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일기

녹음의 그늘

이청산 2006. 5. 25. 10:35

녹음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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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일기·37



경상도의 북단 마성의 봄은 허망했다. 언제 왔다가 어떻게 가버렸는지 기억조차 황황하다. 싹이 트려는 나뭇가지를 매몰스럽게 흔들어 대던 바람과 그 많은 산을 가려버린 채 하늘을 누렇게 물들이던 황사와 스산하게 떨어지며 흩날리던 꽃잎, 고인 빗물 위에 포말처럼 떠다니던 송홧가루, 그런 것들의 기억만 남겨 놓고 마성의 봄은 서서히 자취를 접어 가고 있다.

그토록 심란했던 마성의 봄이었지만, 그러나 계절의 질서는 흩트리지는 못했다. 처연한 바람과 추적이는 비가 땅위의 푸나무를 이겨 놓아도, 허공을 메운 황사며 잿빛 구름 조각들이 하늘을 얼룩지게 하여도, 달력 위로 지나가는 봄의 날들과 시간의 순서를 바꾸지 못했다. 그것들의 흐름을 따라 움이 트고 싹이 돋고 꽃이 피고 잎이 솟아났다. 그 시간들의 비호 속에 마성의 봄날은 생장의 질서를 진행해 갔다.

나뭇가지에 눈을 틔운 잎들은 어느새 녹음으로 변해 갔다. 사택 마당의 고목들에도 푸름이 짙어져 갔다. 봄을 맨 처음 알린 것은 산수유 노란 꽃이었다. 그리고 은행나무가 조금씩 눈을 뜨며 잎을 피워가더니 잇따라 물푸레나무며 느티나무, 호두나무며 밤나무가 잎을 피워냈다. 어린아이 처음 나는 이처럼 봉곳이 내민 움이 조금씩 커지더니 잎이 되어 피어나는 사이에 봄은 저만치로 물러났다. 마당에 선 모든 나무들이 잎을 달면서 신록의 계절이 성큼 다가섰다.

윤기 어린 신록이 녹음으로 변해 가면서 아내의 손길도 조금씩 바빠져 갔다. 마당의 텃밭을 다시 일구고, 채소의 씨를 뿌리고 장날엔 장에 가서 고추며 토마토 등의 모종을 사다 심었다. 씨를 뿌린 것이 엊그제인데 텃밭엔 제법 푸른 빛깔의 푸성귀가 자욱해져 갔다. 주로 상추다. 상추쌈의 싱그러운 맛이 좋기도 하지만, 밤에 모닥불을 피우고 고기 몇 점 구워 상추에 싸서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난 해 여름 마성을 찾아온 반가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던 모닥불 위의 고기 맛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 있다. 그 추억을 올해도 되살려 낼 것이라 생각하며 지난 봄부터 불잉걸을 만들 장작을 준비하기도 했다.

텃밭에 상추가 쑥쑥 돋아날 무렵 마당가에 서 있는 수목에도 잎이 무성해져 갔다. 잎들이 무성해질수록 그늘이 짙어진다. 그늘이 텃밭을 덮는다. 그 그늘은 아내와 나 사이에도 가끔씩 내려앉는다. 저렇게 그늘을 지우면 저것들은 무엇을 바라보며 클 수 있단 말인가. 그늘 속의 푸성귀는 잘 자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너무 연약해서 제 맛을 낼 수도 없다는 것이 아고목 아래 놓인 사택의 평상내의 걱정이다. 저것들 더 우거지기 전에 가지 좀 쳐내어야겠어요. 저 그늘 때문에 채소가 안되잖아요. 아내의 볼멘소리다. 무슨 소리, 무더운 여름날에 마당에 그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요. 그늘이 없으면 이 평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러면 당신은 이 상추 먹지 말아요. 씨만 뿌려 놓으면 그냥 크는 줄 알아요? 햇볕도 쬐고 하늘도 보아야 잘 크는 거예요. 그것 몇 이파리 좀 못 먹으면 어때! 그것 먹겠다고 어찌 시원한 그늘을 버리겠소? 상추 좋아하는 사람은 누군데, 그런 태평스런 소리만 하실까?

지난해 여름 어느 날엔 내가 출근한 사이에 아내가 커다란 나뭇가지 하나를 무참하게 잘라버려 크게 다투기도 했었다. 싱싱한 푸성귀를 위하여 그늘을 없애려는 아내와 즐거운 쉴 자리를 위하여 그늘을 지키려는 나는 그렇게 가끔씩 다투곤 한다. 녹음의 그늘이 아내와 나 사이에 또 하나의 그늘을 지우는 것이다. 그것은 더운 날에 땀을 씻어주는 시원한 그늘이 아니라, 아내와 나의 마음에 회색의 그림자로 새겨지는 그늘이다. 그늘의 두 얼굴이라 할까. 그러나 아내와 나 사이에 회색으로 그림자진 그 그늘은 우리를 불편하게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 그늘이 우리의 삶을 서로 기우고 도와 하나로 엮어나가게 하는 완충 역할도 하는 것 같다. 그 다툼의 그늘이 없이 아내와 내가 모두 푸성귀에만 마음을 모았다면 우리에게 안식의 그늘은 없을 것이요, 그 그늘만 좋아했다면 푸성귀의 싱그러운 맛을 얻지 못할 것이 아니겠는가.

아내와 나의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니 무던히도 다투었던 것 같다. 그것은 물론 생각의 차이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 생각의 차이라는 것을 굳이 구분 지어 보자면 아내는 현실주의자요, 나는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이라 할까.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아내의 '현실'이라는 것을 아내 쪽에서 보면 나름의 이상을 추구하는 행위라 볼 수 있고, 아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상'이란 것을 내 처지에서 보면 치열한 현실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텃밭의 싱싱한 푸성귀는 아내의 현실이자 가족의 건강한 식단을 위한 이상이요, 고목의 시원한 그늘은 나의 이상이자 우리의 즐거운 삶을 위한 절실한 현실인 것이다. 어찌하였거나 아내와 나는 그 이상과 현실을 놀음놀이 삼아 가끔씩 다툰다. 그 다툼이 있었기에 편하면 편한 대로, 조금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이상과 현실이 적당히 버무려진 삶을 이루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올 여름을 보내자면 아내와 나는 햇빛의 확보와 그늘의 수호를 위해서 몇 번쯤은 더 다투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두고 다투어 온 것인데 계절 하나 더 넘기지 못하랴. 우리는 여태껏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여름 무더운 날, 나무 아래 그늘 평상에 앉아 아내와 함께 찬밥에 상추쌈 그리고 시원한 막걸리 한 잔 곁들이며 매미소리 듣고 싶다. 그리고 그 밤엔 모닥불 피워 놓고 하늘에 총총한 별을 헤아려 볼까. 불판엔 무엇이 지글지글 굽히고 있어도 좋고-.

내일은 마당 가장자리에 서 있는 물푸레나무 두어 가지는 손을 좀 보고, 텃밭의 김을 좀 매어야겠다. 집을 나갔다가 오니, 아내는 어느새 그 나무 가지 하나 잘라 놓고 상추 잎을 뜯고 있다. ♣(2006.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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