 일은 내가 책임져야 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서 울릉 문학과 문화의 발전을 위해 애쓰겠다고 했다. 부회장에 정만진 님, 감사에 송성준 님, 회의 살림을 살아나갈 사무국장엔 송택경 님,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회지의 발간 업무를 추진해 갈 출판국장엔 박경필 님이 맡기로 했다. 회의 얼개가 갖추어진 셈이다. 더러 사양은 했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들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울릉문학회의 발전을 위해 문화원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문화원장님의 고무적인 말씀에 회원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창 너머로 길다란 방파제 위에 우뚝 솟은 촛대바위가 보이는 어느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파제 아래에는 출어의 힘찬 고동소리를 울릴 날을 기다리는 고깃배들이 노란 조상기를 무늬처럼 달고 어한(漁閑)의 봄을 보내고 있다. 겨울이 나무의 새싹을 준비하는 계절이듯 섬의 봄은 만선의 풍어를 예비하는 계절이다. 이 봄에 우리는, 울릉문학회는 출범의 닻을 올린다. 풍어의 계절로 내닫는다.

"신비의 섬 울릉도의 문화와 문학의 발전과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하여!"

문화원장님의 우렁찬 건배 제의로 모두들 잔을 든다. 잔 부딪치는 소리가 청랑하게 울렸다. 뜻을 모으는 박수를 쳤다.

울릉문학회의 닻을 세우던 날, 우리는 밤이 깊도록 섬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이야기하고, 그 아름다움을 글로 그려낼 일을 고뇌했다. 그리고 섬의 문화와 문학의 발전을 위한 역군이 되자고 했다. 파도는 쉴새없이 항구로 밀려왔다.

그 파도 소리는

울릉 문화의 아름다운 바다로 나아갈

울릉문학회의 장도를 축복하는 축가가 되어

밤 깊은 항구의 뱃머리마다 울려 퍼지고 있었다.♣(200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