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이 선생의 귀도(歸島) -여기는 울릉도.5

이청산 2007. 4. 5. 17:11

이 선생의 귀도(歸島)
- 여기는 울릉도·5



내일 오전 포항 울릉 항로상에는 파도가 높이 일 것이라 했다. 이 선생은 불안했다. 내일 섬으로 꼭 돌아가야 하는데, 배가 뜨지 않으면 어쩐단 말인가. 하늘에 메인 일이라 할지언정, 잘못은 자기에게 있는 것 같았다.

경주의 화랑교육원에 입소하여 교육을 받고 퇴소하는 아이들을 마중하기 위하여 뭍으로 나왔다. 오백여 리 물길을 달려 포항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아이들을 포항 어디로 오라고 하여 무사히 만날 수 있었다. 저녁을 같이 먹고 하룻밤을 함께 잤다. 섬 살이의 어려움이다. 뭍의 아이들 같으면 차를 타고 훨훨 집으로 돌아가면 될 일이건만, 섬 아이들은 다음 날 뜨는 배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다 큰 아이들이라 배는 저희들끼리 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밤을 저희들끼리만 세우게 하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이 선생은 이 아이들을 같이 데리고 자기 위한 임무를 띠고 뭍으로 나온 것이다.

밤을 함께 새우고 나서는 저희들끼리 배를 태워 보내면 되겠지. 섬에 도착해서 각자 집으로 가면 될 일이고. 오늘이 토요일이니까 나는 내일 들어가도 되겠지. 가족을 포항에 두고 있는 이 선생은 토요일 밤을 가족과 함께 지내고 일요일에 섬으로 가리라 계획했다.

이튿날 아침, 여객선 선착장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선표를 쥐어 주면서 배를 내려서 곧바로 집으로 가라고 단단히 타일러 배를 태웠다. 월요일에 학교에서 만나자며 손을 흔들었다. 터미널이 텅 비는 것을 보고,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왔다.

아침부터 몰아치던 비바람이 그칠 줄을 모른다. 섬사람들은 항로상의 날씨가 언제나 걱정이다. 이 선생은 내일의 날씨를 검색해 보았다. 큰일이다. 오늘 오후부터 내일까지 계속 파고가 높다는 것이다. 인솔 책임을 맡은 아이들만 섬으로 들여보내 놓고, 일요일인 내일 들어가지 못한다면 학교에 대하여 너무나 면목 없는 일이다. 제 때에 들어가지 못한 것만 해도 미안한 일인데, 수업 결손까지 난다면 아이들에게도 동료들에게도 더욱 송구스런 일이 된다. 이 선생은 가족과 함께 하는 즐거움보다 불안과 걱정이 더 큰 하룻밤을 집에서 보냈다.

이튿날, 바람이 많이 불었다. 이 선생은 출항 여부가 결정되는 아침 7시가 되자마자 선착장으로 전화를 했다.

"4월1일 여객선 운항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행이다. 천만 다행이다. 배가, 배가 뜬다는 것이다. 그런데 포항이 아닌 강원도 묵호에서 뜬다고 했다. 묵호면 어떤가, 섬으로 갈 수 있는 것만 해도 다행하고 다행한 일이다. 어제 포항에서 울릉도로 간 배는 다시 나오지를 못하고 묶여 있다가 오늘 오후 3시에 포항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하루를 완전히 묶인 것이다. 그리고 묵호에서 뜨는 배는 오전에 울릉도로 와서 승객을 내려놓고 바로 묵호로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2시에 다시 울릉도로 간다고 했다. 묵호와 울릉도 사이의 항로는 물결이 크게 일지 않았던 모양이다. 포항과 울릉도 사이를 운항하는 여객선이 뜨지 못하니, 묵호의 배가 바쁜 운항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학교에 대한 죄스러움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쉬며 포항시외터미널로 내달았다. 묵호행 버스를 탔다. 파도 치는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세 시간 여를 달려 북쪽으로 달려 올라가 묵호에 닿았다. 그리고 울릉도행 배를 탔다.

이제 섬으로 간다. 사람도 배도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이 선생은 하늘에라도 날아 오를 것 같았다. 일렁이는 물결을 따라 배는 흔들렸지만, 춤을 추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왈츠일까, 블루스일까. 갈매기도 배를 따라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드디어 섬에 당도했다. 섬이 그토록 편안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오백여 리 물길 밖에 가족을 떼어놓고 살아야 하는 고적감도, 생활의 모든 부분을 홀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섬 살이의 고단함도 마치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섬으로 돌아온 이 선생은-.♣(200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