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외로움과 고독

이청산 2022. 1. 10. 14:08

외로움과 고독

 

이  일  배

 

  좋아서 찾아와 살고 있으니 타향 아닌 애향이라 해야 할까. 한 생애를 정리하고 티끌세상을 떠나 이 한촌에 와 산 지 강산이 변하는 한 세월을 성큼 넘어섰다. 그 세월 그런대로 잘 껴안고 살고 있다 싶으면서도, 두고 온 사람들이며 그 바깥세상의 그림자는 곁을 떠나지 않는다.

  눈을 들어 창밖을 보면 어딜 봐도 사방 모두 우람한 산이다. 인가 몇 채에 텅 빈 들판, 벚나무가 늘어선 강둑도 보이지만, 적막하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날고 그 아래로 간혹 나는 새가 보일 뿐 정물화 같은 풍경이다.

  지난날의 사람들이 그립다. 그는,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따금 달려가거나 불러서 차라도 술잔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다. 이 넓은 세상에 사람이라곤 오직 나 하나뿐인 것 같다. 혼자서 기울이는 술잔을 드는 손길이 고적하다.

  이 고적이 어찌 적막만 한 것이랴. 아늑한 평안이 느껴지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희비와 고락을 번뇌로 섞바꾸며 살아야 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면 이 삶의 순간들이 저 날아가는 구름처럼 넉넉히 한가롭고 편안하게 안겨 오기도 한다.

  늘 보고 안고 사는 산을 오르고 강둑을 걷는다. 나무를 보고 물을 안는다. 원 없이 가지를 뻗은 저 나무같이, 걸림 없이 흐르는 강물같이 흘러가기를 바라는 내 삶이 아니던가. 거칠 것이 없는 고독 속을 사는 이 삶도 마음 밖으로 밀어내고 싶지는 않다.

외로움은 아린 것이지만, 고독은 아늑한 것일 수도 있다. 외로움은 벗어나고 싶은 것이지만, 고독은 더불어 살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시인들도 그런 심정으로 외로움과 고독을 고백하지 않았던가.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인은 외로웠다. 눈 내리는 쓸쓸한 겨울밤이 시인을 더욱 외롭게 했다. 소주로 외로움과 고뇌를 달래며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한다. 그 외로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 눈처럼 순수한 흰 당나귀를 타고 사랑을 오붓이 나눌 수 있는 산골 오두막집으로 함께 가는 환상에 젖는다.

  이 시인의 마음은 어떤가.

  “홀로 있는 시간은 /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 호수가 된다. /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으므로 // 여럿 속에 있을 땐 /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 삶의 깊이와 무게를 / 고독 속에 헤아려볼 수 있으므로 (이해인, 「고독을 위한 의자」)”

  시인은 고독했다. 그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였다. 나를 조용히 새겨 볼 수 있는 시간이므로. 내 삶의 깊이와 무게를 다시 헤아려 볼 수 있는 시간이므로. 그 시간은 자신을 다스려 삶을 잘 꾸리게 할 수 있는 따뜻한 가치를 지닌 것이 된다.

  정호승 시인은 외로움은 ‘사회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 하고, 고독은 ‘인간이라는 존재적 실존성 속에서 형성되는 것’(『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이라 했다. 외로움이 상대적인 것이라면, 고독은 절대적인 것이라는 말이겠다. 누구와의 관계가 그리운데 혼자일 수밖에 없을 때 느끼는 심정이 외로움이라면, 모든 관계를 떠나 혼자가 될 때 느끼는 아늑함이 고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독은 걸림 없이 즐길 수 있지만 외로움을 즐기기는 힘들다. 고독은 스스로 원하여 빠져들 수 있지만, 외로움은 어떤 이가 스스로 원할까.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일 수 있지만, 외로움은 혼자인 것이 괴로움일 수 있다. 고독은 그 안에 머물고 싶을 수 있어도 외로움은 어서 탈출하고 싶다.

  외로움은 누가 그립거나 누구를 사랑할 때 올 수 있지만, 고독은 남을 향한 사랑보다는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올 수 있다. 고독할 때는 전화기를 꺼두고 싶을 수 있어도, 외로울 때는 하염없이 전화 소리를 기다리기도 한다.

  고독할 때 마시는 술은 달금할 수도 있지만, 외로울 때 드는 술잔은 쏟아버리고 싶을 수도 있다. 고독을 찾아 홀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있지만, 외롭기 위해서 떠나는 사람도 있을까. 고독할 때는 편지를 쓸 마음이 나지 않을 수 있지만, 외로울 때는 간곡한 편지를 쓰고 싶다. 답장도 받고 싶다.

  살다 보면 외로울 수도 있고 고독할 수도 있다. 외로움으로 괴로움을 느낄 수도 있고, 고독을 찾아 즐길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외롭기도 하고 고독도 안겨 온다. 외로워서 술잔을 들기도 하고, 그윽한 독작을 기울이기도 한다.

  외로움은 역시 쓸쓸하고 고단하다. 이 고적한 한촌을 벗어나 그리운 사람들에게로 달려갈까. 아니다. 어차피 내가 택한 길이 아니던가.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꾸면 될 일 아닌가. 전화가 없어도 괜찮고, 답장을 기다리지 않아도 좋을 고독을 살면 되지 않으랴.

  고독하자. 가분하게 고독하자. 그 힘으로 외로움의 너울을 벗어버리자. 사색의 잔을 기울이며 고독 속으로 가든하게 들자.♣(20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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