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나무의 개성

이청산 2022. 7. 13. 15:26

나무의 개성

이  일  배

 

  오늘도 산을 오른다. 밤나무 노거수가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어귀를 올라 무성한 국수나무 수풀을 지나면 굴피나무가 어지럽게 서 있고 갈참나무, 떡갈나무가 올망졸망 잎을 벌린다. 진달래 나무며 초피나무가 어우러진 가풀막을 올라서면 소나무 벚나무 숲이 우거진다.

  서로 겨루기라도 하듯 하늘 향해 한껏 뻗어 올라가는 소나무와 벚나무 사이로 조그만 상수리나무 졸참나무가 군데군데 숲을 이루고, 분꽃나무가 호분 향으로 산을 물들이던 꽃 시절을 그리며 서로 얽혀 서 있다.

  저 조그만 꽃들은 무엇이 수줍어 잎 아래에 숨듯이 달렸는가. 그 꽃 모양새가 박쥐를 닮았대서 붙은 이름 박쥐나무다. 꺾어서 코를 대보면 생강 냄새가 나는 생강나무, 조그만 잎과 열매를 달고 하늘거리는 감태나무가 어울려 숲을 이룬다.

  저 나무들 종류를 일일이 세어보기로 하면 밤하늘 별의 수에도 못지않을 것 같다. 저 갖가지 나무들의 생김새를 다시 본다. 크기며, 굵기며, 잎과 둥치의 빛깔이며, 가지를 벌리고 있는 모양새들이며, 살아가는 모습이며…….

  어느 것은 하늘에 닿을 듯이 우뚝 솟아 있고, 어느 것은 하늘을 바라면서도 줄곧 땅을 기는 것도 있다. 아름으로도 다 안을 수 없는가 하면, 바람 조금만 불어도 곧장 부러지리만치 가냘픈 것도 있다. 저 빛깔이며 모양은 그야말로 제빛 제 본새대로다.

  무엇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저마다의 색과 태로 다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모두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 개성이야 어디 나무뿐이랴. 세상 모든 것에는 닮은 것은 있을지 몰라도 같은 것이란 없다. 모두 다 다른 품성을 지니고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크고 작고, 여위고 살진 외모가 각색인 것은 물론이지만, 그 외모의 생김새며 용모도 다 다르다. 더 다른 것은 성품과 생각이다. 사람마다 다른 성품이 다른 생각을 빚어내겠지만, 사람은 지닌 생각에서 확연한 개성이 드러난다.

  누구라도 저만의 독특한 품성을 지녀야 하겠지만, 그것으로 이루어지는 개성 때문에 사람이 이루고 사는 사회, 그 삶을 어렵게 하는 일이 또 얼마나 하고한가. 서로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갈등하고, 서로 사랑하려 하기보다는 시기하려 하고…….

  남을 앞세우기보다는 자기가 앞서 이겨야 한다. 앞서가는 사람을 끌어내려 자기가 그 자리를 올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 치열한 쟁투도 벌인다. ‘개성’이 자기만의 독특한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그것은 참혹한 피비린내를 풍기기도 한다.

  나무는 언제나 제 나름의 모습으로 제 자리를 늠름히 지키고 있다. 나무는 다 다른 빛깔과 모양을 하고 있지만, 종과 유를 가리지 않고 한데 섞이어 산다. 한 태에서 나온 피붙이처럼 서로 살을 맞대고 살기도 한다.

  큰 나무라 해서 작은 것을 억누르지도 않고, 넓은 잎이라 해서 좁다란 잎을 우습게 여기지도 않고, 어느 것이 어느 것을 타고 기어올라도 그저 묵묵히 안아줄 뿐이다. 꽃의 빛깔이 붉든 희든 한데 어울리며 제 꽃을 수더분히 피울 뿐이다.

  나무는 그렇게 서로 섞여 살지만, 염치를 모르지 않는다. 나무가 향하는 곳은 오직 하늘이다. 하늘을 바라며 솟아오르다가 그 가지의 끝이 이웃 나무에 닿아 하늘의 빛을 가릴 만하다 싶으면 뻗기를 멈추어 빛의 길을 만든다. 그걸 수관기피樹冠忌避라 한다.

  나무는 저마다의 움을 틔우고 잎과 꽃을 피우지만, 가리지 않고 서로 어울리면서 무성하고 아늑한 녹음을 이루어 저를 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기도 하고 뭇 생명체들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한다. 나무는 한결같이 그렇게 살고 있다.

  나무의 이러한 속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늘과 땅이 오래 갈 수 있는 까닭은 자기만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老子』 第7章”라는 말이 있다. 나무도 하늘과 땅을 살면서 그 속성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무는 어떤 빛깔과 모습을 지녔든 결코 자기를 남 앞서 내세우려 하거나, 앞서기 위하여 남을 밟으려 하지 않는다. 저마다 지닌 모습으로, 그 삶의 방법으로 살려 할 뿐이다. 그 모습과 삶의 방법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무성한 숲이 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모습을 보라. 나라 간의 일이든, 나라 안의 일이든, 무리 간의 일이든, 저마다 사는 일이든 모두 잘나려 하고, 제 잘난 것을 내세우기 위해 남을 누르려 안달을 내고 있다.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는 나라 간의 싸움, 정당 간의 싸움, 정치배들의 쟁투를 보라.

  나무를 다시 본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태어나고 살고 죽고 하면서도, 오히려 그 개성은 조화가 되어 한결같이 무성한 숲 울창한 산을 이룬다. 뚜렷한 개성을 지니되, 결코 저를 내세우지 않는 나무의 품성을 다시 보인다.

  또 오늘 신문에는 오직 저를 앞세워 누가 누구를 헐뜯고, 어느 정파가 또 어느 정파를 끌어내리려 하는 소식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을까. 들기가 기껍지 않은 세상으로 드는 걸음을 옮겨 산을 내린다. 나무를 다시 보며 내린다.

  나무의 조용한 개성을 돌아본다. 그 조화를 본다.♣(202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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