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다시 찾은 정매화골 -여기는 울릉도.2

이청산 2007. 3. 19. 10:44

다시 찾은 정매화골
- 여기는 울릉도·2



정매화골을 다녀왔다. 인정 많은 주막집 여인네의 전설이 깃든 정매화골은 내수전 고개마루를 올라 섬의 북쪽인 천부으로 가는 중간쯤에 있는 골짜기다. 그곳에 많이 나는 명이나물을 만나고도 싶었지만, 지금은 정 여인의 전설이 어떻게 그 골짜기에 서려 있을지가 궁금했다. 마치 그 옛날의 주막을 지키며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다정한 손길을 내밀고 있을 것만 같았다. 연전의 섬 살이 때 '정미화골 이야기'라 하여 그 전설을 글로 썼었다. 구전으로 전해 오던 이야기이다 보니 정매화골, 정미화골, 정명골 등 비슷한 발음의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정매화골'이라 표기해 놓았다.

모시개를 지나 내수전마을로 들어 바다를 등에 지고 오르막 포장길을 힘주어 오르면 산을 잘라 길을 낸 포장 도로가 이어진다.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산을 절개하여 길을 닦고 있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고개 마루까지 말끔하게 포장해 놓았다. 망망한 바다 위에 외롭게 떠 있는 죽도가 훤히 보이는 고개 위에서 포장길은 끝나고 비탈 산길이 이어진다.

예 보던 그대로의 산길이다. 가파른 산허리를 돌고 돌아 나 있는 길은 계곡을 다리로 건너기도 하면서 골짜기로 이어진다. 마치 어제 걷던 길을 오늘 또 걷는 것처럼 지난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내려다보면 아찔한 절벽도 있고, 비탈이 조금 완만하다 싶은 곳엔 나물 농사를 짓던 밭도 보인다. 지금은 묵밭이 되어 잡초만 무상하고, 양철집 농막은 예전보다 훨씬 짙은 녹이 슬어 을씨년스런 폐가로 변해 있다.

정매화골에 이르렀다.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다. 정 여인이 살았던 곳이 옛 집은 없어지고 정자를 지어 놓은 정매화골라 생각했던 그 옛 집은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엔 잘 지어진 정자가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다. 그 옆에는 이 골짜기를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벤치가 있는 탁자를 마련해 놓았다. 그리고 '정매화곡 쉼터 유래'라는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안내판에는 이 골짜기에 정매화라는 사람이 살던 집이 있었기 때문에 '정매화골'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간단한 유래담에 이어 이효영이라는 분의 선행을 소개하고 있다. 오직 걸어서만이 이 골짜기를 통해 섬의 남북을 오가던 시절인 1962년 이효영 씨 부부는 슬하의 3남매와 함께 이곳에 정착하여, 1981년 이곳을 떠나기까지 19년 동안을 살면서 폭설과 폭우 때 정매화골 유래 안내판, 정매화골 유래와는 관계 없는 내용을 안내해 놓았다.문에 이 골짜기에서 조난 당한 사람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3백여 명이나 구출했다고 한다. 그 공적을 기려 울릉도 개척 100주년을 맞은 1982년 이효영 씨 부부를 선행 군민으로 표창했다는 사실도 전하면서, 그 미담을 보도한 신문 기사 내용도 커다랗게 소개해 놓았다.

그러고 보니 연전에 내가 보았던 양철 지붕에 양철 우데기가 둘러쳐져 있던 방 두 칸의 조그만 집은 이 씨 부부가 거처했던 집이었던 것 같다. 그 때 그 집은 폐가가 되어 문짝은 다 떨어져 나가고, 양철이 헐고 녹슬어 음산한 모습이었다. 이 씨가 떠난 지 20년쯤 지났을 때이니 폐가가 된 것은 당연했지만, 허물어져 가는 방의 흙벽에 집주인 것인지 나그네 것인지 입던 옷가지 몇 벌이 걸려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집이 이 씨가 지어 살던 집인지, 전부터 있었던 집에 이 씨가 들어가 살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만약 전부터 있었던 집이었다면 정 여인이 살던 집일지도 모른다. 이 씨가 지었다고 해도 터는 정 여인이 살던 곳일 수 있다. 이 길을 걸어 섬의 남북을 오가던 나그네들이 쉴 만한 곳은 이곳밖에 없기 때문이다.

