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일기

나무도 보고 별도 보고

이청산 2006. 6. 15. 11:55

나무도 보고 별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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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일기·39



정 선생과 두 김 선생이 마성을 다녀갔다. 부인들과 함께 내가 사는 마성을 찾아왔다. 지난 날 한 곳에서 근무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모두들 대구에서 이웃한 곳에 살았다. 가끔씩 만나 살아 온, 혹은 살아 갈 이야기나 같이 나누자며 넷이서 모이기 시작했다. 몇 번을 만나다가 부부 동반으로 모이자는 의논이 돌아 부인네들도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부인들이 참석하니 분위기가 한결 화기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작년 봄에 마성으로 떠나왔지만, 내가 대구로 가는 날에 맞추어 석 달마다 한 번씩은 어김없이 만났다. 지나간 시절의 추억을 끄집어내기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두고 목청을 돋구기도 하고, 자잘한 가정사를 서로 하소연도 하면서 삶의 희비를 함께 나누었다. 그러한 즐겁고도 유쾌한 시간들 속에서 우리들은 정에 취하고, 술에도 취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성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올랐다. 참 좋은 곳이지요. 한창 탄광이 돌아가던 시절엔 까만 탄가루가 풀풀 날려서 산도 물도 흙도 온통 까맣고, 사람들도 모두 검둥이가 되어 살았다지만, 지금이야 공기 좋고, 경치 좋고, 인심 좋은 곳이지요. 둘러보면 보이는 건 산이요 나무요, 들리는 건 새 소리 바람 소리,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산행을 많이 하는 김 선생이 거든다. 요즈음은 고속도로가 뚫려 교통도 좋고요, 마성 옆에 있는 문경새재, 주흘산 알지요? 경치가 그저 그만입니다. 물은 또 얼마나 맑은지, 감탄이 절로 나와요. 사람들은 그런 마성이며 문경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요, 여름이 오면 우리 집에서 한 번 모입시다.
 

여름이 싱그러운 얼굴을 살포시 내밀고 있는 유월의 첫 토요일 오후. 길을 잘 아는 김 선생 내외가 먼저 도착하고, 뒤이어 정 선생 내외와 또 다른 김 선생 내외가 한 차로 왔다. 커다란 나무와 새소리뿐이던 마당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정 선생과 김 선생 내외는 같이 오면서 안주거리며 과일을 장만해 오고, 교외에 사는 다른 김 선생은 자기네 텃밭에 가꾼 것이라며 갖가지 채소와 딸기를 들고 왔다. 마치 포트럭 파티(각자가 음식을 갖고 와서 하는 저녁 파티)를 하려는 것 같았다.

"이런 것은 뭐 하러 가지고 오세요? 여기 다 있잖아요."

아내는 마당의 텃밭을 가리켰다.

"우리 것도 한 번 맛보시라고요."

김 선생이 겸연쩍은 듯 말했다.
 

아내는 손님맞이 준비에 조금 바빴었다. 마당에 있는 상추며 쑥갓을 뜯어 씻어놓고, 돌나물 뜯어 겉절이하고, 비름 뜯어 삶아 무치고……. 거의 마당에 있는 것으로 찬거리를 장만하고, 부추를 넣고 다슬기 국을 끓여 놓았다. 장에 가서 사 온 다슬기를 삶아 밤늦도록 속을 발라냈다. 그리고 삼겹살 몇 근을 준비해 놓았다.
 

마당에 불을 피웠다. 장작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불이 타고 있을 동안 사람들은 내 사는 집이며 바로 앞에 있는 학교를 둘러보았다. 흙이 그대로 드러난 마당이며, 그 마당에 서 있는 고목, 그 고목이 늘어뜨리는 그늘은 보며, 시골 고향집에 와 있는 것 같다기도 하고, 무슨 별장에 와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돌로 둘레를 쳐서 조각조각 만들어놓은 텃밭이며, 그 밭에 송송 자라고 있는 채소를 보며, 아내의 골몰이 많았겠다며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아내는 '이 재미로 살지요.'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학교를 둘러보면서 이토록 큰 학교에 아이들 몇 되지 않음을 아쉬워도 하고, 학교 숲이며 주변 경치가 좋은 것을 감탄하기도 했다.
 

해가 서산을 넘고 있었다. 불꽃이 잦아들면서 잉걸불이 되었다. 사람들은 나무 아래 평상에 앉았다. 잉걸 위에 석쇠가 얹히고 고기가 익어 갔다. 소반 위에는 한가득 채소가 차려지고 익은 고기들은 상으로 올라왔다. 소주잔이 돌기 시작했다.

