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시를 꿈꾸는 사람들

이청산 2022. 11. 7. 21:09

시를 꿈꾸는 사람들

-10회 구미낭송가협회 시낭송콘서트를 마치고

 

 

  열 번째의 시 낭송 콘서트가 열렸다. 이번 콘서트의 주제는 ‘가을, 시를 꿈꾸다.’로 정하여 열 번째를 기리기로 했단다. ‘열 번째’가 주는 특별한 감회 때문인지 출연자들의 감회와 각오가 유달라 보였다. 무대를 오르는 걸음걸음마다 설렘과 열정이 배어나는 것 같았다.

  혼자서 열연하기보다는 윤송, 합송, 시 퍼포먼스, 시극 등 여럿이서 마음 맞추어서 하는 낭송법을 택했다. 서로 어울려 한마음으로 빚어내는 시의 아름다움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세상 사는 일이란 함께 마음 맞추는 일이 아니던가. 

  짬만 나면 모이고, 모일 곳만 보이면 만났다. 이른 아침에도 모이고, 해 맑은 낮에도 만나고, 해거름 빛 속에서도 마음을 모았다. 어느 강의실에서도 목소리를 가다듬고, 공원 야외 공연장에서도 운율을 고르고, 어디 찻집에서도 시의 아름다움을 새겨나갔다.

  콘서트를 멋지게 치러내기 위해서이지만, 그렇게 모여 마음을 나누는 것만 해도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다간 어느 소설 속의 조율사처럼 조율에만 빠지는 게 아닐까도 싶었지만, 우리에게는 기다리는 관객과 무대가 있지 않으냐며 환하게들 웃곤 했다. 

드디어 그날, 그 시간이 왔다. 좋은 시를 찾아 아름다운 낭송을 해보자며 뜻을 모은 지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세월을 작년에 넘겼다. 그 이력을 무대에 쏟아놓을 시간이 온 것이다. 관객 앞에 서기 전에 일찌감치 모여 무대 리허설을 하면서 결의를 다졌다.

  거문고와 가야금의 고아한 이중주 선율로 무대가 열리면서 구은주 시인의 ‘시를 꿈꾸다’를 비롯한 여러 시인의 시를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낭송하는 윤송 순서가 펼쳐진다. 이게 웬 호사다마인가. 두 사람의 마이크가 작동되지 않는다. 출연자는 흔들림 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객석은 정적에 빠졌다. 끝날 때의 박수 소리는 정적의 깊이 만큼이나 세찼다.

  출연할 사람들은 모두 손에 땀을 쥐었다. 음향 스텝들이 더욱 분주하게 뛰는 가운데 동심의 세계를 꽃과 별에 부쳐 그려내는 동시 합송이 반짝이는 별 소품과 함께 이어져 나갔다. 할머니와 손녀, 남편과 아내 출연자로 이루어진 가족 낭송팀이 관객들의 눈과 귀를 몰아간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 테너 성악가가 나와 가곡 몇 곡을 부르면서 관객도 출연자도 숨결을 다듬는다. 이어 낭송과 연기를 함께 듣고 볼 수 있는 ‘시 퍼포먼스’를 펼쳐 낸다. 열 번째의 콘서트를 회고하는 배경 화면과 소품으로 시와 동작을 역동적 열정적으로 엮어내면서 콘서트는 절정을 치닫는다. 그 퍼포먼스에 출연했던 회장이 열 번째의 따뜻한 위안과 행복을 드리고 싶다며 관객 향해 인사했다. 갈채가 공연장에 메운다.

절정이 한고비를 넘어설 때 한 수필가가 낭송가와 짝지어 삶의 의미를 나무에 비겨 새긴 자작 수필을 낭독하며 콘서트의 의의를 돋우어나갔다. 시 낭송이 좋아 ‘시 울림이 있는 학교’를 교육 시책으로 삼고 있는 교육감님이 출연하여 정감 있는 낭송으로 무대를 더욱 뜻깊게 했다.

마지막 순서로 우리 문학사에서 서로 주고받으면서 뜻과 마음을 나눈 화답 시를 골라 극으로 엮어 나간 시극이 무대를 달게 했다. 그 시들은 출연자들 서로 나누는 마음의 화답이기도 했다. 시의詩意에 맞춘 출연자 의상이 관객들의 눈을 한곳으로 모았다.

숨 가쁘게 펼쳐온 순서들이 끝났다. 객석은 박수와 함성의 열기로 끓었다. 첫 순서의 마이크 고장이 전화위복이 된 걸까, 스텝들도 출연자도 긴장감을 드높여 끝까지 매끄럽고도 아름다운 시의 향연을 이어갔다. 그간에 쌓아온 마음과 열정을 남김없이 쏟아 냈다. 여럿이서 팀을 이루어 낭송하는 데도 누구 하나 어긋나거나 막힘이 없이 미려한 화음을 이루었다. 하나같이 한결같이 ‘시를 꿈꾸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피날레를 장식하는 싱 얼롱 순서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로 객석과 무대가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 우리의 오늘 시월은 참 멋졌다는 소곳한 뿌듯함과 함께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가 모두 너~’, ‘너’가 바로 시라는 걸 환희로운 목소리에 담아 나갔다. 이제 헤어질 시간, 모든 출연자가 무대에 올라 ‘낭송협회의 노래’를 합창하며 관객 향해 손을 흔든다.

“…… 낭랑한 목소리에 아늑한 꿈 싣고 / 시 속에 피어오르는 오롯한 사랑 향해 / 따뜻한 삶을 위해 정겨운 세상을 위해 / 좋은 시 찾아가는 구미낭송가협회~”

갈채를 쏟아 내던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무대에 기념 촬영하는 출연자만 남았을 뿐 객석은 텅 비었다. 빈 객석을 바라보며 허전함을 느끼던 여느 해와는 달리 객석이 비어 보이지 않았다. 무대에 쏟아 낸 꿈이 객석에서 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무대에도 객석에도 시가 꿈이 되어 피어나고, 그 꿈이 출연자들을 더 깊은 꿈에 젖게 했다. 열 번째를 넘어 스무 번째가 되고, 서른 번째가 될 때는 어떤 모습이 되어 무대에 오를까, 환희로운 상상과 함께 비상하는 걸음으로 뒤풀이 길에 나선다.

시를 꿈꾸는 사람들의 열 번째 오늘-. ♣(202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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