섬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정 여인은 이 골짜기에서 주막을 차리고 오가는 나그네들 정성을 다해 접대했다고 한다. 나그네들은 정 여인의 주막에서 몇 잔의 술로 목을 축이고 땀을 씻으며 지친 걸음을 쉬기도 하고, 남북 사람들 사이의 볼 일을 서로 바꾸어 되돌아감으로써 다리품을 줄이기도 했다고 한다. 정 여인은 몸과 마음을 다해 나그네들을 접대했고, 정 여인의 인정과 인심은 나그네들의 입을 타고 널리 퍼져 나가면서 어느 새 이 골짜기의 이름이 정 여인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 여인의 전설이 있기에 이 골짜기를 더욱 정답게 생각하고, 그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느낀다.

그러나 새로 꾸민 쉼터의 모습과 유래를 담은 안내판은 그 정다움과 아름다움을 새겨 놓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효영 씨의 선행은 널리 칭송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골짜기에 얽힌 또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언정 안내판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정매화골 쉼터의 유래는 아니다. '정매화곡 쉼터 유래'라 하지 말고, 이효영 씨 이야기만을 담은 안내판을 세워 그의 선행을 기려야 했다. 정 여인을 말하지 말고, 차라리 구전으로만 살아 있게 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뻔했다.

정매화골 유래를 말하려면 정 여인의 전설을 이야기했어야 했다. 설령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전설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가치와 아름다움이 있다. 옛 이야기들 속에는 지난 날 우리들의 삶이 녹아 있기에, 옛 이야기가 풍성할수록 오늘 우리의 삶이 더욱 기름질 수 있다. 지난날의 이야기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결국 오늘의 삶을 메마르게 하는 것이다. 이 쉼터와 안내판이 정 여인의 전설이 자리할 곳을 잃게 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정 여인의 이야기가 이 골짜기를 떠나는 것은 이 골짜기의 아름다움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다.

정 여인이 나그네를 정답게 맞던 이 곳에 쉼터를 조성할 수도 있고, 편안한 휴식을 위해 정자를 짓고 벤치를 설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옛 집을 꼭 헐어 버려야만 했을까. 그 집이 정 여인이 아니라 이효영 씨가 살던 집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폐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집을 없애야만 했을까. 정 여인의 전설이 어린 주막이었다면, 수많은 조난자들을 구조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던 집이라면, 깨끗하게 다듬어 전설과 미담의 현장으로 살아 있게 함으로써 이 골짜기를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섬에는 '국제 관광 휴양 섬 조성'이라는 기치 아래 크고 작은 많은 개발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울릉도를 한국의 하와이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섬은 충분히 개발되어야 하고, 그 개발에 따라 섬사람들의 삶의 질도 향상되어야 한다. 그래서 확고한 정주 기반이 마련되어 많은 사람들이 안정되게 섬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울릉도는 우리의 동쪽 영해와 영토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발의 논리에 밀려 천혜의 절경을 다쳐서는 안 된다. 섬에 깃들어 있는 역사와 전설을 잃어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이 섬을 더욱 신비롭게 아름답게 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이 이 섬을 떠난다면 섬이 아무리 개발되어도 섬은 신비롭지도 아름답지도 않게 될 것이다.

정매화골을 나오면서 보이는 죽도 앞 바다언젠가는 내수전에서 이 골짜기를 지나 섬목까지 찻길이 뚫릴 것이라 한다. 섬사람들은 학수고대로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 날이 정 여인의 전설이 섬을 완전히 쫓겨나는 날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정매화골을 돌아선다.

숱한 세월과 사연을 안고 출렁이는 서럽도록 푸른 내수전 앞 바다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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