"야! 좋다,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땅 보고 새 소리 들으며 마시니 취하지도 않네. 우리가 이런 자리에서 술잔을 나눌 줄 누가 알았겠노?" 정 선생이 정회에 젖는다.

"이 선생은 좋겠다. 늘 이런 곳에 사니-."

"이 조그만 집에 살아도 나무도 보고 별도 볼 수 있으니 좋으네요."

해가 서산을 넘어가자 잉걸불이 발간 꽃불을 드러냈다. 그늘이 지워진 평상엔 어둠이 내려앉고 하늘엔 다문다문 별이 뜨고 있다. 석쇠에서는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기 기름 방울이 꽃불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
 

아이들 뒷바라지 이야기며, 아이들이 장가가고 시집가서 사는 이야기며, 손자 손녀들 재롱부리는 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비운다. 때로는 우국지사가 되어 나라 되어 가는 꼴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고, 지난 지방 선거 결과는 사필귀정이라는 담론을 나누기도 하는 사이에 어둠은 사위를 겹겹이 둘러싸 가고 있다.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내일은 문경새재하고 주흘산에 가봅시다. 어때요?"

"좋지요!"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설 때는 나뒹굴어진 술병의 수만큼이나 짙은 취기에 젖었다. 술에만 취한 것이 아니라, 산골짝 밤 풍경에도 취하고, 화음 맞추며 노래하는 풀벌레 소리에도 취했다. 사택의 방이 좁아 집에서 잠자리를 마련할 수 없었다. 인근의 여사로 안내하여 일행을 잠자리에 들게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땐 자정이 훌쩍 넘어 있었다.
 

이튿날 아침, 일행은 다시 마당의 평상 위에 앉았다. 다슬기 국으로 장을 풀었다.

문경새재 제일관문인 주흘관 앞에서함께 문경새재로 향했다. 새재의 제일관문인 주흘관을 들어서며 아름다운 경치를 찬탄했다. 산에 오를 수 없는 여인네들은 새재 길을 걷기로 하고, 남정네들은 주흘산 등정에 나섰다. 지난밤의 주독이 가시지 않아 힘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걸음을 추스르며 비탈을 걷고 바위를 올라서며 정상으로 향했다. 해발 1,075m의 정상에 오른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주흘산 능선을 멀리서 보면 젖가슴이 풍요로운 젊은 여인이 반듯하게 누워 있는 듯한 형상인데, 우리는 그 유두에 올라서서 저 아래 마성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쾌재를 불렀다. 정상 표지석을 끌어안고 감격적인 표정을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꽃밭서덜을 지나 제이관문인 조곡관에 닿은 것은 2시가 넘어서였는데, 조곡관에서 만나기로 했던 여인네들이 보이지 않는다. 기다리다가 지쳐서 길을 되짚어 다시 주흘관 쪽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인네들과 해후를 했을 때, 그리움에 지친 동백아가씨 마냥 두 볼이 빨갛게 물든 채 야박한 남정네를 향해 눈을 흘겼다. 교귀정이며 원터를 지나 맑은 물이 쉴새없이 흐르는 길섶을 따라 내려 올 때, 해는 서쪽의 조령산을 향해 점잖은 걸음을 치고 있었다.
 

어느 식당을 찾아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내 사는 곳으로 왔다.

"어제 김 선생이 가져온 나물도 많이 있고요, 저 상추도 좀 뜯어 가세요."

여인네들은 상추를 몇 움큼씩 뜯었다.

"자, 이젠 가을에 다시 만납시다."

"즐거웠습니다. 사모님 애 자셨습니다."

"너무 변변찮았습니다."

석별의 악수를 나누었다. 차는 엔진 소리만 남겨 놓고 사라져 갔다. 우리 내외는 차가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사람들을 보내 놓고는 바로 평상 위에서 놀던 모습이며 산 위에서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메일로 보내 주었더니, 집에 도착한 즉시 메일을 열어본 정 선생 부인이 답장을 보냈다.

 

"선생님, 사진 잘 보았습니다. 방금 집에 도착했답니다.

사모님께서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는 맛있는 고기랑 귀한 고디국, 오미자술, 웰빙 음식들을 잘 먹고

즐겁게 좋은 공기 마시고 왔습니다.

정 선생님 주위에 이 선생님이 계신다는 게 참 좋아요.

가끔씩 만나 쓴술 한 잔하시면서 인생도 나누고 하세요....

언제 기회 되면 모닥불 피우지는 못해도

우리 집에서도 웃음꽃을 피워봅시다.

건강하시고 좋은 나날 보내시길 빕니다."♣(200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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