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45년만의 외출

이청산 2006. 8. 21. 15:41

45년만의 외출


젊은 날의 사랑도 아름답지만
황혼까지 아름다운 사랑이라면/ 얼마나 멋이 있습니까.//
아침에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의 빛깔도/ 소리치고 싶도록 멋이 있지만
저녁에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지는 태양의 빛깔도/ 가슴에 품고만 싶습니다.//
인생의 황혼도 더 붉게,/ 붉게 타올라야 합니다.
                                        -용혜원 : '황혼까지 아름다운 사랑' 중에서

 

"……알아보기나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아내가 45년 만에 외출을 했다. 아내는 주저했다. 45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의 간격에 들어 있을 커다란 변화에 대한 부담감도 없지 않았지만, 외출에 익숙지 않게 살아왔던 지난 생애가 아내의 마음을 머뭇거리게 했다.
초등학교 동기 동창들의 모임을 상주 어디에서 개최하니 참석하기 바란다는 편지를 받은 것은 십여 일 전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받은 동창회 초대장이었다. 그동안 동창들이 아내를 몰랐다기보다는 아내가 동창회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동창회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모임에도 아내는 관심을 눌렀다. 집안 살림살이를 꾸리고, 가족들 바라지하기도 바쁜데, 그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 아내의 느낌이요, 생각이었다. 그래서 아내에게는 자신만을 위한 '모임'이라는 것이 없다. 그 흔한 계모임조차도 하나 없다. 부부 동반으로 참석하는 모임이 두어 곳 있지만, 그것도 남편의 체면을 봐서 참석할 뿐이다. 살림을 살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런 일들에 시간과 힘을 들이는 것이 자기에게는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아내는 결혼 이후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을 늘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 세월 동안에 아이들은 모두 장성하여 저마다의 가정을 이루어 다들 품을 떠났다. 이제 한 시름 놓을 만도 하건만, 아내의 삶은 별로 펴지지를 못했다. 늘 객지를 떠돌아야 하는 남편의 바라지를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절해고도 울릉도를 가면 그 섬까지 따라가서 살아야 했고, 심심산골 벽지로 가면 그 산골에서 살아야했다. 그러한 처지에 자기 일신을 위한 무슨 '모임' 같은 것이란, 염두에도 둘 수 없는 '사치'라는 생각이 줄곧 아내의 마음 나름 속에 자리잡아 온 것이다.
어느 날, 동기 한 사람이 어디어디에 살고 있다는 것을 어찌어찌하여 알아낸 초등학교 동기동창회에서 한 해에 한 번 개최하는 모임을 아내에게 알려왔다. 잠시나마 그 옛날 코흘리개 철부지 시절로 돌아가서 옛정을 돌이키며 삶의 회포를 함께 나누어 보자고 했다. 꼭 참석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하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 편지글 뒤쪽에 용혜원의 '황혼까지 아름다운 사랑'을 적어보냈다.
참으로 무상하게 흘러버린 세월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45년, 그 코흘리개들이 청년, 장년 시절을 다 보내고, 노년의 시간 속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간에 무슨 흐름이 있으랴. 삶이 시간 속을 흘러왔을 뿐이다. 그 숱한 시간 속을 흘러온 삶의 모습들이 다들 어떻게 변해 있을까. 아내는 어슴푸레하게나마 그 옛날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리며, 달라져 있을 삶의 모습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망설였다. 아직도 자신만을 위한 모임에 참석하여 시간과 힘을 쓰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제 무엇이 거리낄 게 있느냐, 모든 걸 잊어버리고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하루 놀다가 오라'고 설득해도 아내는 쉽게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다. 산달이 다가오는 며느리 생각이며 자잘한 살림살이 걱정이 아내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동창회 날아 다가왔다. 등을 떠밀다시피 하여 집을 내보냈다. 아내의 기우(杞憂)만 아니면, 참석 못할 일이 조금도 없었다. 아내의 그 '기우'라는 것이 집안을 지켜온 버팀목 노릇을 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에까지 아내의 삶을 얽매게 한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해가 저물자 전화가 왔다.
"지금 한창 잘 놀고 있는데요, 하룻밤을 같이 자자는데, 어떻게 해요? 모일 때마다 그렇게 해 왔다네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자면 같이 자야지.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오라고!"
이튿날, 아내는 부석한 얼굴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별로 무겁지 않아 보였다. 밤새도록 수다를 떠느라고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단다. 산골의 조그만 학교를 졸업한 아내의 이십여 명쯤 되던 동기 중에 이미 고인이 된 사람도 있다고 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여자 다섯 명, 남자 여덟 명, 모두 열세 명이더란다. 하도 오랜만이라 처음엔 좀 서먹했으나 어린 시절의 추억담이며,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이에 꼭 그 옛날의 학창시절 같은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더라는 것이다. 남자 친구들 중에 현직에 있는 사람은 둘이고, 여자 친구들 중에 남편이 현직에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더란다. 그런 친구들을 보니 세월의 무상감이 실감나게 느껴지더라고 했다. 노래도 함께 부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 많이 나누었소?"
"……당신 체면 한번 세워주었지."
"어떻게?"
"모처럼 동창회에 참석한다고 따로 용돈도 주고 옷도 한 벌 해주더라고 자랑했더니, 남들이 부러워 하대."
"그래, 난 늘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잖아? 허허"
"쳇, 어쩌다 한번 그리 해주어 놓고, 웬 생색은!"
아내가 눈을 흘겼다. 아내의 동창회 이야기는 며칠을 두고 계속되었다. 어렵잖게 잘 사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도 있더라는 이야기, 어느 친구의 아이들은 몇인데 시집 장가를 어떻게 보내어 어떻게 살고, 어느 친구는 나이가 그만한데도 아직 아이들 치송 하나 못했다는 이야기, 친구 몇은 건강이 여의치 않아 모임 자리에서도 계속 복약을 하고 있더라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통하여 아내는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는 듯했다. 그 이야기에 젖어 들며 행복감을 느낄지, 그러하지 아니할지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동창회 이야기를 하는 아내의 얼굴엔 연한 화기가 감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활력 같은 기운이 조금씩 피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 45년만의 외출이 가지고 온 작은 선물이라 할까. 아내가 동창회에 다녀 온 뒤의 며칠 동안 산골 벽지 살이의 고적감은 우리 곁을 잠시 떠나 있었다.
아내의 동창회가 해를 거르지 않고, 언제까지라도 그치지 않고 열리면 좋겠다. 아내는 내년, 내명년 아니 언제까지라도 동창회에 참석하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참 좋겠다. 더욱 붉은 인생의 황혼을 위하여-.♣(2006.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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