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일기

마성의 하오 6시

이청산 2006. 6. 29. 13:27

마성의 하오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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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일기·40



주지봉을 오른다. 큰비 아니고 큰 눈 아니면, 어지간한 비에도 어지간한 눈에도 나는 주지봉 오르기를 마다 않는다. 웬만한 비바람도 웬만한 눈보라도 나의 주지봉행을 가로막지 못한다. 숲을 헤치고 돌길을 지나고 바위를 타고 등걸나무 가로놓인 층계를 딛고 가풀막 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주지봉은 곧 내 삶의 길이기 때문이다.

유월 중순의 어느 날, 하오 6시. 나는 어김없이 주지봉 정상에 앉아 있다. 주지봉의 공든탐과 벤치해는 중천을 조금 더 넘어가 있을 뿐이다. 몸은 온통 땀으로 흠뻑 젖었다. 크고 작은 돌덩이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공든 탑'은 봉우리의 봉우리가 되어 늠름히 서 있다. 등걸나무 벤치 위로 탑 그늘이 내려앉아 있다. 바람결이 부드럽다. 등판을 적신 땀이 서서히 잦아든다. 탑 그늘에 앉아 마성을 본다. 하늘이 맑고 푸르다. 하얀 구름 조각들이 온갖 형상의 그림을 그리며 떠간다.

저 멀리 젊은 여인이 반듯이 누운 듯한 주흘산 능선이 이내 속에 은은하다. 건너편 오정산은 무성한 녹음과 함께 건장한 형세로 마을을 향해 뻗어 내리고 있다. 푸른 산줄기 아래 아늑히 자리 잡은 동리들, 정겹게 흘러내린 등성이 자락 끝에 작게는 두어 집 혹은 수 십여 채의 인가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겯고 있다. 그 집들 사이로 살가운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골목길, 길은 산비탈로 언덕 너머로 이어지기도 한다. 동네 한가운데 녹음 무성한 숲이 보이고, 그 숲 속의 널따란 평지. 학교 운동장이다. 젊은 여인의 살결 같은 빛을 내며 보자기처럼 펼쳐져 있다.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을 것이다. 언덕 위의 커다란 집들. 산업공단이다. 활발했던 광산업이 사양화되자 주민들의 삶을 보전하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들판을 가르며 내달리고 고속도로. 높다란 교각을 타고, 혹은 산을 꿰뚫으며 남북을 엇바꾸며 내닫고 있다. 장난감 같은 조그만 차들이 지나는가 하면 공룡같이 거대한 트레일러가 육중한 몸통을 끌고 달리기도 한다. 강이 흐른다. S라인을 그리며 춤추는 여가수의 허리처럼 구불거리며 흐르는 강물은 사방의 산 그림자를 담아 흐르고 있다. 모내기가 끝난 들판이 한결 푸르다. 자로 재어 그은 듯 반듯한 직방형의 논에 파란 모가 초원을 이루며 펼쳐져 있다.

마성은 평화롭고 아늑하다. 저 푸른 들판과 유유한 강물처럼 평화롭고. 지천명을 넘은 삶의 노련처럼 아늑하다. 풍경을 은은히 가리고 있는 이내에 안기고 싶다. 속마음을 감추고 있는 노부모의 깊은 사랑 같다. 사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봉들에 기대고 싶다. 멀리 나가 있는 자식을 그리며 잘 살기는 비는 묵묵한 아비 어미의 모습 같다. 여름날 하오 6시의 햇살은 아직도 밝은 빛과 짙은 열기가 되어 마성에 내려앉고 있다. 붉은 노을을 그리기엔 아직도 하늘 길이 많이 남았다.

