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이청산 2021. 12. 28. 14:23

 

이   일   배

 

  사람들은 모두 끈을 부여잡고 산다. 그 끈은 하늘이 천연으로 내려주기도 하지만, 그 하나를 얻기 위하여 온갖 공을 다 모으기도 한다. 하늘이 내려준 끈도 귀하지만, 공을 모은 끝에 얻은 끈이 더 귀할 수도 있다.

  끈을 힘주어 잡고 있다 보면 뜻하지 않게 놓치거나 끊어지기도 하고, 놓치고 끊어진 것을 다시 잡고 잇기 위하여 갖은 애를 쓰기도 한다. 끈이 없으면 살 수가 없을 수도 있고, 살더라도 편안하게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친구가 있었다. 같은 직장은 아니었지만, 같은 직업, 직위를 가지고 가끔씩 만나 마음을 나누다 보니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같은 곳에 같은 볼일을 보러 갈 때는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며 많은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일 처리 방법을 함께 궁리하며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하는 사이에 정도 들어갔다. 그 정은 우리 사이를 잇는 끈이 되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정년퇴직할 날이 다가왔다. 같은 날은 아니지만 같은 시기에 퇴임식을 하고 자리를 물러났다. 그 친구의 퇴임식에 가서 외길 평생으로 얻은 영예의 퇴임을 축하해 주었다. 내가 퇴임식을 할 때 그 친구는, 다른 무슨 일에 초청을 받았다며 오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다.

  퇴임하고 나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전 같지 않았다. 아쉽고 안타까웠다. 기회가 없으면 만들기라도 해야 할 게 아니냐며 사는 곳을 찾아 오가기도 했다. 그럴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만나 얼굴이라도 보며 살자 했다.

  두어 달마다 한 번씩 만나기로 하고, 그렇게 몇 번을 만나다 보니 애틋한 마음도 익어 가는 듯했다. 둘이서만 이 좋은 만남을 즐길 게 아니라 퇴임 전에 함께 만났던 이들 중에 누구, 누구도 불러 같이 만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늙어갈수록 친구가 제일이 아니냐며 그렇게 하자며 두 친구를 더 불렀다.

  둘이 만날 때보다 즐거움이 갑절로 불어난 것 같았다. 만나면 주로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이런 얘기 자꾸 하는 것 보니 우리 늙긴 했구만, 하고 함께 웃으며 막걸릿잔을 비우곤 했다. 함께 나누는 담소는 좋은 안주가 되었다. 그렇게 노경의 적요를 서로 안아 주는 것이 정겹고 기뻤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두 친구가 사소한 말끝에 시비가 붙었다.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 그게 뭐가 잘못된 거냐며 설왕설래하다가 얼굴에 핏줄을 세웠다. 두 친구를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듣지 않았다. 다투던 한 친구가 먼저 가버렸다. 나와 먼저 정들었던 친구였다.

  잡고 있던 끈이 하나 뚝 끊어진 듯했다. 귀가 순해지는 나이도 지나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넘지 않는 나이를 코앞에 두고 그래야만 하는 걸까. 날 봐서라도 그러지 말라며 오래도록 달래도 보고 사정도 해보았지만, 친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서운했다. 내 퇴임식에 안 온 일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러는 사이에 한 친구가 유명을 달리했다. 이 세상에서는 영원히 잇지 못할 끈이 되어 떨어져 나갔다.

  둘로는 호젓할 것 같아 또 다른 친구 둘을 불렀다. 다시 넷을 만들어 마음을 나누어오는 사이에 몇 해가 흘러 망팔쇠년도 성큼 넘어섰다. 어느 날 문득 우리를 떠났던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늦둥이 막내딸 혼인 청첩이었다. 이럴 수가 있나. 야속하게 떠날 때는 언젠데…! 속이 편치 않았다. 부조 빚도 없는 터라 눈을 감아버렸다. 잊었다. 그도 잊을 것이다.

어느 날, 세수하고 수건을 들어 얼굴을 닦으려다 보니 ‘누구 정년퇴임 기념’이라는 글자가 찌르듯이 눈에 띄었다. 아, 그 친구! 닦으려던 얼굴에 갑자기 열기가 확 끼쳐 올랐다. 이게 여태 남아 있었구나! 버릴까, 쓸까? 그 수건을 볼 때마다 뜬금없는 청첩 메시지를 받았을 때보다 마음이 더 산란했다. 내가 너무 옹졸했던 건 아니었을까.

  “신실한 사람에게 나도 신실하게 대하고, 신실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신실하게 대하여 이로써 신실을 이룬다.(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道德經』 第49章)”는 노자의 말씀이 꼭 나를 나무라는 말씀같이 울려왔다. 그 친구를 탓할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수건을 다시 대하던 어느 날, 폰을 잡고 문자를 써나갔다.

  “오랜만일세~! 잘 계시는지? 사정이야 어떻든 지난번 딸 혼사 때 부조금을 안 보낸 것은 내가 아주 잘못한 것 같네. 미안하네. 마음 넓게 생각해 주시게. 지금이라도 내 성의를 표시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네. 번거롭더라도 계좌 번호 좀 알려주시게. 부탁하네…….”

  ‘정말 오랜만일세! 건강하제? 새삼스럽게 뭘~?!……’ 하고 답장을 보내왔다. 다른 친구를 만날 때마다 마음에 걸리더라며, 지금이라도 내 마음을 보낼 수 있게 해 달라 했다. 수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며칠 뒤에 계좌 번호를 보내오며 ‘언젠가는 만날 날이 있겠지?’ 간곡한 듯한 말을 했다.

  뒤늦은 일이지만 부조금을 조금 보내며 ‘조그마한 정성 보내네. 마음의 끈을 잇는 거라 여겨주시게~!’ 했다. 고맙다며 건강하게 지내다가 언제 꼭 한번 보자는 답글이 왔다.

  세수하고 얼굴을 닦으며 그 수건 글자를 볼 때, 새로 돋는 움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살포시 솟는다. 끈이 새로 이어졌다는 앳된 안도감이 주는 느낌일까?♣(202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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