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칼럼

[신문 칼럼] 다시 울릉도로

이청산 2007. 2. 23. 04:42
 

대일산필(이일배)
다시 울릉도로

S형, 엊그제 신문에 난 인사 발령을 보셨겠지요? 저는 그리움 속에 품고만 있어야 할 줄 알았던 울릉도로 갑니다. 울릉도와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신 분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지금부터 오륙 전, 형과 함께 무던히도 걷고 걷던 섬 길이 아니었습니까? 절묘한 바다 풍경에 사뭇 감동하며 선창 가 고동소리를 따라 걷던 해안은 물론이고, 험산 준로를 마다 않고 바위를 타고 준령을 넘으며 섬의 길이란 길은 안 걸어 본 곳이 없었지요. 그것은 신비의 섬 울릉도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기도 했고, 망망대해 속의 절해고도를 사는 고독의 몸짓이기도 했습니다. 고독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인 줄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한없이 푸른 바다, 그 바다가 빚어내는 절경,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 섬에만 사는 나무와 풀들이 그려내는 서럽도록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걷는 고독이란 그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것입니까? 그 때 걸으면서 보고 듣던 이름들, 모시개, 와록사, 새각단, 안평전, 중평전, 가물개, 통구미, 황토구미, 거문작지, 살강터. 지통골. 천년포, 나리, 천부, 대바우, 지계골, 정들포, 와달리, 내수전..., 얼마나 살가운 이름들입니까? 생각할수록 아릿한 그리움이 잠겨오는 말들입니다.
이제 저는 그 그리움과 추억을 찾으러 울릉도로 떠납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위해 가는 것은 아닙니다. 문명의 때가 별로 묻지 않은 섬사람들의 맑고 고운 마음, 섬을 단박에 삼켜버릴 듯한 격랑과 폭풍우에도 끄떡 않던 섬사람들의 굳센 의지가 저를 감동시켰던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바다를 천명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굳센 마음씨입니다. 그 바다는 섬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나라 사랑의 보루입니다. 우리의 땅 독도, 우리의 바다 동해를 지키기 위한 최전선을 사는 섬사람들은 삶의 터인 어장이며 나라의 바다인 영해를 사수하기 위해 하루도 영일 없이 노심초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대통령이 일본 총리에게 동해를 ‘평화의 바다’라 부르자고 했다지요? 누구를 위한 ‘평화’란 말입니까? 섬사람들은 지금 속을 태우고 있다 합니다. ‘동해’란 한낱 방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그 속에는 우리의 역사가 있고 우리의 국경이 있습니다.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는 것은 역사를 부정하고 국경을 허물어뜨리는 일은 아닐까요? 몰아닥치는 바다 안팎의 파도와 싸우기를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섬사람들인데, 그 섬 살이가 또 얼마나 팍팍하게 느껴지겠습니까? 안타까울 뿐입니다. 울릉도가 번성하게 될 때, 우리의 나라도 중흥될 것임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섬의 신비로운 아름다움 속을 다시 유영하기 위하여, 섬사람들의 아름답고 굳센 의지와 다시 만나기 위하여 울릉도로 떠납니다. 형과 함께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으며 섬사람들과 애환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피천득 선생은 추억 속의 아사코를 세 번째 만나고서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 후회했지만, 저는 지금 섬의 모습이 형과 함께 했던 지난날의 모습이 아니라 할지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섬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으며, 새로운 고독 속을 살겠습니다. 다음 소식은 울릉도에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건승하시기 빕니다. (수필가, 마성중 교장)


등록일 : 2007-02-22  17: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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