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고사목 의자

이청산 2021. 2. 20. 14:13

고사목 의자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내가 산을 오르는 일은 물을 마시고 숨을 쉬는 일과도 다르지 않다. 그런 곳을 골라 찾아와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일상으로 오를 수 있는 산이 내게 있다는 것이 여간 생광스러운 일이 아니다.

  바람 소리, 새소리와 함께 산을 오르노라면, 온갖 나무들이 철마다 단장을 달리하면서 언제 봐도 반가이 맞아준다.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물푸레나무, 생강나무, 벚나무, 소나무, 노간주나무……, 내가 손을 흔들기도 전에 저들이 먼저 수많은 손을 흔들며 나를 맞아 준다.

  산의 모습이 정겹다. 하늘 향해 싱그럽게 죽죽 뻗으며 서 있지만, 그중에는 잎을 다 지운 채 강대나무가 되어 서 있는 것도 있고, 그 몸통마저도 땅에 누인 것도 있다. 삶과 죽음이 함께 살고 있다. 생사를 따로 나누지 않는 나무들의 살이가 정겹다.

  산을 오르노라면 아늑하고 호젓한 오솔길도 만나지만, 숨결을 가쁘게 하는 가풀막도 올라야 한다. 한참 오르다 보면 땀도 숨도 차오르고 다리도 뻐근해진다. 어디 쉴 곳이 없을까. 비탈의 가랑잎 위에 잠시 앉아 땀을 긋고는 다시 오른다. 

어느 날, 산을 오르노라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가풀막 중간쯤 쉬어 가고 싶은 곳에 긴 의자 하나 떡하니 놓였다. 잎이며 잔가지는 비바람에 다 쓸려 가고 훌쩍한 몸통만 서 있던 소나무 고사목이었다. 지난밤 세찬 바람이 불더니 그 큰 덩치를 땅에 눕힌 것이다.

  쓰러져 누운 자리가 우연하게도 굽이진 가풀막의 한중간쯤이어서 쉬어 오르기 딱 좋은 곳이다. 그 우람한 덩치가 서 있는 걸 늘 보긴 했지만, 그렇게 쉽게 쓰러질 줄이며 쓰러져도 자리를 이리 긴요하게 잡아 누울 줄은 몰랐다.

  소나무는 병을 얻어 강대나무가 되기도 하고, 다른 나무들보다 햇빛요구도가 높아서 빛을 제대로 못 받으면 고사하게 된다고도 한다. 어찌하였든 저의 명을 다하여 드러누운 것이지만, 나로서는 귀한 자리를 잡아 누운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사진 곳은 남은 가지로 받쳐 가면서 비탈을 평탄하게 고르면서 누웠으니, 가풀막을 오르다가 가쁜 숨을 잠시 멈추고 앉아 쉬기가 더할 나위 없이 편한 모양새가 되어 있다. 마치 기왕 쓰러질 바에는 쓸모 있는 자리에 쓸모 있게 누우리라 작심이라도 하고 누운 듯했다.

  나무는 쓰러져도 할 일이 많다. 개미를 비롯한 다양한 벌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그들을 살게 하고, 모든 팡이실의 온상이 되어 갖은 버섯이 돋아나게 한다. 그뿐 아니라 온갖 새, 다람쥐, , 멧돼지, 곰 등 크고 작은 짐승들의 놀이터가 되고, 이끼며 풀꽃들의 터전이 되기도 한다.

  나도 이제 나무에 숨결을 기대는 생명체의 하나가 될 것이다. 나도 팡이실이며 뭇짐승과 한 족속이 되어 앉아 쉬면서 땀을 씻고 숨을 고를 것이다. 목숨들의 숨을 고르게 해주고 있음에야 이 나무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 나무는 죽어서도 다른 목숨들과 더불어 산다.

  지금부터 나는 이 나무와 남은 생을 함께할 것이다. 아니, 이 나무는 나의 편안한 의자가 되어주고도, 또 긴 세월을 두고 하고많은 생명체들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쓰러진 나무가 흙이 되어 땅속으로 들기까지는 한두 세기의 세월은 족히 보듬어야 한다지 않는가. 

산을 오를 때면 이 나무에 꼭 쉬어서 간다. 숨이 가쁘고 다리가 팍팍해서도 쉬지만, 이 나무를 보면 쉬고 싶어진다. 내가 이 나무에 앉아 쉬는 것은 힘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고마움에 대한 인사이기도 하다. 그렇게 앉았다가 오르면 정상이 훨씬 가까워진다. 정상에 오른 가슴이 더욱 넓어진다.

  집을 떠나 멀리 갈 때가 아니면 산을 꼭 오른다. 정상까지 오를 겨를이 안 되면 이 의자가 있는 곳까지라도 반드시 간다. 비가 내려도, 눈이 날려도 오른다. 그런 날이면 이 의자가 더욱 아늑하게 느껴진다. 눈비를 함께 맞아주는 의자가 더없이 포근하다.

  내가 필요로 하는 곳에 자리해 주는 존재가 누가 있고 몇이나 있던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이 자리에 오늘도 몸을 묻으며 숨을 고르고 땀을 씻는다. 아무런 걸림새 없이 온몸을 내어주는 그 마음에 기대어 내 마음도 깊이 묻는다.

  나무는 천성이 그러한가. 내가 이 나무에게 마음을 묻고 있는 것처럼 다른 많은 것에게도 그 마음자리를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다. 이것이 타고 난 마음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무가 안아주는 많은 것들과 더불어 나도 그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여간 푸근하지 않다.

  세상을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이치를 이 나무가 다시 돌아보게 한다. 세상에 외롭지 않은 존재가 어디 있는가. 외롭기에 이웃이 있어야 하고, 기댈 곳도 있어야 하지 않은가. 이 산중에 고즈넉이 기댈 곳이 있어 산이 더욱 포근해진다.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내일도 오를 것이다. 고사목 의자, 그 아늑한 안식처가 있으므로.

  나는 누구와 무엇의 의자가 되고, 안식처가 될 수 있을까.(20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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