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풀숲 길이 좋다

이청산 2022. 10. 29. 19:05

풀숲 길이 좋다

 

  오늘도 아침 산책길을 걷는다. 두렁길 지나 마을 숲에 이르러 깊은숨 들이쉬며 체조하고 강둑길에 오른다. 강둑길을 걸으며 물도 보고 풀꽃도 보다가 그 길이 끝나면 산을 파헤쳐 길을 낸 곳을 오르고 내려 골짜기로 든다. 나의 산책은 변함없지만, 걷는 길이 많이 변했다.

  지난날의 강둑길이 그립다. 산이 막아서는 길 끝까지가 풀숲 길이었다. 그 길을 걷다 보면 풀잎에 맺힌 이슬에 바짓가랑이가 젖기도 하고, 도깨비바늘을 비롯한 풀씨들이 달라붙고, 칡이며 환삼덩굴이 발목을 걸어 성가시게도 했다. 그래도 그 길이 좋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걸 귀찮게 여겨 관에다 진정했다. 어느 날 갖가지 장비를 동원하여 풀숲을 걷어내고 회반죽을 들이부었다. 바짓가랑이도 안 적시고, 덩굴이 발목을 잡지도 않는 길이 되었다. 그 길로 차며 경운기가 다녔다. 심장 한쪽을 가르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굴착기가 올라가 강둑 끝자락 산을 허물었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졌다. 비탈 한 자락을 평지로 만들기도 하고, 비탈을 가로질러 골짜기로 드는 길을 내기도 했다. 산주는 산림을 ‘경영’할 것이라 했다. 산림 경영은 베고 파헤치기부터 해야 하는 건가.

  골짜기 길은 우거진 풀숲 사이로 사람 하나 다닐 만한 오솔길이 나 있었다. 그 골짜기 깊숙한 곳에 누가 벌통 여러 개를 갖다 놓고 조그만 집도 몇 채 지었다. 집은 개집이었다. 그 후로 아침마다 트럭이 지나다니더니 두 줄기 바퀴 길이 났다.

  그래도 풀은 산다. 틈만 있으면 나고 산다. 콘크리트 틈서리에서도 벽돌 사이에서도 풀이 사는 걸 보지 않는가. 농부가 두렁풀을 아무리 치고 베어도 풀은 지치지 않고 산다. 어느 시인이 “퍼렇게 벼린 낫이여, 풀은 이기지 못하느니 / 낫은 매번 이기고, 이겨서 자꾸 지고 / 언제나 풀은 지면서 이기기 때문이다.”(민병도, 「낫은 풀을 이지 못한다」)라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 풀들이 꽃을 피운다.

  온 강둑길이 회반죽으로 덮여도 풀은 길섶을 뚫어냈다. 길 가장자리에 철이면 철마다 다른 풀들이 우거지고, 그 풀들은 색색의 철꽃을 피워낸다. 봄까치꽃, 현호색, 냉이꽃, 애기똥풀, 메꽃이며 나팔꽃, 개망초, 지칭개, 구기자, 무릇, 박주가리, 갈퀴나물, 나도송이, 둥근잎유홍초, 쑥부쟁이, 구절초……. 철을 연달아 피고 지기를 그치지 않는다.

  산주가 ‘경영’을 쉬어가려는지, 뜻을 접었는지 한 해를 돌보지 않는 사이에 나무를 쓰러트리고 비탈을 가로질러 낸 길은 어느새 무성한 풀숲 길이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흙길 돌길에 온갖 풀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쑥쑥 돋아났다. 그 풀들이 취나물, 물레나물, 등골나물, 짚신나물……, 갖은 나물 꽃들을 피워내기도 했다.

  그 경영의 길을 오르고 내려 골짜기로 든다. 바퀴 길이 두 줄기로 철길처럼 나란히 굽이를 돈다. 바퀴 자리만 비워주고는 물봉선이며 여뀌, 사광이아재비, 고마리 들이 피울 꽃들을 피워낸다. 복판에는 차가 지나도 다치지 않을 질경이가 나지막이 앉아 잎을 흔들고 있다.

  하늘 맑은 아침, 윤슬이 반짝이는 강물과 함께 강둑길을 걷는다. 길가에 늘어선 벚나무를 마구 기어오르던 칡넝쿨도 기가 꺾인 듯 잎을 늘어뜨리고, 샛노란 얼굴로 아침 길을 열어주던 달맞이꽃도 지고, 조금만 나팔을 귀엽게 벌린 다홍빛 둥근잎유홍초가 아침 인사를 한다.

  쑥대 사이로 비수리가 수줍은 듯 조그만 꽃들을 벌이고, 잔잔하게 핀 노란 산국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하얀 미국쑥부쟁이가 저도 있다며 꽃잎을 흔든다. 비록 길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을지라도 쉼 없이 피고 진다. 그 풀이 반겨주는 아침 길이 고즈넉하다.

  강 건너 길 벚나무 단풍이 얼굴을 비추고 있는 강물을 보며 산 부수어 길을 낸 ‘경영’ 길을 오른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제집인 듯 자리 잡고 있는 풀꽃들이 어여쁘다. 철 늦은 개망초며 개쑥부쟁이가 아침 빛을 받아 반짝인다. 제멋대로 나 있는 진득찰이며 도깨비바늘들이 저들에도 꽃이 있다는 듯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골짜기 길로 내린다. 트럭이 아침 일을 위해 골짜기로 든다. 차 아래 깔리는 질경이는 잠시 몸을 수그리는 듯하지만 지나자 다시 활개를 편다. 길섶에는 진분홍빛 물봉선 축제판이라도 벌이는 듯 흐드러지게 피었다. 줄기에 가시는 달았지만, 사광이아재비 작은 꽃이 연지 찍은 듯 볼이 붉다.

  골짜기를 돌아 나오며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어느 자리 어떤 자리를 마다치 않고 저리 꽃을 피워내는 것들은 무슨 심사를 두고 있을까. 어떤 세상이든 가리지 않고, 어떤 자리든 탓하지 않고 그저 태어나 제 피울 꽃을 열심히 피우다가 제철이 지나가면 아쉬움 두지 않고 떠나는 저 꽃들은 어떤 속내를 간직하고 있을까.

  이슬 머금은 아침 풀이 바짓가랑이를 적실지라도, 풀씨가 바늘이 되어 찔러올지라도, 덩굴풀이 발목을 감아 젖힐지라도, 무얼 탓하지도 바라지도 않고 세상을 꽃 피우다 가는 저 꽃 세상이 좋다. 그 풀숲 길이 좋다. ♣(202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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