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오늘을 고요하게 살다 보면

이청산 2020. 10. 11. 11:57

오늘을 고요하게 살다 보면

 

내 의지와는 별 상관도 없으면서 나를 끊임없이 변하게 하는 것이 있다. 시간이다. 오래 살았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를 이토록 오래 살게 한 게 무엇인지 돌아 보인다. 누구는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기도 했지만, 입때껏 나를 살려 온 것은 모두가 시간인 것 같다. 앞으로 얼마를 더 살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냥 살아오게 한 것만은 아니다. 자라게 하고, 장성하게 하고, 갖은 일들을 겪게 하고, 그것으로 세상 물정에 젖게도 하고, 그러는 사이에 늙게도 한 것이 모두 시간이 한 일이 아닌가. 그사이에 많은 것들을 만나게도 하고 헤어지게 한 것이 시간이 한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 그리했다는 말인가.

이런 시간이건만 나와는 별 상관이 없이 흘러가는 것 같다. 내가 그것을 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가라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애태우며 기다렸던 시간이 쉽사리 와주지 않던 적이며, 조금은 더 머물러주기를 바라던 시간이 날파람처럼 가버리던 적이 있긴 하지만, 모두 제 뜻대로 흘러오고 흘러간 것만 같다.

내가 그것과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만큼 저도 나라는 존재에게는 별 상관을 두지 않을 것이다. 나의 어떤 뜻에도 개의치 않고,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치 행운유수처럼 저 흘러오고 싶은 대로 오고, 흘러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 같다. 하기야 시간이 누구에게, 무엇에 얽매이며 흘러가랴.

그렇지만 시간은 아무 먹은 마음 없이 흘러가고 있지만은 않은 것 같다. 뜻 없이 흐르기만 한다면 그것이 흐를수록 모든 것은 왜 변해가는가. 왜 누구는 태어나게 하고, 누구는 늙게 하고, 누구는 세상을 등지게 하는가. 누구에게는 사랑을 주고 누구에게는 아린 생채기를 남기는가. 어떤 이에게는 희망을 주고 어떤 이에게는 깊은 수렁을 안기는가.

어느 노장 가수의 노래 하나가 가슴에 물결을 그린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나훈아, 「테스 형!」)

이 노래처럼 전혀 애쓰지 않아도 ‘오늘’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와서 이리 살아있게 해주는 것이 고맙긴 해도, ‘내일’이라는 시간이 죽어도 오고 마는 것이 두렵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나를 스쳐 흘러가는 시간은 가끔씩 나에게 해찰을 부린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을 끓게도 한다. 시간의 그 해찰이 나의 무슨 소행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내딛는 발길을 따라 시간이 무슨 옹심을 품은 것은 아닐까.

가수는 또 이렇게 묻는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 형!”

내가 모르는 것은 시간의 속이 아니라, 나 자신이란 말인가. 내가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에게 무슨 데생각이라도 부렸던가. 가수의 물음처럼 나를 또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어느 시인의 상념도 나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오늘도 나를 만나러 길을 나선다/ 언제부턴가 나도 몰래 내 안에서 나를 지키는/ 얼굴 없는 그를 만나러 간다 / 가장 가깝고 쉬울 줄 알았던 이 길이/ 가면 갈수록 오지(奧地)처럼 낯설고 아득하다” (이용섭, 「가장 먼 길」)

그런 길을 난들 어찌 쉽사리 갈 수 있을까. 그를 어찌 내 속의 것인 듯 가까이 만날 수가 있을까. 그러고 보면 시간이 부리는 해찰은 내 탓일지도 모른다. 내 어설픈 몸짓, 거친 탐욕이 시간의 속을 긁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나를 한 자리, 한 모습에만 머물게 하지는 않는다. 무엇을 바꾸어 놓아도 바꾸고야 만다. 내 그 무량의 힘을 어찌 당해낼 수 있으랴.

어차피 바뀌어야 하고 변해야 한다면, 이제는 조용히 고요히 바뀌고 싶다. 이만큼 살았음에야 또 어떤 몸짓을 꾸미려 하랴, 무엇을 더 욕심내려 하랴. 오늘이 온 것을 고맙게 여기며 고요한 하루를 살아야겠다. 오늘이란 무엇인가. 수많은 어제들의 맨 뒷장이자 다가올 내일들의 맨 앞장이 아닌가. 오늘을 고요하게 살다 보면 가는 시간들도 오는 시간들도 모두가 고요하지 않으랴.

설령 시간이 나의 모습을 조금씩 바꾸어 가더라도, 그리하여 그것이 스쳐 간 흔적을 주름살로 남겨 놓는다고 해도 ‘주름살이란 미소가 머물다가 간 자리일 뿐(F. 베이컨)’이라는 말을 새겨 음미해 볼 일이다.

내 뜻과는 별 상관없이 와준 오늘이지만, 반갑게 맞이하여 고요하게 살고 싶다. 맑은 햇살을 타고 온 오늘을 다홍빛 석양이 곱게 싸안을 때까지 잘 보듬으며 하루를 살고 싶다.

오늘을 고요하게 살다 보면 내 시간의 끝자락도 곱지 않으랴. 저 해사한 노을빛처럼.♣(20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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