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나무의 철

이청산 2021. 11. 24. 21:21

나무의 철

 

이   일   배

 

  오늘도 산을 오른다. 어제 그 산길로 어제 그 나무를 보며 산을 오른다. 아니다. 어제 그 길이 아니고 그 나무가 아니다. 나무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가만히 보면 어제 그 잎이 아니고 그 가지가 아니다. 길도 그 길이 아니다.

모양도 바뀌어 가고 색깔도 달라지고 있다. 잎이 어느 때는 실눈 속의 눈썹 같았다가, 어느 때는 아기 손톱만 했다가, 언제는 엄지손톱처럼 자랐다가, 손바닥만큼 넓적해지기도 한다. 파르스름한 가지가 조금씩 굵어지다가 팔뚝만 하게 커서 흑갈색을 띠고 있다.

  그 가지의 잎들이 한창 푸르러지는가 싶더니 노랗고 붉은 물이 들었다가 말라 들면서 떨어져 땅으로 내린다. 땅은 잎을 싸안아 차곡차곡 재었다가 제 살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나무들의 거름이 되게 하여 나무를 나게 하고 자라게 하고 잎을 피워내게 한다.

  이렇게 나무들은 한살이를 이루어나가지만, 한살이가 한 살이로만 끝나지 않는다. 나무는 철의 바뀜을 따라 나고 살고 지기를 거듭하면서 숱한 살이를 이루어나간다. 수십 년, 수백 년의 세월을 두고 거듭되는 시공 속을 살고 있다.

  오랜 세월을 안으며 살이를 거듭해가다가 어느 한 세월 앞에서 강대나무가 되었다가 쓰러지기도 하고, 삭아 흙으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삭아가면서도 많은 미물의 보금자리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땅으로 들면 새 생명이 되어 다시 땅 위로 솟는다.

  나무는 철을 잘 맞이하고 잘 보낼 줄 안다. 어느 해 어떤 철이 돌아와도 그 철에 맞추어 척척 잘 맞는다. 싹을 틔우고 잎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잎을 물들이고 그 잎을 땅으로 내려보내는 일을 한 해도, 한 철도 거르거나 그르치는 법이 없다. 매년 그렇게 하는 일을 제 몸에 줄을 그어 새겨두기도 한다.

  이렇게 나무는 마치 시간표를 짜놓고 거기에 맞추어 생명 활동을 해나가는 것처럼 여러 철을 되풀이하여 살아가지만, 사람은 어떤가. 오직 한 철밖에는 살지 못한다. 사람의 생애란 움으로 싹터서 자라가다가 마른 잎이 되어 떨어지는 나뭇잎의 한생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무처럼 수많은 철을 맞이할 것처럼, 영원히 살 것처럼 갖은 욕심을 다 부린다. 더 많은 재물을 안고 싶어 하고, 더 센 힘을 갖고 싶어 하고, 더 큰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 하고, 더 편하고 유족한 삶을 추구하려 한다.

  한 철밖에 살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욕심을 부리는 것일까. 살 동안에 더욱 많은 것을 다 누리고 싶은 몸부림으로 그리하는 것일까. 그러면 그것은 삶이 아니라 발악일 뿐이다. 그렇게 악을 쓰며 사는 삶이란 얼마나 고단한 것인가.

인도의 대서사시 「바하바라타Mahabharata」에서 강인한 영혼인 야크샤Yaksa가 팝다바Papdaba의 최고령자이자 현자인 유디스티라Yudhisthira에게 무엇이 가장 큰 신비인지 물으니, 현자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데도 살아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불멸의 존재인 것처럼 산다.”라 했다고 한다.

  한 철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신비해 보인다는 말이다. ‘신비’란 일이나 현상 따위가 사람의 힘이나 지혜 또는 보통의 이론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묘하다는 뜻을 지닌 말이 아닌가.

  그 ‘신비’는 한 철 살이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의 우둔을 반어적으로 풍자한 말로 볼 수 있다. 사람이란 그런 존재이기에 ‘철’이라는 말을 두고 ‘계절’이라는 뜻 외에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힘’이라는 뜻이 파생되어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철’이 그런 뜻을 가지면서 ‘사리를 분별할 만한 자격이 없다.’를 뜻하는 ‘철없다’라는 말이 나오고, ‘사리를 분간할 줄 모르다.’라는 뜻을 가진 ‘철모르다’라는 말도 생겨났다. 영어에서도 ‘unseasoned man’이라는 말로 철없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한다.

  아직 사리를 분별할 힘을 가질 수 있는 연륜에 이르지 못한 어린아이들에게 ‘철없다’라고 하면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아 순진하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지만, 삶의 연륜과 경륜을 제법 쌓았으면서도 철없고 철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세상에는 사리 분별을 잘못하여 남도 자신도 나락에 빠지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욕심을 절제하지 못해 축적한 부와 명예를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뜨리는 사람들을 철 알고 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나아가 한 나라를 불행에 빠뜨리는 사람은 또 어떤가. 

남의 일만 말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나는 과연 철을 제대로 가지고 철을 잘 아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돌아보면, 나도 한생을 철모르고 철없이 살아온 것 같다. 하는 일마다 온통 실수와 시행착오가 붙어 다녔다. 그 때문에 많은 상처를 심신에 새기기도 하고, 그런 나로 인해 나의 상처에 못지않은 아픔을 느꼈을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지난날을 떠올릴 때면 얼굴은 제 빛깔을 잃는다.

  지금은 철이 들어 그 철 잘 지키며 살고 있는가. 살아가는 일에 간난과 불편이 떠나지 않는 걸 보면 아직도 철을 잘 모르고 살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그런 나를 바라며 원망을 쌓고 있는 이를 보면서도, 그 원망 삭혀주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철이 많이도 모자라는 것 같다.

  무엇 때문일까. 모든 일에 겸허하지 못한 오만과 교만 때문일까. 몸과 마음에 차 있는 욕심과 허영 때문일까. 제 하는 일을 옳게만 여기는 이기와 위선 때문일까. 어쩌면 그런 모든 것을 과감히 떨쳐내지 못하는 미련과 집착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산을 오른다, 제철을 잘 아는 나무가 살고 있는 산을 오른다. 나무에 기대어 본다. 얼마를 더 살아야 철을 가진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무를 쓰다듬어 본다. 철을 제대로 아는 내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이 나무는 알까. 내 철의 행방을-.♣(2021.11.17.)

 

'청우헌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21.12.28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0) 2021.12.15
저 눈부신 가을 속으로  (0) 2021.11.09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0) 2021.10.26
산의 얼굴  (0) 2021.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