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363

나무, 그대로 두자

나무, 그대로 두자 나무가 제 발로 산에서 내려올 리가 없다. 산은 나무의 태생 고향이요, 집이요, 보금자리요,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무가 들판에 내려앉아 있고, 길가에 나앉아 있고, 집안에 들어앉아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람 탓이다. 사람들이 산의 나무를 들어다가 저들이 일하는 들판에도 앉히고, 저들이 다니는 길가에도 앉히고, 저들이 사는 집 뜰에도 앉힌다. 사람들은 나무를 저들이 차지한 땅에 들이기를 좋아한다. 어느 때는 못 들여서 안달도 한다. 사람들은 나무에게 왜 그러는 것일까. 아껴주기 위해서인가. 치장을 위해서인가. 이득을 위해서인가.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그리하든, 어떻게 해주든 나무의 본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다. 나무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무는 사람의 ..

청우헌수필 2019.10.13

나무는 겸허하다

나무는 겸허하다 오늘도 산을 오른다. 늘 그 자리에 서서 하늘 향해 푸른 가지를 뻗고 서 있는 나무들이 언제 봐도 아늑하고 청량하다. 잎사귀를 반짝이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나도 저를 향해 즐거운 손길을 보낸다. 강대나무가 된 소나무 하나가 넘어지면서 상수리나무에 기대어 서있다. 뿌리가 뽑힌 밑둥치를 힘주어 끌어당겨 마른 우듬지를 땅에 눕혔다. 다른 나무에 기대고 있던 저나 의지가 되어주어야 했던 나무나 모두 편안한 일이 될 것 같다. 이제 이 나무는 땅에 누운 채로 온갖 벌레며 미물들의 아늑한 집이 되다가 풍우에 몸이 녹으면서 흙이 되어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무와 땅은 한 몸일지도 모른다. 땅의 기운으로 나고 자라다가 그 기운을 모두 다시 땅으로 가져가지 않는가. ‘나무는 인간의 자원이 아니라 ..

청우헌수필 2019.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