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엉겅퀴 사연

이청산 2021. 6. 23. 14:39

엉겅퀴 사연

 

이    일    배

 

  오늘도 산을 오른다. 녹음이 무성하다. 수풀이 우거진 어귀 오솔길을 오르는데 무엇이 바짓가랑이를 찌르듯이 잡는다. 놀라 돌아보니 엉겅퀴다. 날마다 걷는 길인데 오늘 나를 잡을까. 이제 비로소 꽃을 피웠노라며 저를 봐달라는 말인가.

어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꽃이 수술일지 꽃잎일지 모를 가시를 뾰족뾰족 뽑아 올리며 함초롬히 피어 있다. 붉은빛, 분홍빛, 자줏빛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송이를 이루고, 흰색으로 뻗어 올린 피침 하나하나에 붉은빛을 감고 있다.

  줄기에도 잎에도 잔털이 송송 나 있고, 잎은 양쪽으로 깊게 갈라지면서 끝에 뾰족한 가시를 달고 있다. 그 가시가 나를 잡은 것이다. 꽃의 빛깔이며 생김새도, 가시가 나 있는 잎이며 줄기도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 꽃이 서 있는 땅은 다른 데보다 더 기름지지도 않고, 사방이 탁 트여 햇빛이 잘 드는 곳도 아니다. 그런 곳에서도 저리 고운 빛깔로 꽃을 피우고 있는 것 하며, 아리따우면서도 다른 이를 아리게 할 가시를 달고 있는 것이 무슨 애틋한 사연을 품고 있을 것만 같다.

  상처 난 곳에 찧어서 바르면 피를 엉기게 하여 멎게 한다고 엉겅퀴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하 많은 사연이 엉겨 있어 엉겅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한방에서 대계(大薊)라 하여 뿌리를 이뇨제, 지혈제 등에 쓴다고 하거니와, 시인들은 엉겅퀴에 엉겨 있는 사연이며 그 심사를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흑진주처럼 /해묵은 사연 있을까./ 두메 산기슭 /작은 무덤에 /엉겅퀴 꽃이 피었네./…… / 이제는 초로(初老)에 / 봄이 담담한 / 까칠한 누이처럼 / 사는 꽃이여.”(오낙율, 「엉겅퀴꽃」)라 하여 박덕한 누이를 떠올린 시인도 있고, “엉겅퀴야 엉겅퀴야 / 철원평야 엉겅퀴야 / 난리 통에 서방 잃고 / 홀로 사는 엉겅퀴야”(민영, 「엉겅퀴꽃」)라며 민요조 가락에 실어 엉겅퀴에서 전쟁의 비극을 읽어내는 시인도 있다.

  그런가 하면, “들꽃이거든 가시 돋친 엉겅퀴이리라 / 사랑이거든 가시 돋친 들꽃이리라 / 척박한 땅 깊이 뿌리 뻗으며 / 함부로 꺾으려 드는 손길에 / 선연한 핏멍울을 보여주리라 / 그렇지 않고 어찌 사랑한다 할 수 있으리 (복효근, 「엉겅퀴의 노래」)” 하며 엉겅퀴에 단호한 사랑을 싣고 있다. 이러한 꽃에 어찌 전설이며 유래담이 없을까.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던 여몽 전쟁 시기였다. 몰락한 어느 가문에 보라라는 예쁜 외동딸이 있었다. 그녀보다 두 살 많은 똘똘하고 총명한 또깡이라는 어린 종이 항상 그녀 곁을 지켜주었다. 어딜 가나 무엇을 하나 늘 함께하며 오누이처럼 지내면서 점점 자라는 사이에 서로 사랑하게 된다. 몽골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또깡이는 대몽 항전을 위해 먼 길을 떠나고 보라만 남는다. 또깡이가 돌아올 날을 고대하며, 오면 입힐 옷을 짓고 있던 보라는 공녀로 징발되어 몽골로 끌려가는 처지가 된다. 

감시 책임을 맡고 있던 흑조라는 다루가치가 끌려가던 보라를 탐내어 덮치려 하자 댕기에 늘 꽂고 있던 바늘로 흑조의 정수리를 찔렀다. 흑조가 잠시 정신을 잃은 사이에 보라는 도망을 쳤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흑조가 따라와 채찍을 마구 갈겨댔다. 보라는 살이 갈기갈기 찢어져 마침내 죽게 되었는데, 찢어진 살갗에서 송송 가시가 돋아났다. 그렇게 보라가 죽은 자리에 피어난 보라색 꽃이 엉겅퀴다. 보라의 원한이 핏빛 꽃에 가시가 되어 피게 된 것이다.

  전설이 먼저인지 꽃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원한 맺힌 사연을 가진 꽃으로 보이고 느껴지는 것은 그 모습이 지닌 표상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13세기경 스코틀랜드와 덴마크가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엉겅퀴 가시가 긴요한 구실을 하여 위기에 처한 스코틀랜드를 구했다고도 한다. 그 후 스코틀랜드는 엉겅퀴를 나라꽃으로 삼게 되었다는 유쾌한 유래도 전해진다.

  어쨌든 엉겅퀴는 고운 빛깔과 매서운 가시를 함께 지닌 꽃이다. 서로 화합할 수 없고 조화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이 서로 어울려 보는 이를 설레게도 하고 아리게도 한다. 돌아보면 우리 삶엔들 어찌 고운 빛깔만 있고 매서운 가시만 있으랴. 엉겅퀴는 빛깔과 가시를 기의(記意 signifié)로 하는 우리 삶의 명쾌한 기표(記表 signifiant)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꽃으로 살고 있다. 세상의 번다한 일 다 떠나 산 치레 물 치레로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빛깔도 은은한 꽃이 아닌가. 시인은 또 말한다.

  “들꽃이거든 엉겅퀴이리라 / 꽃 핀 내 가슴 들여다보라 / 수없이 밟히고 베인 자리마다 / 돋은 가시를 보리라 / 하나의 꽃이 사랑이기까지 / 하나의 사랑이 꽃이기까지 / 우리는 얼마나 잃고 또 / 떠나야 하는지”(복효근, 「엉겅퀴의 노래」)라 했다.

  그 은은한 빛깔도 속을 들여다보면 찢기고 밟힌 자리가 왜 없을까, 그 자리마다 돋은 가시가 어찌 없을까. 가시가 있다 한들 무엇을 원망하랴. 그것이 있어 고운 빛깔도 있지 않은가.

  오늘도 강둑을 걷고 산을 오른다. 꽃 아닌 풀이 있으랴.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엉겅퀴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오늘이다.♣(2021.6.15.)

 

'청우헌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 몸을 찾아서  (0) 2021.07.24
사람은 땅을 본받고  (0) 2021.07.12
모두 다 꽃이야  (0) 2021.06.09
나무의 사랑(2)  (0) 2021.05.23
내가 사는 첫날들  (0) 2021.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