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아름다운 예술 섬을 바라며

이청산 2022. 10. 11. 14:43

아름다운 예술 섬을 바라며

 

  『울릉문학』지가 15집을 내게 되었다니 감회가 각별하다. 연간지로 내는 것이니 그만한 햇수의 세월이 쌓였다는 것이다. 언제 세월이 그리 흘렀을까. 나는 지금도 울릉도가 그립다. ‘신비의 섬’ 그 신비가 그립다. 나의 그 그리움 속에는 소곳한 보람도 자리하고 있지만, 아릿한 기억의 희미한 그림자도 함께 어려 있다.

  두 번째로 울릉도 발령을 받았을 때는 주위 사람들 모두가 천만뜻밖이라 했다. 울릉도란 승진을 위해서 가거나 승진하여 초임 발령으로 가는 곳인데, 이미 승진하여 초임도 겪은 사람이 왜 울릉도로 가는지 모르겠다며, 의문과 걱정과 위로가 함께 섞인 말씀들을 전해왔다. 나만의 비밀스런 일을 그들이 알 리가 없다.

  그 몇 해 전에 울릉도로 발령받아 해포를 살다가 나왔었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기기묘묘한 풍광이며 섬사람들의 순박한 인심에 매료되었던 기억을 늘 간직하고 있었다. 육지로 나온 후에는 그 감동과 감회를 오롯이 담아 수필집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다시 한번 그 섬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안고 살았다.

  그런데, 문학인들을 비롯한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섬을 다녀오기만 하면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이루어 내는데, 섬사람들 가운데서는 예술 작품이며 예술가가 왜 나오지 않는 걸까 하는 상념이 들었다. 예술 작품을 빚어낼 정서의 샘이 없어서가 아니라 길어 올릴 두레박이 없어서일 거라는 데에 생각이 닿았다.

  대수롭잖은 안목일지라도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학을 통해, 모임이라도 만들어서 그걸 두레박 삼아 섬사람들의 예술 정서를 길어 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그 신비의 섬, 그 바다가 더욱 그리워졌다. 어서 달려가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차에 마침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자리가 비었다기에 얼른 지원했다. 다시 배를 타게 되었다. 마치 첫사랑을 다시 찾아가는 것 같아 바다의 파도보다 마음의 파도가 더 거세게 일었다. 막상 섬에 닿았을 때는 초행 때와는 감동의 결이 좀 다르긴 했지만, 섬은 역시 아름다웠다.

  먼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를 애써나가면서, 내가 해 보고 싶었던 문학회를 만드는 일에도 마음을 데워갔다.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을 알음알음으로 찾아도 보고 권유도 하여 마침내 십여 명의 회원과 더불어 마음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봄이 무르익어가던 오월에 섬 최초의 본격 예술 단체라는 자부심과 함께 창립총회를 열고,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작품을 나누어 읽으며 기량을 다져갔다. 섬 살이의 애환을 그린 내용이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첫사랑이란 추억 속에 있을 때가 더욱 아름다운 거라 했던가. 섬사람 중엔 내가 소망하는 것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없지 않아 때로는 마음을 가볍지 않게도 했지만, 내가 해나가는 일을 이해해 주고 격려해 주는 분들도 없지 않아 기운을 추슬러 갔다.

  특히 이상인 울릉문화원장님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문화원에서 회지 출판비를 부담하기로 했다. 단비 같은 성원이었다. 그때 문화원과의 인연으로 내가 섬을 떠난 후에도 손영규 원장님, 현재 최수영 원장님에 이르기까지 문화원과 울릉문학회는 한마음이 되어 울릉문화를 함께 일구어 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회가 창립된 지 한 해가 지날 무렵 드디어 회지 창간호를 내게 되었다. 녹음이 짙어갈 무렵 모든 회원을 비롯한 지역의 각계 인사들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때 나는 ‘개척민의 심정으로’라는 제목의 창간사를 썼었다. 지역의 유수한 분들이 『울릉문학』과 울릉문화의 앞날을 격려하고 축복해 주었다. 함께한 이들은 섬의 역사, 문화, 문학의 새로운 꽃을 피울 것이라는 기대와 긍지가 넘쳐났다.

  그렇게 문학회를 만들어 회지 창간호를 내어놓고 전근이 되어 육지로 떠나왔다. 『울릉문학』의 시간만큼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 속에서 나는 섬사람들에게 잊혔을지 몰라도, 회지는 해를 거르지 않고 매년 나오고 있고, 회원들도 활동을 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섬의 역사 한 부분을 개척했다는 자긍심이 남몰래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나는 생애의 황혼 녘을 살고 있다. 울릉도를 떠나와 두어 해를 현직에 더 머물다가 정년 퇴임을 하고, 세상의 번다를 다 잊어보리라 하고 산 좋고 물 정한 곳을 찾아 문경 어느 산골짝에 터를 잡아 조용히 살고 있다. 그렇게 산중 사람이 된 지도 어느덧 강산이 바뀌는 세월이 흘러갔다.

  삶의 연륜을 쌓아가다 보니 지난 세월이 돌아보일 때가 있다. 돌아보노라면 내 삶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최선의 일이라고 팔을 걷어붙였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실수요, 만용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아 스스로 민망해질 때가 있다.

  생애의 그런 애환과 고락 속에서도 다소곳이 핀 잉걸불처럼 따스하게 안겨 오는 기억 중의 하나가 「울릉문학회」를 만든 일이다. 울릉문화의 작은 싹이나마 틔우게 한 것 같아 소곳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근래에 들려 오는 소식에 의하면 울릉문학회를 비롯한 섬 안의 26개 예술 단체가 모여 「울릉군 문화예술단체 연합회」를 결성했다고 한다. 울릉문학회를 기폭제 삼아 울릉문화가 한층 빛을 더해가고 있는 것 같아 미소가 홍소로 번져 나기도 한다.

  거기에 보태어 보듬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울릉문학회에서도 더 넓은 문단에 등장하는 문학인들이 많이 나와 「한국문인협회 울릉지부」 곧 「울릉문인협회」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지금 같은 열정들이면 머잖아 그런 때가 오리라 믿는다. 그리하여 울릉도가 섬의 풍광만 아름다울 뿐 아니라 아름다운 예술로도 가득한 섬이 되기를 빌어 본다.

  그리운 섬 울릉도, 울릉문학회 그리고 울릉 문학인들이시여, 더욱 아름다운 예술 섬의 찬연한 등대가 되기를-!♣(202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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