그러나 마성은 지금 적요하다. 저리 높다란 산이 있고, 푸른 숲이 있고, 질펀한 들판이 있고, 산 골 골 자락 자락에 오순도순 집들이 모여 있건만, 동리엔 빈집들이 날로 늘어나고, 학교 운동장에 돋아난 잡초는 없어질 줄 모른다. 들판에는 사람 대신에 기계가 일하고 있고, 슬하를 객지로 모두 떠나보낸 늙은 아비가 그 기계를 부리고 있다. 갓난아이 울음소리를 들은 기억은 아득한데, 어느 집 노친네가 세상을 떠났다고 알리는 동네 이장의 목소리는 이따금씩 마을 스피커 속에서 울려나온다. 누구네 집 자녀가 도시의 어느 예식장에서 식을 올린다고 알려주기도 하지만, 그 신랑 신부가 마성에 신접살림을 차리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마성은 자꾸만 작아지고 있다.

 

주지봉을 오른다. 녹음 무성한 숲 속 오솔길을 걷기도 하고, 가풀막에 놓여 있는 계단을 밟으며 오르기도 하고, 크고 작은 바위를 타고 오르내리기도 한다. 가파른 길을 오르다가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다시 일어서 힘을 발목에 다잡아 모으면서 정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정상에 이를 무렵에는 주지봉에서는 제일 긴 173개의 계단이 있다. 숨이 가쁘고 허벅지가 팍팍하다. 무거워지는 다리를 끌며 긴 계단 길을 가쁜 숨 몰아쉬며 오른다. 드디어 길고도 가파른 계단 길을 힘들게 올라선다. 그러나 그것으로 길이 끝나지는 않는다. 몇 발짝 더 오른 곳에 서른여 개의 계단이 또 남아 있다. 이 계단만 오르면 정상이라는 기대감으로 가쁜 숨 싸안은 채 있는 힘을 다한다. 땀은 등줄기를 흠씬 적신다. 마침내 주지봉을 다 올랐다. 정상이다. 공들여 쌓은 돌탑이 있고, 나무등걸 벤치가 있는 주지봉 정상이다. 벤치에 앉아 가쁜 숨을 고른다. 하오 6시의 마성, 그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내 삶은 지금 몇 시인가. 중천을 넘어서긴 했을지라도,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마지막으로 오르는 삼십여 개의 주지봉 계단. 그것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 앞에 남겨진 마지막 과제일지도 모른다. 안락한 벤치가 있고 마성의 평화로운 풍경이 있는 주지봉처럼, 그 계단 다 오르면 내 안식과 평화의 자리가 있을 터이다. 그 자리를 위하여 몇 안 남은 계단 길을 힘 다해 올라야 하리라. 땀 흘려야 할 일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즐겁게 땀 흘릴 일이다. 좀더 관용하고 좀더 사랑하기를 애쓰며 땀을 그을 일이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의 끄트머리에서 펼쳐질 또 다른 삶의 날들-.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아이들의 사는 모습도 지켜봐야 하고, 손자 놈들의 재롱도 받아야 한다. 책도 읽어야 하고, 글도 써야 한다. 정원수도 손질해야 하고, 텃밭도 가꾸어야 한다. 산에도 올라야 하고, 명지 승경도 찾아야 한다. 먼 벗과 소식도 주고받아야 하고, 이웃과 술잔도 나누어야 한다. 사람 세상의 집만이 아니라 컴퓨터 속의 집도 멋지게 건사해 나가야 하고…….

새로운 삶을 펼쳐 갈 그 땅은 한 마지기의 넓이쯤은 되었으면 좋겠다. 책과 컴퓨터가 있는 서재,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랑채가 딸린 집에 유실수가 있는 마당, 그리고 푸성귀를 가꿀 텃밭이 있는 곳이면 좋겠다. 바라볼 하늘이 있고, 가꿀 땅이 있는 터전에서 새로운 삶의 하오를 걸어가고 가고 싶다. 적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지난 봄에 사택과 학교 주위에 감나무, 살구나무, 호두나무, 대추나무 묘목들을 심었다. 이제 싹을 틔어 잎을 피워내고 있다. 이 어린 나무들이 성목이 되어 과실을 주렁주렁 달려면 십 년이 걸릴지, 이십 년이 걸릴지 모르겠다. 그 나무에 열매가 달릴 무렵 나는 찾아 올 것이다. 그 때 이 나무들의 임자는 누가 되어 있어도 좋다. 그 열매가 열린 것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한 즐거움이 될 것 같다.♣(2006.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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