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8

기다림에 대하여(6)

기다림에 대하여(6)   오늘 아침에도 내 귀는 현관문 쪽을 향해 있다. 그가 여는 문소리가 곧장 들릴 것 같다. 그는 나의 요양을 도와주는 분이다. 어쩌다 보니 홀로서기가 어렵게 되었다. 곁에 아무도 없는 지경이 된 데다 질고까지 겹쳤다. 관계 기관에서 내 처지를 헤아려 보내준 분이다.  정해진 시각 무렵에 어김없이 문이 열린다. 밤새 안녕을 묻는 인사와 함께 나의 하루에 필요한 일들을 챙겨나간다. 이내 몇 가지 찬이 어우러진 아침상이 들어온다. 텃밭 남새로 마련한 찬과 함께 집에서 보듬어온 정성도 곁들였다.   그가 여는 문소리는 요즘 내 삶의 고즈넉한 동력이고 희망의 시그널이다. 나는 그를 편안하고도 고마운 눈길로 바라지만, 그는 나의 눈길을 여밀 틈도 없이 바쁘다.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내 하루 ..

청우헌수필 2024.08.08

기다림에 대하며(5)

기다림에 대하며(5) 작은 기다림만 있으면 된다. 창창한 포부며, 우렁찬 이상이며, 풋풋한 희망이며, 달금한 꿈 들은 없어도 된다. 그런 것들이 새삼스레 찾아와 주지도 않겠지만, 찾아와 준대도 가볍잖은 짐이 될 것 같다. 해넘이 저녁 빛이 곱다. 저 해 저리 고운 빛을 뿌리기까지는 붉고도 푸른 꿈을 안고 지상으로 솟아올라 세상을 서서히 비추어 나가다가, 드디어 하늘 한가운데 이르러 모든 세상을 다 안아 보기도 하며 환호를 터뜨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 환희에 작약하고 있으려고만 하지 않았다. 넘어갈 줄도 알고, 질 줄도 아는 품새가 저 고운 빛을 그려 냈을지도 모른다. 이제 조금 더 있으면 저 해는 제가 만든 고운 빛 속으로 자태 곱게 들것이다. 홀가분해서 좋다. 한창때는 무거운 짐도 무거운 줄 모르고 지..

청우헌수필 2023.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