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나무의 죽음(1)

이청산 2019. 7. 9. 12:23

나무의 죽음(1)

 

오늘도 해거름 산을 오른다산이 언제나 거기 있기 때문이다나무가 산에 있기 때문이다늘 봐도 보고 싶은 나무다또 하나 큰 나무가 쓰러져 있다산에는 언제나 쓰러지지 않은 나무와 쓰러질 나무와 쓰러진 나무가 모두 하나가 되어 살고 있다.

걸음 앞에 가로 누워 있는 큰 둥치를 넘으려다 보니 두꺼운 껍질을 뚫고 숭숭 나있는 구멍들이 보인다무언가가 분주히 드나들었을 자리인 것 같다지금도 이 구멍 속에는 무슨 생명들이 거처를 마련하여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무도 죽는가나무도 죽는다죽지 않는 생명체가 어디 있는가그렇지만 나무는 삶과 죽음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은 것 같다살아서도 죽음과 함께 있고죽어서도 살아가다가 또 다른 삶이 되어 태어나는 것이 나무인 것 같다.

나뭇가지를 쳐다보라푸르고 싱싱한 잎을 단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잎도 없는 마른 가지도 함께 뻗어 있다물기 있는 것이라고 마른 것을 내치지도 않고마른 것이라고 쉽사리 제 자리를 버리지도 않는다한 나무에서 산 것 죽은 것이 함께 살고 있다.

커다란 나무일수록 거의 죽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세포의 수명이란 대개 두 달을 넘기기 힘들다고 한다그런 나무지만 누가무엇이 쓰러뜨리지 않는 한 수십수백 년을 거뜬히 살아간다삶과 죽음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그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인가.

설령 나무가 죽는다 해도 그대로 내려앉지는 않는다선 자리에서 또 수많은 세월을 안아 간다그런 나무를 강대나무라고 한다그 나무를 두고 시인은 노래한다.

……나는 초혼처럼 강대나무를 소리 내어 떠올려 내 누추한 생활의 무릎으로 삼는 것이다./ 내가 나를 부르듯 저 깊은 산속 강대나무를 서럽게 불러 내 곁에 세워 두는 것이다.”(문태준강대나무를 노래함)

무릎으로 삼으며 내 곁에 세워 두는 나무라고 했다얼마나 편안해 보이면 무릎으로 삼고 싶은가얼마나 아늑해 보이기에 곁에 세워 두고 싶은가.

강대나무는 마냥 가만히 서있는 것은 아니다팡이실로부터 개미종벌레사슴벌레다람쥐오소리개구리도마뱀멧돼지수많은 새 들이며 이끼들꽃작은 나무들에 이르는 무수한 동식물들의 쉼터,놀이터가 되고 생명의 집이 된다고 한다어느 산림학자는 이런 나무를약한 생물들을 구원하는 노아의 방주라고 했다이 생명의 구세주를 두고 어찌 죽은 나무라 할 수 있는가죽어서도 많은 생명체들과 더불어 살고 있지 않은가.

십여 년 전 울릉도에 살 때한 섬사람으로부터 섬향나무로 만든 조그만 찻상 하나를 선물 받았다오늘도 그 찻상에 찻잔을 받쳐 놓고 차를 마신다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무가 지닌 향이 여전히 은은하게 풍겨 나오고 있다차향이 한결 삽상하다이 나무를 또 어찌 죽은 것이라 할 수 있는가죽어서도 향기를 내는 생명체가 또 어디 있는가인간세상의 의인 같은 풍취다.

이렇듯 모든 나무가 살아있는’ 죽음을 맞는 것은 아니다이웃집 뒤꼍에 나이테가 백 줄쯤은 그어졌음직한 큰 살구나무가 있었다봄이면 연분홍 꽃 차림으로 마을을 화사하게 꾸며 그야말로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게 했다.그 나무가 어느 날 무참하게 베어지고 토막토막 잘려 가마솥 아궁이 속으로 던져졌다잎과 열매가 떨어져 밟히는 것이 성가셔서 땔감 삼았다 했다그게 베야 할 까닭이던가그 비정에 나무는 속절없이 죽어갔지만그 나무를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속에는 오래도록 살아있을 것이다.인간이 아니면 나무가 그리 허망하게 죽을 일은 없다.

쓰러져 누운 나무를 보며 산을 오른다이제 이 나무는 어디로 가는 걸까쓰러진 나무가 흙이 되어 땅속으로 드는 데 150년 이상은 걸린다고 한다그 긴 세월을 하염없이 흘리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온갖 땅벌레며 뭇 짐승들의 거처요 안식처로 말 없는 세월을 다시 산다산은 이 나무로 하여 뭇 생명들의 부요한 터전이 된다그 유구한 세월과 더불어 흙에 누운 제 몸이 흙을 닮았다 싶으면 흙 속으로 든다그리고 봄을 기약한다.

싱싱한 푸름으로 하늘 향해 가지들을 쑥쑥 뻗고 있는 저 나무들은 어디서 난 것인가무엇으로 꽃과 열매를 맺고 마침내는 어디로 가는가.저 서있는 나무가 바로 이 누워있는 나무이고,이 누워있는 나무가 저 서있는 나무가 아니던가어느 것을 산 나무라 하고 어떤 것을 죽은 나무라 할까이들 나무에 어찌 삶과 죽음의 길이 다르다 할 수 있는가.

어쩌면 나무는 삶과 죽음을 초탈한 성자요생사를 하나로 섭렵한 현자요불사신이 있다면 바로 이 나무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이 경건한 초월자의 모습 앞에 어찌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있는가.

오늘도 나는 나무들에게 조용히 경배를 올리며 산을 오른다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을 한생을 그리며 산을 내린다해거름 산 숲 사이로 비끼는 노을빛이 곱다.(20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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