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일기

감동과 회한 -마성을 떠나며

이청산 2007. 2. 21. 10:35

감동과 회한
-마성을 떠나며



 울릉도로 발령이 났다. 7년 전 이맘때도 울릉도로 발령이 났었다. 그 때 울릉도로 가면서 산다는 것이 바로 '바다 건너기'라고 생각했다. 파도를 헤치면서 바다 너머에 있는 섬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 섬에 닿았다. 그리고 섬을 즐거움으로 살았다. 한해 반만에 섬을 떠나와야 했지만, 하루도 그곳을 잊어본 적이 없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다. 잠시도 생각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지만, 울릉도로 장식되어 있는 내 홈페이지(http://www.libessay.com) 출입문이 나를 울릉도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이제 다시 그야말로 그리운 친정으로 가는 기분이다. 울릉도가 친정이면 마성은 시집인가? 그랬다. 시집이었다. 첩첩 산중 한촌 벽지의 낯설고 물 선 곳을 찾아 자리를 잡고 살아온 시집이었다. 그 시집살이는 나에게 적잖은 감동을 주기도 했고, 조그만 회한을 남기기도 했다.

 

아이들이 착했다. 티 없이 맑으면서도 발랄했다. 언제 만나도 꾸벅 인사를 잘 하는 아이들, 가정 형편으로 보면 말썽을 부릴 수 있을 법한 아이들도 누구 하나 속 썩히는 일이 없었다. 축제를 하면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이 나를 감동시켰다.  교육부가 아이들을 Edu Expo 2005에 초청해 준 일이며, 과학교육 우수교, 생활지도 최우수교 표창을 받은 일 들은 착한 아이들이 만들어낸 감동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인정 많은 주위 사람들이 있어 나의 마성 살이는 행복했었다. 가끔씩 꽃을 싣고 와 교정을 꽃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운영위원장, 아이들 나들이 때마다 푸짐한 간식 거리를 잔뜩 가져와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던 학부모회원들, 낡은 교문을 새롭게 다듬어 후배들을 격려해주던 동창회장, 적지 않은 돈을 장학금으로 선뜻 내놓아 모교와 향토 사랑을 실천한 독지가와 동창회원들-. 아무리 가진 것이 많다 하여도 이웃을 향해 마음이 열려 있지 않으면 베풀 수가 없는 일이거늘, 내가 만난 마성 사람들은 모두 넉넉히 열려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마성 사람들은 순후했다. 순박하고 후덕한 지세(地勢)를 닮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성의 사람들은 산과 함께 산다. 주위 어디를 둘러봐도 산이 보이지 않는 곳이란 없다. 산의 품속을 살고 있다. 그 품안에 오순도순 모여 사는 마을이 있고, 논과 밭이 있고, 냇물이 흐른다. 시커먼 석탄 가루가 온 마을을 덮어 천지가 새카맣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맑은 바람과 푸른 나무와 정결한 물이 있을 뿐이다. '연작살(燕雀殺)'이라는 마을이 있다. 제비와 참새를 죽였다는 뜻이다. 살벌한 이름이 아니다. 하도 못 살아 날아온 제비와 참새마저 굶겨 죽였다고 자괴(自愧)하는, 애처롭고도 따뜻한 사랑이 담긴 이름이다. 그토록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다.

많은 산들 중에 '주지봉'이라는 조그만 봉우리가 있다. 그 봉우리에 오르면 마성이 다 보인다. 마성의 순후가 다 보인다. 내가 마성을 사는 동안 주지봉은 나의 큰 위안이었다. 세상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봉우리에 오르면 마음이 마성의 바람처럼, 마성의 물처럼 맑고도 시원해진다. 그 봉우리에 삼백 번을 오른 날, 내 이름 새겨 '朱芝峰'이라는 표지석을 하나 세웠다. 마성의 순후를 오래도록 간직하고자 함이었다. 그 빗돌 세울 때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준 것은 영원히 잊지 못할 마성의 또 하나의 감동으로 남았다.

 

그 감동 옆에는 작은 회한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성을 살기 시작한 날부터 '사랑'으로 살 것이라며 마음을 여몄다. 더불어 살아야 할 모든 구성원들을 사랑으로 아울러 따뜻하게 살리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사랑'을 생각했지만, 나는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다. 사랑했지만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랑의 기술'을 몰랐던 것 같다. 사랑이 사랑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기술이 나에게는 없었던 것 같다. 나의 사랑은 다른 이에게로 가서 사랑이 되지 못했고, 다른 이의 사랑이 나에게로 와서 또한 사랑이 되기 어려웠다. 그 사랑이 호오와 애증을 가르면서 변색이 되어 갈 때,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탄식하기도 하고, 아직도 수련되지 못한 내 삶이 돌아 보이기도 했다. 안타깝고도 아쉬운 일이었다. 그 부재한 '사랑의 기술'이 이 한촌(閑村) 마성을 한촌(寒村)으로 만들기도 했다. 나의 모자람일 뿐, 마성의 탓은 아니었지만-.

 

마성을 떠난다. 따뜻한 기억으로 남은 마성의 '감동'과 가슴 아릿한 '회한'을 함께 안고 떠난다. 마성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감동할 수 있는 마음을 잃지 말고 살라는 메시지를 주기도 했고, 더는 회한의 삶을 살지 말라는 숙제를 주기도 했다.

주지봉 오르는 길의 가파른 산길, 정상이 보일 무렵의 '173계단'을 다시 생각한다. 백여 층이 넘는 계단이며 긴 가풀막을 거쳐 올라오느라 몸은 땀에 젖고, 숨은 가쁘고, 다리도 팍팍해져 있는데, 다시 백 일흔 세 개의 가파른 층계가 앞을 막아서는 것이다. 올라오느라 들인 공이 아까워서라도 발길을 돌려내려 갈 수는 없다. 호흡을 다시 가다듬는다. 잠시 서서 다리의 근육을 고른다. 그리고 힘을 모아 하나하나 계단을 밟으며 정상으로 향한다. 드디어 그 계단을 다 오른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맞기 전에 숨결을 다시 골라 가라앉은 마음으로 정상을 밟으라고, 펼쳐지는 마성의 평화를 평화롭게 맞이하라고 몇 개의 계단이 더 나타난다.

 

이제 나는 '173계단'의 등정을 끝내고 숨결을 고른다. 그리고 울릉도로 가는 배를 탈 것이다. 그 계단을 오르며 얻었던 근육들은 나의 '바다 건너기'에 커다란 힘으로 살아날 것이다. 그 힘은 내 '감동'의 감성을 더욱 새롭게 할 것이고, 내 '회한'을 다시 따뜻한 사랑으로 바꿀 에너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내 삶의 봉우리를 향한 튼실한 에스컬레이터가 될 것이다.

고마운 마성 사람들이여!

아름다운 마성이여!

안녕!

다시 보자, 주지봉이여! 그 빗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